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빙 빈센트' 후기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러빙 빈센트' 후기

불운의 ‘화가’ 빈센트

대학교의 미술사 교양 시간이다. 오늘은 19-20세기의 빛과 공기에 매료된 사람들 - 학자들은 인상주의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 에 대해서 배운다. 교수가 나눠준 프린트에는 세잔(Paul Cézanne), 모네(Claude Monet), 쇠라(Georges Pierre Seurat)등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거장들의 이름이 보인다.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고흐다! 앞에 나온 사람들도 모두 들어본 이름이지만, 유난히 이 사람의 이름은 친근하다. 해바라기와 자신의 노란 방을 그렸고, 귀를 잘랐고, 찢어지게 가난했고 또…… 아 참! 자살했다. 지금의 명성은 죽은 뒤에 얻은 것이다. 정말 불쌍하다. 천재의 인생은 이런 것일까?

 

수업이 끝난 뒤 점심, 밥을 먹으며 친구와 수업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은 고흐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다른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강렬했기에 자연스럽게 고흐 이야기를 하게됐다. 친구는 고흐가 불쌍하다고 이야기했다. 고흐는 생전에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했는데, 그것도 아주 싼 값에 팔았단다. 나는 그 시대로 갈 수 있다면 그림을 사 오고 싶다는 우스갯 소리를 했다. 5분 정도 이야기했을까? 친구는 숟가락으로 식판을 두 번 쳤다. 우리는 한 손에 숟가락을 든 채, 고흐가 불쌍하다고 결론지었다.

'러빙 빈센트' 후기

러빙 빈센트

영화는 초반부터 빈센트와 관련된 사건과 사고에 집중한다. 귀를 잘라 매춘부에게 줬다는 유명한 일화부터, 이미 유명한 화가가 되었음에도 가난하게 살았던 모습, 집에서는 다툼이 끊이질 않았고, 마지막으로 노랗게 물든 한적한 들판에서 자살했다는 것까지. 사람들은 그와 관련된 사건에 늘 집중했다. 입방아는 쉴 틈이 없었고, 그가 죽은 후에도 여전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빈센트는 어느새 그런 '화가’가 되어버렸다. 가까이할 수 없는, 우리와 다른, 위험한 화가.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를 봤지만, 그가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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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 한 명, 수십 년간 빈센트의 편지를 책임졌던 우체부 조셉은 달랐다. 빈센트를 따뜻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는 그 동네에서 조셉이 유일했다. 고흐가 죽고 1년 뒤, 조셉은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부쳤던 편지를 전해줄 것을 아들인 아르망에게 부탁한다. 한편, 광인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르망 역시 동네의 말썽꾼이다. 싸움을 일삼고, 가게에서는 계산도 하지 않고 남의 술을 가져다 먹는다. 이런 아르망조차도 빈센트의 삶에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둘 사이의 묘한 공통점을 느낀 것일까? 완강하게 거절했던 아르망은 결국 조셉에게 설득당한다. 그리고 며칠 뒤, 아르망은 기차를 타고 테오가 있는 파리로 출발한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삶을 살다 보면 무너질 수 있다. - 조셉 룰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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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의 여정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 편지의 주인인 테오가 죽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르망은 주인 잃은 편지를 평소 빈센트와 친분이 깊었다고 전해지는 가셰 박사에게 전해주기로 한다. 이튿날 가셰 박사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그는 없었다. 대신 가정부 루이스를 만난다. 그녀와 빈센트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녀는 빈센트가 끔찍하고 미친 화가라고 말한다. 대화에서 아르망은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다.

 

떄문일까? 편지를 대신 전해준다는 루이스에 말에 아르망은 가셰 박사에게 직접 전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곧장 집을 나와 빈센트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여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관 주인의 딸 라부는 빈센트가 매우 평온했으며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게다가 빈센트의 자살이,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상반되는 주장에 아르망은 빈센트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빈센트의 죽음을 찾아 나서는 탐정이 되어 단서를 찾아 나선다.

그의 점심을 뺏어 먹는 까마귀를 보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이 정말 외롭다는 것을 알았죠. - 뱃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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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를 그리워하는 여인 '마르그리트', 그리고 그 둘을 지켜봤던 ‘뱃사공’, ‘빈센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아들린’, 가셰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루이스’, ‘빈센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닥터 ‘폴 가셰’, 여관집 딸 ‘라부’. 아르망은 빈센트의 죽음의 비밀을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스터리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 나간다. 여기서 영화는 우리에게 첫 번째 의문점을 던진다. 빈센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

'러빙 빈센트' 후기

영화의 후반, 아르망은 빈센트가 자살 기도를 했다는 들판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그때 마르그리트(가셰 박사의 딸)가 나타난다. 이전에 아르망은 그녀가 빈센트가 죽은 후에 매일 묘지에 꽃을 가져다 놓는다는 이야기를 뱃사공을 통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인연이 없다고 아르망에게 이야기했던 터였다.

