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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어느 여배우의 자성과 수련

by아시아경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메가폰 잡은 문소리

어느 여배우의 자성과 수련

배우 문소리

여배우의 삶, 그대로 들여다 보기…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선 비극

활력 잃은 삶에 자기성찰과 수련…영화 통해 사람에 대한 아름다움 찾기

"감독은 이제 그만...배우로 봐달라"

 

배우 문소리(43)가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든 단편 세 편을 엮어 장편 '여배우는 오늘도'를 완성했다. 제목 그대로 여배우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 경험담은 아니다.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위해 있을 법한 상황을 가정하고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녀는 우아한 차림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손을 흔들며 방긋이 웃는다. 이 미소는 강남의 한 치과에서도 발견된다. 의사와 함께 엄지를 치켜세우며 찍은 사진이 대기실에 떡하니 걸려있다. 일상에서 웃을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뜸해진 러브콜과 울어대는 아이 탓에 주름과 대출금만 늘어간다. 시름을 잊으려고 오른 북한산 정상은 춥기만 하다. 피곤한 탓인지 화장조차 먹지 않는 얼굴. 여느 때처럼 선글라스로 울상을 가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문소리는 자신이 연기한 활기를 잃은 삶을 멀찌감치 물러나 관찰했다.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단다. 그녀에게 연출은 자기 성찰과 수련이었던 셈이다.

 

영화에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배우로서도 서늘하고 차가운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 냄새 나는 배역을 선호한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그렇게 느낀 바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뜨거운 마음으로. 창작자도 똑같더라. 인간은 물론 동물, 식물까지 애정 어린 손길로 매만져야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폭력적인 작품이라도 그 속에 사랑이 담겼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어느 여배우의 자성과 수련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스틸 컷

그 사랑이 이번 영화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애착이다.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만큼 나 자신을 공부하고 탐구해왔지만 여전히 파악이 쉽지 않다. 내 매력이 무엇인가? 누군가 눈을 꼽으면,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성격이나 기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면 영화가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을 듯싶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남편인 장준환 감독(47)의 "여보, 힘들면 뭐라도 하나 줄여요"라는 대사가 실감 난다.

 

"연극을 하면서 영화를 하게 됐다. 뒤늦게 공부하면서 가끔씩 '영화를 왜 만들고 보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여전히 정답을 얻지는 못했다. 초창기에는 실패가 두려웠다. 모자란 점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그래서 바짝 날을 세우고 작품에 몰두하려고 애썼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이해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대부분이 선의였을 텐데 조금 더 헤아려야 했다. 그런데 깨달았다고 많은 것들이 고쳐지진 않더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망각 속에 버려두고 만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배가 부르면 이런 생각도 못한다. 여전히 고파서인지 예민하다."

어느 여배우의 자성과 수련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스틸 컷

장준환 감독과 성격이 정반대인 것 같다.

 

"핸드볼이나 야구 경기를 볼 때 내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본다. 규칙을 설명해줘도 시큰둥하다. 오로지 영화에만 관심이 있다. 감독님은 리듬도 느리다. 가령 이삿짐을 나르면 내가 다섯 박스를 채울 때 책 두 권을 꺼낸다. 농땡이가 아니다. 그 속에서 숨겨진 돈을 발견하는 등 다른 무언가를 한다. 10년을 함께 살아도 성격은 변하지 않더라. 그런데 신기하게 잘 맞는다. 매사 신중한 자세로 내가 놓친 무언가를 찾아낸다."

 

왜 남편을 '감독님'이라고 부르나.

 

"애칭이다. 감독님은 집인데 촬영장에 온 것 같다며 손사래를 친다. 언젠가 슬그머니 '오빠'라고 불러주면 안 되겠냐고 제안하더라. 거절했다. 대신 휴대폰에 '장코치'라고 저장했다. 우리 엄마도 감독이라고 부른다. 환갑잔치라도 할 때쯤에 소원을 들어줄 생각이다."

 

술자리에 합석하는 남자들의 추태를 통해 연기력보다 외모를 선호하는 풍조를 코믹하게 그렸다.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니냐고 묻더라. 사실 이보다 더한 사람을 숱하게 만났다. 하나같이 나쁜 마음은 아닌데 표현이 서투르더라. 그래서 귀엽다. 한국 남성들은 길러지면서 여성을 배려하며 말하는 문화를 많이 겪지 못하는 듯하다. 어르신들도 그렇고. 그런 이들이 영화에서, 심지어 내 안에서도 공존하길 바랐다."

어느 여배우의 자성과 수련

배우 문소리

데뷔 초부터 여성영화의 필요성을 제기해왔지만, 충무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열악해졌다. 전반적으로 다양성이 떨어진다. 저예산과 블록버스터 사이의 영화들이 줄어 빚어진 현상이다. 영화산업이 커지면서 많은 것들을 놓쳤다. 오래 전부터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내 책임도 있다. '관능의 법칙(2013년·78만1516명)' 같은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했다.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매번 공론화에 이르지 못한 듯하다.

 

"일반적으로 대학교 영화학과에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다. 그런데 왜 촬영장에는 남성 스태프가 압도적으로 많을까? 할 말은 많지만 조심스럽다. 엮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리즈 위더스푼(41)이 세릴 스트레이드(49)의 '와일드'를 읽고 바로 동명영화를 제작한다는 기사를 읽으며 매우 부러웠다. 충무로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다고 바뀌겠어?'라는 시각도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은 미친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여성영화이기 이전에 자기 성찰과 수련의 결과다. 남다른 용기가 있었기에 제작이 가능했다고 본다.

 

"영화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든 내 이야기를 밖으로 드러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뜻하지 않게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면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 고되고 힘든 노동은 참을 수 있다. 단 의미를 잃어버린 작업은 견딜 수 없다. 없으면 함께라도 만들어야 한다."

어느 여배우의 자성과 수련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스틸 컷

감독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추구한 아름다움은 무엇이었나.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18년째 걸어온 영화인생을 돌아보니, 결국 남는 건 사람이더라. 이제 영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바람난 가족(2003년)'을 찍었을 즈음 유학을 갈까도 생각했는데, 이제는 죽으나 사나 영화를 해야 한다. 메가폰을 다시 잡을 생각은 없다. 연기를 하고 싶다. 그동안 기피했던 스릴러도 배역만 괜찮다면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걱정이다. 만나는 감독님들마다 또 만들라고 한다. 나를 배우로 봐줬으면 좋겠다(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