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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손없는 색시 -
상처, 그 후의 사람들은...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손없는 색시 - 상처, 그 후의 사람

지하철의 환승통로에서 문득 위와 같은 사진을 마주한 적이 있다. 바로 <손 없는 색시>라는 인형극의 포스터였는데, 이전에 본 적없는 느낌의 이미지에 한동안 그 인쇄광고를 주시한 기억이 있다. 포스터가 풍기는 독특한 느낌에 끌려 문화초대를 신청하게 된 이 인형극은 독특한 포스터에 걸맞게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서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손없는 색시 - 상처, 그 후의 사람

이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는 '손없는 색시'라는 민담에서 시작된다. 본 설화의 내용은 계모의 모함으로 양손이 잘려 쫓겨나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 후 갓난아이와 다시 내쫓긴 색시가 우물에 떨어지는 아이를 잡으려는 순간 양손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연극의 시놉시스에서는 계모의 의해 잘려나간 손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색시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설정으로 변모한다.

 

전통과 연희뿐 아니라 음악극, 판소리, 다원분야 공연극작 작업까지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글쓰기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경민선 작가는 과거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나 고전을 재해석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개인의 삶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고 했다.

"욕망을 상징하는 손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죽음과도 같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면서, 구조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연히 겪게 되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견뎌내고 삶을 이어가는지에 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이 희곡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손없는 색시 - 상처, 그 후의 사람

이런 맥락으로 봤을 때, 원작에서 계모에 의해 잘려나간 손은 사회적 억압이 개인을 파괴시키는 과거 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장치이고, 새롭게 각색된 시놉의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손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 지쳐 스스로 여러 욕구를 포기하는 N포 세대를 연상시킨다.

 

전자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후자는 자신의 의지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 전자나 후자나 모두 외부의 압력에 의해 떨어져 나가는 손이다. 과거 사회의 압력은 직접적으로 개인의 욕망을 통제하지만 현대사회는 표준화된 규격의 강조, 극심한 빈부격차의 구조적인 문제를 통해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욕망을 거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상처를 입고, 그 흉터 속에서 허우적대며 상처를 안은 채 버텨나간다.

손없는 색시 - 상처, 그 후의 사람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에 늘 자신의 아픈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색시. 어느 날, 색시의 손은 더 이상 색시의 아픈 가슴을 만지기 싫다며 스스로 떨어져 나와 떠나 버린다. 극심한 고통에 색시가 목을 매는 순간 태중의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어미의 슬픔을 품고 태어난 갓난아이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색시는 노인네 아들 붉은점의 수의를 직접 만들어주기 위해 손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색시, 색시의 손, 색시의 늙은 아들의 이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가보면, 상처와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을, 이를 겪은 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손없는 색시 - 상처, 그 후의 사람

경민선 작가는 “이전의 삶으로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 작품에서 상처의 회복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손 없는 색시>의 설정에서 색시의 손은 아무리 붙이려 해도 원래 붙어있던 위치에 붙을 수가 없다. 대신 노인으로 태어났던 아이가 손과 합쳐지면서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서사 구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상처가 회복된다는 것은 본래의 상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로의 나아감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미리보기를 위해 받은 공연의 자료를 훑으면서, 사실상 이 공연을 벌써 깊이 음미한 듯 했다. 현대사회의 모순을 구전 설화와 민담을 통해 비트는 작가의 말과, 분위기있는 포스터, 인형극이라는 독특한 연출방식까지...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공연이다.

손없는 색시 - 상처, 그 후의 사람

한나라 에디터 flqlddkd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