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전성시대의 서막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지병수 할아버지

최근 미디어를 통해 단연코 가장 폭발적인 화제를 모은 인물이 있다. 바로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인기상을 수상한 지병수 할아버지다.

 

보통 신나는 트로트나 70-80년대 가요를 선택한 전국노래자랑의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지병수 할아버지는 비교적 최신 가요에 속하는 2009년 곡 손담비의 ‘미쳤어’를 선곡했다. 70대의 할아버지가 20대에 어울릴 법한 가요를 선택했다는 것부터 이미 파격적인데, 거기에 무용으로 갈고 닦은 춤솜씨와 넘치는 끼를 마구 발산하셨으니 관객과 시청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병수 할아버지의 무대가 몰고 온 화제 현상은 사실 알고 보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노인 세대를 이전과 다른 친근한 시각으로 조망하려 한 미디어의 시도가 마침내 대중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불과 10년 전이었다면 그저 ‘웃긴’ 혹은 ‘특이한’ 할아버지로 잠깐 회자되는 영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미디어는 이 영상이 화제가 된 후 바로 그 너머에 있는 지병수 할아버지의 삶에도 곧장 관심을 보였고, 대중 또한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노년층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망해 큰 성공을 모은 대표적인 첫 콘텐츠로는 바로 2013년 방영된 tvN의 예능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일 정도로, 시니어 세대를 ‘귀여울 정도로 친근하게’ 그리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부터 네 명의 노년 배우들을 ‘할배’라고 지칭하고, 자막을 통해 성을 떼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애칭을 붙여 주기까지 했을 정도다.

 

<꽃할배> 시리즈의 성공으로부터 비롯된 시니어 세대에 대한 미디어의 주목은 여러 콘텐츠로 확산되었고, 이를 통해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시니어들을 새롭게 주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시니어 모델과 시니어 유튜버들의 예가 보여주듯, 이제 노년층과 젊은 세대의 영역은 점점 흐려지고 있는 추세다. 사회 전반에서 시니어들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그들을 ‘귀여운’ 어르신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처럼 미디어와 여러 문화 콘텐츠들이 노년층을 새롭게 주목하는 근래의 트렌드가 가진 도드라진 특징은, 바로 노인을 젊은 세대와 동떨어진 세대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 혹은 젊은 세대보다 더욱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선지자’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마디로 미디어가 노인을 예전보다 더욱 ‘친근한’ 존재로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시니어 유튜버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박막례 할머니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첫째, 고령 사회로의 급속한 진행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의 노인 인구 수는 젊은 세대의 인구 수를 초월한 상태다. 이는 곧, 몇 십년간 젊은 세대 중심으로 주도되어 오던 사회문화적 풍토가 크게 변화되며 시니어 세대가 문화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콘텐츠를 주로 제작해내는 젊은 세대의 제작자들에게는 실버 세대와 젊은 세대들 모두가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즉, 예전 노인들을 위한 소수의 콘텐츠만이 존재했던 것에서 탈피해,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회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둘째, 시니어 세대 자체가 더 이상 이전 세대의 노인 집단과 그 결을 달리한다는 것도 지금 현상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제 노인 세대에는 ‘베이비부머’ 세대들과 그 이하 일부 세대들이 편입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이제부터 ‘신 노인 세대’라고 지칭하겠다) 약 십 년 전까지의 노인 세대와는 달리, 신 노인 세대의 문화는 예전 노인 세대가 겪어온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예전의 노년층이 공감하는 감성이 신파성 짙은 트로트와 ‘전원일기’와 같은 농촌 소재로 대표되는 것이었다면, 이제 신 노인 세대가 가진 감성은 젊은 세대의 감성과 그 공통분모가 조금씩 겹치기 시작한다.

최근 패션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시니어 모델 김칠두 할아버지

그들은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 속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쳤다. 기술의 발전을 온 몸으로 겪으며 미국의 올드 팝(포크, 컨트리 음악 등)등의 해외 문화를 LP로,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로 향유하던 ‘낭만의 세대’이기도 했다. 한편 중년이 되었을 때는 컴퓨터와 핸드폰을 쓰기 시작했기에 신 노인 세대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인터넷에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이처럼 시대 흐름에 이전 노인 세대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았기에 그들은 젊은 세대의 문화에 거부감이나 이질감을 비교적 덜 느끼고, 훨씬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포용적인 태도가 강하다. 따라서 결국 지금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귀여운 '먹방' 콘텐츠로 사랑받고 있는 '영원씨' 김영원 할머니 / 출처- '영원씨TV' 유튜브 채널

이러한 새로운 시니어 콘텐츠의 탄생과 확산은 세대 간 소통의 통로를 다양화하는 한편, 오랫동안 겪어 왔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세대 갈등을 해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젊은 세대로서의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이 있다면, 이것을 일시적인 대중문화적 ‘트렌드’로 여기며 시니어 세대에 대한 호기심을 단순하게 소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시니어를 이전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해서, 결코 그들을 지혜로운 웃어른으로 존중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잃어서도 안 될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니어 콘텐츠의 확산은 더욱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결국 사회문화 전반에 있어서 필연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주목으로 시작된 노인 세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관심이, 부디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강한 선순환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결국 노인은, ‘모든 우리의 미래’다.

 

김현지 에디터

2019.04.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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