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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소녀성폭행 자백한 목사가 박수를 받는 이 장면

by아주경제

피해자에 대한 짧은 사과로 책임은 끝? ...그 범죄는 '용서'가 된 것일까요 

20년전 소녀성폭행 자백한 목사가 박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다 이내 고개를 떨구는 한 남자. 그는 미국 멤피스 대형교회인 하이포인트 교회 목사인 앤디 세비지(Andy Savage)다. 세비지 목사는 지난 7일 주일예배시간에 “20년 전 내가 이끌던 청년부 소속 17살 소녀를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주에게 회개한다는 말을 이어가던 그는 “여러분 모두를 매우 사랑합니다”라며 말을 마쳤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4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그리 길지 않았다. 이를 숨죽이며 듣고 있던 동료 교인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쉬이 그치지 않았다. 25초간이나 이어졌다.

 

하이포인트 교회를 이끄는 크리스 콘리(Chris Conlee) 목사는 “새비지 목사는 자신의 죄로 상처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새비지 목사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 남을 해함으로써는 아무런 치유도 받지 못한다”며 그를 위로했다.

 

이 광경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미국 현지 매체들은 잇따라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새비지 목사의 야만적인 행동에 비해 너무 쉽고 빠르게 용서받았다는 것이었다.

 

교회 스캔들 관련 전문가인 크리스타 브라운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잘못된 종교이론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이것은 피해자들에게 성적수치심이라는 2차 피해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20년전 소녀성폭행 자백한 목사가 박

실제로 그랬다. 피해자 줄스 우드슨(Jules Woodson)은 새비지 목사를 용서한 적이 없다. 그가 직접 우드슨에게 용서를 구한 적도 없다. 우드슨은 CNN과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새비지 목사의 사과는 충분치 않고 역겹다. 자신은 평생 수치심을 겪어왔다”고 말했다.

 

우드슨은 지난해 12월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어렵게 털어놨다. 미국 사회 전역에 퍼지고 있는 #MeToo 운동(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비지 목사는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다 최근에서야 회개하고 자의적으로 죄를 씻었다.

 

이는 마치 영화 ‘밀양’을 보는 듯하다. 극 중 주인공 이신애(전도연)의 아들은 유괴당해 살해당한다. 신애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엄청난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종교에 귀의한다. 그리고 어려운 결심 끝에 살인자를 용서하기로 한다.

 

교도소를 찾은 신애는 뜻밖의 놀라운 사실과 마주한다. 살인자는 너무 편안한 얼굴로 신애를 맞는다. 이윽고 그는 “이미 종교에 귀의했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용서받았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한 마디에 신애를 지탱하던 모든 믿음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신애는 동료 교인들에게 묻는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살인자는 신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끝내 그녀는 절규한다. 그 이후 신애는 살인자를 용서한 신을 조롱하는 듯 행동한다.

 

과연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신은 가능할지라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영화 ‘밀양’의 메시지다. 우리는 용서와 화해가 오직 피해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너무 쉽게 잊곤 한다.

 

그만 용서하라는 말. 그것은 피해자에겐 폭력일 뿐이다.

 

성동규 기자 dongkuri@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