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인물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2017년의 ‘우리’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출처 - KISO 저널)

2016년, 우리는 광장으로 갔다. 총도 칼도 없이, 횃불도 아니고 촛불만 덩그러니 들고 광장으로 갔다. 이유는 하나,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촛불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능을 앞둔 고3의 촛불,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의 촛불, 대학생의 촛불, 외국인의 촛불, 휠체어를 타고 나온 어르신의 촛불, 가게 문을 닫고 나온 상인의 촛불, 기자의 촛불, 정치인의 촛불. 서로 다른 사람,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성별, 서로 다른 직업, 서로 다른 인종, 서로 다른 정치성향. 다르다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그저 촛불을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왜 그렇게도 꿋꿋했을까? 이미 수백 아니, 수천 번을 지고 아파하며 버틴 삶인데. 무슨 기대가 있어 우리는 멈추지 않았을까? 아마 어두운 곳에 익숙해진 우리는 작은 불빛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나 보다. 그렇게 촛불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강한 바람에도 꺼질 기미 없이 타올랐다. 그렇게 우린 밝지도 않은 빛으로 까만 밤하늘을 감쌌다.

 

2017년, 환상이 거의 현실이 될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수능이 끝난 고3은 대학생이 될 준비를 하고, 걸음마를 뗀 아이는 이제 꽤 잘 걷는다. 대학생은 대학에, 직장인은 직장에, 외국인은 고국에 갔다. 주말에는 가족들이 모처럼 외식을 하러 나간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난 몇 달간 뜨거웠던 촛불은 이제는 손에서 가슴으로 옮겨 두었다. 언젠가 타오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두었다. 바람도 불지 않고, 영원히 따뜻한 곳에.

영화 1987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1987년,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아무런 죄도 없는 학생이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죽었다. 사건의 책임자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부하 직원을 시켜 시신을 화장하려고 하지만, 타협도 꼼수도 통하지 않는 ‘똥개’검사에게 뇌물이나 협박은 통하지 않았다. 끝까지 시신을 지킨 검사는 결국 시신을 부검하게 만든다. 며칠 뒤 경찰 측에서 밝힌 사인은 심장마비. ‘책상을 쿵! 하고 쳤더니 헉! 하고 죽었다.’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소식을 들은 또 다른 ‘똥개’ 기자는 이 사건에 강한 의문을 품고 사건을 취재한다.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한편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다. 부조리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재야인사가 그들이다. 어느 날, 이들의 조력자였던 교도관은 교도관장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과정에서 교도관은 잡혀 고문을 받게 되고, 소식을 전하는 일을 조카에게 부탁한다.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두 개의 상황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비밀이 폭로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주제와 연출이 정말 멋진 영화였기에 보는 내내 영화 속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정신을 쏙 빼놓은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인물’이었다. 때문에 나는 인물로 1987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 그리고 인물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1987년, 이 영화는 꼭 그때의 사람들이 사는 세상 같다. 물론 그 중에서도 사건과 관계가 있고, 사연이 있는 사람들만 골라 표현한 것이긴 하겠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 인물들은 어쩐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아래의 세 가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물’이라고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추려 적었다.

 

# 인물이 많은 영화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헌데 이 영화, 인물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앞서 소개한 인물 중 연희(김태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실존 인물이거나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인물이다.

 

1. 박처원 처장 (김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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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악당처럼 묘사되는 인물이다.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 사건의 총 책임자이자 모든 사건을 무마시키고 덮어버리려고 하는 인물이다.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부르며 모든 악행을 애국이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는 사람. 이외에도 자신에게 해가 되거나 계획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을 ‘빨갱이’라는 명목으로 제거하는 사람이다.

 

2. 최환 검사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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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처장과 가장 명확한 대립 구도를 이루는 인물. 극 중에서는 박처장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고 무엇보다 박처장의 사건 은폐를 위한 시신의 화장을 막고 부검을 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어 마지막까지 영화를 이끈다. 극 중에서 가장 유머러스하다고 느낀 인물이다.

