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콘텐츠산업을 좀먹는 벌레들

[컬처]by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이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의 히트로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넷플릭스가 대화의 주제에 오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OTT 업계의 견제와는 달리 소비자들의 반응은 우수한 국내 콘텐츠 개발, 다양한 콘텐츠 접근가능성 등의 이유로 긍정적인 편이다. 적어도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의 ‘진짜’ 장애물이 등장했다. 정부의 규제도, 동종업계의 견제도 아닌 바로 불법 경로를 통해 콘텐츠를 접하는 벌레, ‘불따충’이다.

<킹덤>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스트리밍하는 사진이 올라왔는데, 놀랍게도 이 중 많은 인증샷이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하는 화면이 아니었다. 어둠의 경로로 영상을 구해 보는 것이다. 내가 적잖이 충격을 느낀 건 넷플릭스의 한 달 이용료는 약 만 원, 그마저도 여러 사람과 계정을 공유하면 약 3~4천원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얼마나 저작권 의식이 밑바닥인지 드러나는 사례다.

 

사실 앞의 사례가 아니어도 국내 소비자들의 저작권 보호 인식에 대한 수준이 매우 낮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검색창에 콘텐츠 제목을 치면 쉽게 소위 ‘어둠의 경로’를 묻는 이들을 찾을 수 있다. 익명의 세계이기 때문에 당당한가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오프라인에서도 태연하게 불법으로 콘텐츠를 접할 방법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 어디서 볼 수 있어?”라는 질문이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느껴왔다. 매우 희귀한 작품이 아닌 이상 대개 검색하면 구매할 경로가 좌르르 나오는데, 왜 찾아보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 질문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 (불법으로) 어디서 볼 수 있어?”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언제, 어디서부터 대중의 저작권 보호 의식은 잘못된 걸까?

The Sims 모바일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PC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 유일하게 <심즈>만이 지속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보였는데, 이는 <심즈>의 소비자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성 소비자는 정당하게 게임을 구매하여 이용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여성 유저들은 소위 <어둠의 경로>를 찾아볼 정도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을 만든다’라고 조소했다. 전형적인 ‘불따충’의 사고방식으로, 이들은 ‘불따(불법 다운로드)’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자위하는 특징이 있다.

'불따충'을 잇는 '공짜충', '불펌충'도 있다. 포털 싸이트에서 제공되는 무료 웹툰이 유료화되면 독자들은 엄청나게 반발한다. 이들은 웹툰을 ‘무료 콘텐츠’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콘텐츠를 이용해주는 나에게 감사하라”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최근 등장한 유료 웹툰 서비스 업계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해적판’을 제공하는 불법 싸이트다. 우수한 퀄리티의 국내 웹툰이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해외에서도 해적판이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국내 작가들이 해외팬(이들은 스스로를 팬이라고 자처한다)에게 직접적 항의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대다수가 ‘우리가 네 콘텐츠를 보기 때문에 홍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며 뻔뻔한 반응을 보인다. 얼마 전에 대형 불법 싸이트 ‘X토끼’의 운영자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타인의 소중한 콘텐츠를 훔친 자가 벌을 받은 건 다행이지만, 이 싸이트를 이용했던 사람들은? 그들 역시 가해자다. 그들은 또 다른 어둠의 경로를 찾아 나설 것이다.

일반인이 직접 불법 복제품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카피충'의 케이스다. ‘인스 판매’는 일반인이 불법 복제 및 유통에 일조하는 사례 중 하나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장기적으로 유행하면서 스티커 소비도 증가했는데, 저작권이 있는 캐릭터를 인스(인쇄한 스티커)로 제작하여 판매하는 일반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미성년자의 비율이 높은 것을 보면, 저작권 인식 교육이 매우 시급해보인다. 따라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국민 인식제고를 통해 올바른 저작권 이용환경 조성(한국저작권보호원 인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출처: 쿨 이너프 스튜디오

물론 소비자만 탓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업 역시 저작권 의식 없이 무차별적으로 표절을 저지른다. 특히 디자인 표절이 빈번히 발생하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쿨 이너프 스튜디오’의 인기 상품인 헤어밴드를 모 화장품 기업이 판촉물 기획을 맡긴 업체에서 표절을 한 경우가 있다. 법정에서 디자인의 유사성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업체는 작반하장으로 디자인을 소유한 브랜드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출처: 폼폼페이퍼 인스타그램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어느 정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1인 디자이너나 영세업자 등의 경우 훨씬 더 지적재산권 주장에 어려움을 겪는다. 개인의 힘으로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디자인 브랜드 ‘폼폼페이퍼’는 SNS에 카피 문제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미 많은 브랜드들이 많이 겪고 계신 일들이라 카피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더 심각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같은 물건들을 좋아하고, 같은 업종에 있으면서 왜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지요. 계속 제보되는 것들 더 많은 자료들 모으고 있고,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저작권, 창작물에 대한 인지와 도덕적, 양심적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 폼폼페이퍼

소비자부터 기업까지, 나라 전체가 저작권 보호에 둔한 이유가 뭘까?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창작자에 대한 대우가 미흡한 점을 원인으로 추측해본다. 한국은 창작자에 대한 대우가 최악이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너무나 쉽게 열정페이와 재능 기부를 요구받고, 평가절하되고, 기회를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눈초리를 받는다. 멀리 가지 않고 당장 구인 싸이트만 뒤져봐도 최저시급으로 디자인 작업을 구하는 공고가 허다하다.

 

모범을 보여야 하는 정부마저 이 문제에 떳떳하지 못하다.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떠올려보자.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열정페이로 인해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2016년에 정구호 연출가는 사퇴를 언급하기도 했다. 평창 조직위가 정식 계약을 미뤄 무려 7개월 간 사비로 일을 해왔던 것이다. 개막식, 폐막식 공연에 동원되었던 학생들도 임금을 지불받지 못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문제가 제기되고 나서야 조직위원회는 대책을 실행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식으로는 한국 문화예술계는 절대 활성화될 수 없다. 콘텐츠 창작자들이 앞으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발전은커녕 더욱 퇴보할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콘텐츠 보호와 창작자 대우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콘텐츠 그리고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본받아서 국가도 지금보다 더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구글 '토끼 귀 모자' 검색 페이지

마지막으로 소비자 개개인도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유명 아이돌이 착용하여 대히트를 친 토끼 귀 모자를 떠올려보자. 길거리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이 모자를 구매한 사람들은 정품인지 카피인지 따져봤을까? 이미 유행이 절정에 다다른 이후에서야 모자의 원작자에 대해 알려졌다. 제작자는 빨리 저작권 등록을 하지 못해 인기에 비해 이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표절을 한 업체들이 잘못했지만, 소비자가 저작권에 민감했다면 원작자가 정당하게 이익을 봤을 수도 있다.

 

저작권 의식을 갖자. 그러면 기업도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향유하고 싶은 콘텐츠에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자. 오랜 시간 불법 복제에 시달려 온 국내 콘텐츠산업의 발전은 어쩌면 소비자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오유미 에디터

2019.04.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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