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은 ()이다, ‘1인용 식탁’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나는 혼자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당 안에는 둘씩, 셋씩,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모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있다.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사람은 없다. 나는 식당의 구석자리를 찾아 앉고 주문을 한다. 빨리 먹을 수 있는 우동을 시킨다. 곧이어 우동이 나오고 나는 시선을 그릇에만 고정시킨 채 빠르게 먹는다. 내 시선은 그릇에 있지만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급하게 밥을 먹고 식당을 나온다. 내게 남은 건 만족스러운 포만감이 아닌 체한 듯한 더부룩함이다. 그때 벽에 붙은 '혼밥 잘하기' 학원 포스터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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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식사는 지겹다. 급히 찾아낸 단어였지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혼자 먹는 것은 정말 지겨운 일이었다. 아니, 두렵기까지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먹는 식사가 아니라, 혼자 음식점에 가서 사 먹는 식사였다.

윤고은 작가의 소설집 '1인용 식탁'에 담겨있는 단편 '1인용 식탁' 속 주인공 오인용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사 사람들에게 점심시간마다 버림받는다. 처음에 그는 그들과 함께 점심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람들은 그와의 점시 식사를 피한다. 모두 그를 빼고 끼리끼리 밥을 먹으러 떠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밥을 먹기 위해 혼밥 하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등록한다.

 

혼자 먹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만약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장소가 나를 아는 사람이 많은 학교, 회사 주변 식당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아마도 밥을 굶으면 굶었지 혼자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한때는 정말 죽도록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싫었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어쩐지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처량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혼자 먹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도 싫었다. 특히 아는 사람이 많은 학교 주변에서 밥을 혼자 먹어야 할 때, 혼자 밥을 먹다 나를 아는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나는 그 순간이 현실이 된 것도 아니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을 피해 소설 속 오인용처럼 가게 밖을 기웃거리다 그나마 한가한 곳, 사람이 적은 곳, 혼자 먹는 사람이 많은 식당을 골라갔다. 맛,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중요하지 않다. 혼자여도 처량하지 않을 식당이 필요할 뿐이다.

홀로 점심을 먹으러 갈 때는 사무실을 중심으로, 반경 5백미터 이내의 음식점을 제외했다. 발이 사무실로부터 멀리, 멀리 가는 동안 눈은 음식점의 통유리창을 훑었다. 혼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이거나, 전체적으로 손님이 없는 음식점을 찾아서, 걷고 훑고 걷고 훑고 그러다가 한 곳, 당첨이 됐다. 메뉴가 뭔지는 들어가서 확인하면 된다. 혼자 먹는 사람이 메뉴보다 더 고려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니까.
혼자 먹는 식사에도 레벨이 있다. 오인용이 혼자 밥 먹기 익숙해지기 위해 등록한 학원에서도 식당에 따라 레벨을 나눈다. 혼자 가서 먹기 쉬운 패스트푸드, 분식 등 1단계, 2단계를 지나 결혼식, 돌잔치에서 밥을 먹는 3단계, 그리고 최종 단계인 5단계 횟집과 고깃집까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인원수를 묻고, 1인분의 식사는 준비되지 않는 '혼자' 온 손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공간.
혼자 먹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혼자 먹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육지가 있으면 섬도 있는 것처럼, 무리가 있으면 개인도 있는 것이다. 군데군데 떨어진 섬들, 그리고 이곳에 내가 아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안도감이 소화를 도왔다.
혼자 먹는 밥은 ()이다, ‘1인용

'1인용 식탁'은 단순히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혼자 먹는 밥을 넘어 '혼자'가 되어 겪는 '외로움', 그리고 사회 속 어느 집단에나 존재하는 '소외된 존재'의 이야기를 들춰본다. 혼자라는 사실이 주는 어쩔 수 없는 외톨이의 모습을 그려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둘씩, 셋씩, 누군가와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반드시 그곳엔 홀로 있는 사람이 있다. 혼자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다수의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짝수 다음은 홀수, 그렇다. 모두에게 짝이 있다면 좋겠지만 짝수가 존재하면 '홀수', 혼자인 사람도 반드시 존재한다. 그는 이제 혼자라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한다. 모두 지금은 둘씩 짝을 지어 한 식탁을 공유하고 있지만 식탁에서 나와 헤어지면 그들은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다. 모두 잠시 '둘'이 될 뿐 사실 모두 혼자다.

나를 에워싼 수많은 행성들 속에서 나는 절대 '껴' 있는 게 아니라 '주목'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고깃집에서도 결혼식 뷔페에서도 무리 없이 혼자 떨어진 내가 외로운 게 아니라 돋보이는 것처럼, 나는 지하철의 중심, 지구의 중심, 우주의 핵, 세상의 봉이라는 생각으로 충만했다.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 인파 속에 휩쓸리면서도 나는 주인공이었다. 단지 내 궤도를 이탈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먹는 식사는 ( ) 이다.'의 빈칸에 '어렵다'를 적는 사람이다. 혼자 밥을 편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인 곳 한가운데에 홀로 밥을 태연하게 먹기란 어렵다. 혼자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혼자라는 사실은 아무렇지 않지만, 짝을 이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혼자라는 사실은 어쩐지 흠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주는지 주지 않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왠지 짝을 이룬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다. 불편한 시선을 받아 가며 먹는 밥은 즐겁지 않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혼자'라는 사실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는 사실 모두 혼자다. 무언가를 함께 하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자리로 홀로 걸어가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기쁨, 슬픔, 여러 감정과 이야기를 서로 공유할 수도 있다.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다는 사실은 때로 그 자체로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라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모든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할 수는 없을 테니까. 혼자라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

 

김하늘 에디터 haneullkim@naver.com

2018.05.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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