 

3. 조한경 반장 (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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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종철 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4명의 범인 중 한 명으로, 박처장이 시키는 모든 일을 받드는 꼭두각시다. 박처장의 꾀에 넘어가 감옥에 들어간다. 이후 기소 유예로 풀려난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분노하여 박처장에게 이빨을 드러내지만, 가족을 인질로 삼은 그에게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된다. ‘무엇이 애국인가?’라는 영화의 중심을 꿰뚫는 질문을 하는 동시에,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는 인물이다.

 

4.윤상삼 기자 (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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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이다.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하고, 이후로도 끊임없이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 특종을 위해서 달리기는 하지만, 가슴 아픈 현실을 슬퍼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는 인물.

 

5. 한병용 교도관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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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으로 기자 출신 민주화 운동가인 ‘이부영’에 조력하는 인물. 잡지 선데이에 적힌 메시지인 ’비둘기’를 재야인사인 김정남(설경구)에게 전달하는 역할. 얼굴이 못나서 늘 길거리에서 검문을 받지만, 굴하지 않고 조력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누나와 조카(김태리)와 함께 살고 있다.

 

6. 연희 (김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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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용의 외모 때문에 길에서 검문을 받는 일이 잦아 그 대신 비둘기를 전달하는 역할. 정치나 민주화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나, 주변 인물로 인해 가슴속에 있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불씨가 살아난다.

 

7. 이한열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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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잘 생긴 청년이자 대학생 민주화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인물. 시위에 휘말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연희(김태리)를 구해주고, 그녀에게 같이 민주화 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극 중에서는 특별출연이지만 주조연급 비중과 비주얼(?)을 담당한다.

 

8. 김정남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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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처장이 끈질기게 잡으려고 하는 인물. 재야인사의 수장이자 비둘기를 받는 당사자. 절에서 숨어 지내며 현재의 정권에 저항한다.

 

나는 이 영화에 주인공도 없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이끄는 핵심 사건인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망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다. 너나할것 없이 분노했고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광장에 모인 모든 국민이 함께 생각하고 힘을 모아 만들어낸 6월 민주항쟁이다. 여기에 주인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서 인물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읽었을 것이다. 특별히 눈에 띄진 않지만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영화에는 사건만 있고 주인공은 없다. 감독은 이 본질을 잘 이해했다.

 

# 절대 악역이 없는 영화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1987년이라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렇기에 인물을 크게 둘로 나눠 보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들과 밝히려는 사람들, 또 현재의 정권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진실을 감추는 사람과 당시의 독재정권을 지키려고 한 인물을 악(惡)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모든 문제의 핵심인물인 박처장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애국’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이 표현을 역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민주화의 길을 걷는 우리의 상황이 반영된 입장일 뿐이다. 때문에 감독은 이것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조한경 반장(박희순)의 대사를 통해 박처장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반문한다. ‘무엇이 애국인가?’

 

한편 조한경 반장 역시 박처장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일들이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애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가족을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박처장에게 ‘박처장의 애국’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과 분노를 본다면 우리는 조반장 역시 ‘절대 악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때문에 나는 이 영화에서 사람 냄새를 느꼈다. 각자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는 삶.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치열하고 고독하고 냄새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그들의 삶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 우리의 삶은 그런 것이다.

 

#너의 이름은? - 1987년이라 쓰고 2017이라고 읽을 수 있는 인물들

뜨겁게 차오른다. 영화 1987 리뷰

(출처 -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1987년으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옷차림도, 문화도, 생각도 그리고 정치적 상황도 다르다. 많은 것이 바뀌었기에, 우리는 모두 달라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2016년, 20년 전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그 때의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고 멋진 방법으로 다시 한 번 광장에 모였고 부패한 정권과 싸웠다. 똥개 검사, 똥개 언론인, 용감한 조력자, 가슴 아프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은 2016년에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다시 한번 ‘최초’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1987)의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였다. 영화 ‘너의 이름은’처럼 우리의 몸이 뒤바뀌지는 않았지만, 1987의 등장인물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 만약 1987년으로 갈 수 있다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름을 묻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덧붙여 영상을 넣는다. 시간이 괜찮다면 살펴 보시기를

공정필 에디터 gongpil92@gmail.com

2018.01.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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