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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Review

엄마니까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엄마도 엄마로서의 삶은 처음일테니.

엄마니까

머리핀에 담긴 추억

문득 일곱 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살던 집의 뒷골목에서 놀고 있던 나를 엄마가 살며시 불렀다. 보통 그렇게 조용히 부를 때는 세 살 터울 남동생 몰래 내게 무언가를 준다는 뜻이었다. 당시의 남동생은 질투의 화신이자, 누나 바라기여서 내가 먹는 것, 하는 것 하나하나를 다 따라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내가 입던 토끼인형이 달린 분홍색 멜빵 바지도 내가 더이상 못 입게 되자, 동생이 주구장창 입고 다녔으니 말 다했다. 아무튼 간에 그 때 엄마를 따라 안방으로 조용히 들어가서 받은 건 머리핀이었다. 내가 갖고 싶어 하던, 일곱 살 나에겐 너무 비싸게 느껴졌던 머리핀. 엄마는 좋아하는 내 모습을 구식 필름카메라에 담았는데, 아직도 사진첩 속에는 촌스럽게 웃고 있는 그 보다 더 촌스러운 핀을 한 내 모습이 담겨 있다.

 

왜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이게 생각난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때의 엄마가 너무 눈에 선하기 때문이리라. 내가 예쁘다라고 했던 머리핀을 곱게 포장해서 주던 엄마의 표정은 나보다도 더 신나 보였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우리 엄마에게 나는 항상 최우선이었다. 대학입학을 축하한다고 노트북을 사주고, 휴학기간 동안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카메라를 사주고, 취직을 축하한다고 가방을 사주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한 투자는 사치라며 3만원짜리 가방도 고민 끝에 내려놓던 우리 엄마. 그런 촌스러운 우리 엄마와 캐나다 유학까지 동행했던 책 속 엄마는 이상하게도 묘하게 닮아 있었다.

어디서든 희생은 엄마의 몫인가

이 책은 세 아이의 유학 생활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캐나다에서의 6년은 낯섦 그 자체였다. 아는 이 하나 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세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본인조차도 적응하기 힘든 타국에서의 삶에서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세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때로는 아름다워서 슬퍼질 때가 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나는 마음이 시렸다. 나는 이 낯선 나라에
놀러 온 게 아니라 살러 온 것이었다.

조기 유학이 유행처럼 번지던 그 시기에, 그녀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특히나 몸이 약한 둘째의 영향이 컸을테다. 현실적으로 돈을 벌 사람이 필요하니 아이 아빠는 한국에서의 삶을 유지하고, 아이들만 데리고 떠나온 엄마. 처음 온 캐나다 빅토리아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마주한들 마음의 여유가 생길리 만무했다. 삶을 이어간다기 보다는 삶을 버텨내야 했으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아들의 같은 반 학부모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한다. 몰랐다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더니 따돌림을 당하고 있던 아들이 너무 화가 나서 엄마가 보내는 것처럼 가해학생의 어머니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주인공은 아들이 대견하다는 마음 보다는 허망함을 느낀다.

 

나는 항상 입버릇처럼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곤 했다. 생애 첫 해외 여행을 준비할때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부모님이 건네주시는 용돈을 거절했다. 나는 당연히 그게 맞는 줄 알았고, 그래야 엄마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내게 니가 자꾸 이러니까 너무 속상하다며 처음으로 속 마음을 내비쳤다. 내가 행여 부담될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가 모를리 없었다. 그게 엄마에게는 꽤나 속상한 일이었을테다. 자식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내가 은연 중에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그때 처음 느꼈다.

엄마도 엄마로서의 삶은 처음일테니.

엄마라는 직업은
자격증도 없고 수습기간도 없다.
너무 힘겨워 도망치고 싶을 때
어김없이 엄마가 떠오른다.
그녀가 있어 지금 내가 있다.

한국에서는 쉬지 않고 일했던 워킹맘. 아이들의 유학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낯선 타지로 온다는 것은 평생을 해오던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함을 뜻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느날 손주의 연주회에 입히기 위한 스웨터 숄을 떠온 자신의 엄마와 마주한 후 형용불가한 어떤 감정에 휩싸인다. 문득 자신이 어릴 적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종일 스웨터를 뜨던 엄마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일을 시작했던 우리 엄마는 꽤 이름 있는 기업에서 일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즐기던 멋들어진 처녀였다. 하지만 여러가지 가정사로 인해서, 나의 육아로 인해서 꽤 오랜 세월을 경력단절 여성으로 지내야했다. 가끔 엄마의 ‘만약’을 상상해본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지 않고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았다면 엄마의 삶을 좀 더 행복했을까. 엄마로서의 삶이 아닌 여자로서의 삶이 궁금해졌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엄마의 삶의 이유가 내가 아니었으면

나를 들여다보니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중략>

내 마음이 촉촉했을 때를 기억해 내려 애쓴다.
엄마가 아닌, 오직 '나'만 생각해도 괜찮았던 시간들,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내가 꾸었던 꿈...

자신의 꿈은 전부 내려놓은 채 자식들의 뒷바라지에만 매진했던 6년의 시간. 그 시간을 지나오자 이제는 자신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게 공허하다. 자신의 꿈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은 자식들이 자신의 삶의 이유이자 목표 그 자체였다. 그 목표가 없어진 지금, 그녀에게 삶의 목표란 무엇일까.

 

항상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의 삶을 살라고. 엄마를 위한 결정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엄마를 제일 먼저 생각하라고. 내가 엄마의 짐이 되기 싫었다. 그로 인해서 내가 마음의 부담감을 갖게 되는 것도 솔직히 싫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재의 엄마의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항상 ‘엄마’하면 따라붙는 ‘희생’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그에 무뎌진 나 같은 사람들로 인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일기를 쓰듯이 하나하나 덤덤하게 써내려간 주인공의 글은 그래서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엄마'로서의 삶을 마무리 짓고 '나'로 돌아가는 과정, 그 과정의 끝에는 행복만이 가득하길 바란다.

엄마니까

엄마니까

  1. 지은이 : 박영숙
  2. 출판사 : 디스커버리미디어
  3. 분야 : 에세이
  4. 쪽 수 : 288쪽
  5. 발행일 : 2019년 1월 10일
  6. 정가 : 15,000원

유다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