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사 조태희, 한국 영화 분장의 방대한 기록 '영화의 얼굴창조展'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의 위치부터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 거실 조명의 밝기 등 영화를 찍을 때는 모든 것이 의도가 있는 연출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배우의 모습을 꾸미는 일, 즉 분장에는 얼마나 많은 의도가 숨겨 있을까. 그저 막연하게 '분장은 정말 중요하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영화의 얼굴창조展>을 보고난 이후 조금 더 구체화 됐다.

 

영화 속 모든 장면에서 배우의 외관은 단순하게 보여지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 숨겨진 의도를 따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마치 영화 한 편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장은 영화 속 또 다른 예술이었다.

왜 이 전시의 제목은 '얼굴 창조전'이어야 했는가

종종 어떤 이에게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분장사는 '천의 얼굴을 창조하는 예술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할 것 같다. 분장사는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먼저 등장인물의 성격, 나이, 특징 등에 맞게 컨셉 드로잉 작업에 들어간다. 수많은 자료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 속 인물을 구체화하는 단계인 것이다.

©사도(유아인/세자 역)의 드로잉

컨셉드로잉 작업이 전시된 스케치관에서 조태희 분장사의 손길을 거쳐간 많은 영화 속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장면에 따른 각 캐릭터의 특징에 맞춰 드로잉을 하고 그 옆에 글로 써 넣은 정밀 묘사는 이 얼굴을 창조하기 위해 분장사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을지를 보여준다. 스크린에서 본 캐릭터는 처음 이렇게 탄생했구나! 라는 생각에 컨셉드로잉 하나 하나 열심히 살펴보게 됐다.

 

이렇게 컨셉이 잡히면 그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를 제작해야 한다. 특수 가발 및 수염, 장신구, 각 배우의 분장도구까지 모두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왜 이병헌(<광해>, 광해 역)은 이 장면에서 이런 장신구를 해야 했는지, 김윤석(<남한산성>, 김상헌 역)의 수염은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른지, 또한 조정석(<역린>, 을수 역)은 어떤 가발을 썼는지 등이 모든 전시품 옆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특히 이병헌이 1인 2역을 맡았던 <광해>의 분장 설명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광해 역과 하선 역은 얼굴은 같지만 전혀 다른 인물이고 다른 성격을 가졌기에 분장 역시 톤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 카메라의 타이트 샷까지 고려하여 이병헌의 실제 수염 굵기의 두께로 수염을 붙여 현실감을 더했다고 하니, 영화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분장 아티스트에게 '나'를 맡긴다는 것은 영화 속 인물이 되기 전 나를 버리고 영화 속 '나'로 다시 창조되는 시작이다." 조태희 분장사의 코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들의 뒤에는 그 얼굴을 창조하는 분장사가 있었다. 전시의 제목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분장의 모든 것

이번 전시에는 분장사 조태희가 2012년 작품부터 컨셉드로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완성된 캐릭터가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수집하고 제작한 것이다. 500여 점에 달하는 이 전시품들이 모아지기까지는 총 7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광해>와 <역린>, <사도>, <남한산성> 등의 사극 작품은 물론이고 <꾼>, <형>, <변산> 등의 현대 작품 속 분장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었다.

<광해>, <역린>, <사도>, <남한산성>, <안시성>은 섹션을 나누어 전시를 기획했는데, 각 영화의 ost가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마치 그 영화를 보던 그 때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역린관'은 정조와 정순왕후의 대립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역린관 섹션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상반되게 바라보는 구조로 구성했고, '남한산성관'은 남한산성에 고립되어 있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전시품을 작은 공간에 몰입되게 배치했다. 각 영화와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린 전시 구조가 돋보였다. 그리고 벽에 붙여진 영화 속 스틸컷을 이용하여 분장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다시 한번 비교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이제 분장이 단순히 '메이크업'의 같은 말이 아닌, 영화 속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고도의 기술임을 알아야 한다. 컨셉을 잡는 것부터 제작 및 캐릭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분장사의 역할은 생각보다 더 방대했다. 조태희 분장사가 지난 17년 간 치열하게 상상하고 고민하고 결국 현실화시켜 온 그 모든 노하우가 이 전시에 있었다. 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정말 분장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영화의 얼굴창조전>을 보기에 앞서, '기대 반 걱정 반' 이 담긴 프리뷰를 썼었다. '분장'이라는 소재로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시는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분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컨텐츠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전시품 하나 하나 분장사의 정성과 노력이 엿보여서 감동이었고, 분위기나 전시 구성, 전시품 배치 등도 관람객이 흥미로울 수 있는 점을 최대한 이용한 듯 보였다. 전시를 둘러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조태희 분장사의, 그에 의한, 그를 위한 전시였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사용한 조태희 분장사의 분장가방은 여기저기 긁히고 때가 타고 낡은 상태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세월의 흔적에서 최고의 분장사가 되기까지의 노고가 엿보였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수많은 영화들도 완성도 있게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분장사 조태희에 의한 한국 영화 분장의 발전과 오늘날 전시로 탄생될 수 있었던 그 방대한 기록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영화의 얼굴창조展 - 한국 영화 분장의 방대한 기록 -

  1. 일자 : 2018.12.29 ~ 2019.04.23
  2. 시간 : 11:00~20:00 (19:00 입장마감) * 연중무휴
  3. 장소 : 아라아트센터 B1~B4
  4. 티켓가격 : 성인 15,000원 / 초중고교생 10,000원 (미취학아동 무료입장)
  5. 주최 : ㈜하늘분장
  6. 관람연령 : 전체관람가

이승현 에디터

2019.04.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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