 

아무도 없이 노랗게 일렁이는 들판 한가운데 서서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에게 감춰왔던 이야기를 꺼낸다. ‘그것은 존경의 의미에요…… 그는 꽃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거예요. 푸른 잔디밭의 잔디 날 하나하나까지 그에겐 어떤 생명도 너무 작거나 가치 없지 않았죠.’ 그녀는 빈센트와 매우 각별한 사이였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녀는 빈센트라는 사람 자체를 매우 좋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영화는 우리에게 두 번째 의문점을 던진다. 빈센트는 미친 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선 얼마나 알죠? - 마르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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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아르망은 가셰 박사를 만나게 되고,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가셰 박사에게 편지를 전한 아르망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조셉을 만난다. 벤치에 앉아 나란히 하늘을 보는 그때, 조셉은 빈센트를 추억한다. 까만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사람,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가갈 수 있는 곳으로 가버린 사람,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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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 빈센트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빈센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지금은 천재라고 불리지만 생전에 불운했던 화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광기라는 수식어. 이것들이 그의 인생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이미 영화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초반, 나는 빈센트의 죽음에 온 신경을 쏟았다. 내가 알고 있는 빈센트라는 위대한 화가가 어떻게 삶의 마지막을 맞았는지, 또 그 마지막은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 가슴 한 쪽이 아련했던 이유는 빈센트의 슬픈 삶 때문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것은 자조에 가까웠다.

'러빙 빈센트' 후기

우리는 빈센트를 ‘가난한 화가’, ‘비운의 화가’, ‘귀를 자른 광인’ 정도로 기억한다. 물론 그 앞에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하지만 말이다. 요컨대, 빈센트라는 사람의 실력과 그가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인정하지만, 한 사람에 대해서 매우 불쌍하게 생각할 뿐이다. 예를 들면, ‘나는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지만, 빈센트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정도랄까?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빈센트를 불쌍하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이기도 하지만, 몇 개의 사건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인생을 곡해하고 일반화해서 생각하는 것은 결국 우리였다. ‘가난한 화가’, ‘비운의 화가’, ‘귀를 자른 광인’은 우리가 그의 일화와 직업을 부르는 말일 뿐, 하나의 사람으로서 가지는 그의 인생을 대변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빈센트는 ‘화가’일 뿐, 단 한 번도 그를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영화의 초반, 감독은 이 메시지를 지나가듯 던져 놓는다. 지나간 줄로만 알았던 메시지는 영화의 흐름 전체를 관통하고, 마지막에 ‘툭’ 하고 눈앞에 떨어진다. 비록 처음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만드는 소재는 빈센트의 자살이었지만, 결국 ‘따뜻했던 사람 빈센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 빈센트

영화의 마지막, 빈센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영화관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 이유는 아마 위대한 화가 빈센트가 아닌, 빈센트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평범한 한 사람이 겪었을 고통과 한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의 가학적인 모습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러빙 빈센트' 후기

이 영화는 분명, 빈센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보내는 축복과 같은 선물이다. 동시에, 우리에게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인생에 대해 말한다. 별처럼 다가갈 수는 없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눈물 흘리게 만든다.

눈여겨 볼 점

1. 유화로 만든 하나의 작품

세계 최초로 처음부터 끝까지 유화로 가득 채운 ‘작품’이다. 정말로,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떠나서 그 열정과 의지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한 영화다. 그 때문에 영화는 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 참여하기 위해 4천여 명의 화가들이 오디션을 봤고, 그 중 107명의 화가가 선발됐다. 그들은 2년 동안 6만2450여 점의 그림을 그렸고, 결과는 아무리 글로 떠들어봤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영화관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확인하기를 바란다.

'러빙 빈센트' 후기

2.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빈센트의 그림 130여 점

요즘 같은 시대에 빈센트의 작품을 인터넷이나 책에서 찾기는 쉽다. 하지만 이것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스토리가 담겨있고 인물이 움직이는 경험을 하는 것은 오직 ‘러빙 빈센트’가 유일하다. 참, 스크린도 일반적인 와이드 스크린(16:9 비율)이 아닌 캔버스 사이즈에 가까운 화면비를 도입했다고 하니, 당장 극장으로 가야 할 이유가 명백하다.

'러빙 빈센트' 후기

3. 흡입력 있는 스토리

영화를 이끄는 사건은 오직 하나, 빈센트의 죽음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는, 탐정 수사물이라는 형식은 일반적이지만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빈센트의 자살이라는 소재는 분명 흡입력 있다. 또한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인물들의 모습 역시 흥미롭다.

'러빙 빈센트' 후기

모든 사진 및 극중 대사 출처 - [네이버 영화]

공정필 에디터 gongpil92@gmail.com

2017.12.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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