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넘실거린 초록숲 한여름 빛도 쉬어간다

[여행]by 아시아경제

여름 덕유산 여정- 유유자적 초록빛 계곡, 무주구천동 백련사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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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구천동 백련사 가는 숲길에서 만난 아침풍경이 맑고 싱그럽다. 새벽녘에 내린 비가 그치자 안개를 헤치며 한여름 햇살이 강렬하게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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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구천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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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주목 뒤로 첩첩한 산등성이 사이로 피어오른 구름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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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리조트 관광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내리면 덕유산 향적봉까지 20여분이면 오른다. 향적봉 가는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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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산수국, 참바위취,초롱꽃(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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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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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으면서 지리산으로 가는 도중 솟은 명산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기도 합니다. 주봉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1,300m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장장 30여km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탁월한 조망을 자랑하고 깊고 아름다운 계곡을 품고 있습니다. 바로 덕유산(1,614m) 이야기입니다. 덕유(德裕)는 덕이 넉넉하다는 말입니다. 그 넉넉한 덕으로 유명한 무주구천동 33경을 빚어 놓았습니다. 폭포와 담소, 기암절벽 여울들이 옥같이 맑은 계류와 함께 절경을 이루는 곳입니다. 숨이 턱 막히는 무더운 8월.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온몸에 땀이 흐르고 짜증이 밀려오지만 덕유산 무주구천동으로 여정을 권해봅니다. 깊이가 다른 풍광, 울창한 숲,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에서 느끼는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가 없습니다.


여름 덕유산의 매력은 무엇보다 시원하다는 것이다. 오슬오슬 소름 돋는 맑은 계곡과 싱그러운 녹음, 그리고 안개와 구름이 빚어내는 풍광은 황홀하다. 그중 무주구천동 백련사 가는길은 초록빛 싱그러운 숲과 담(潭),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곳곳에서 나타나는 비경에 찜통더위는 저만치 사라진다.


구천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오르는 길은 쉽고 유유자적이다. 백련사까지 6km 구간은 2~3m의 노폭으로 완만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무주구천동을 품고 있다. 구천동이라 하면 향적봉에서 북쪽으로 나제통문까지 이어지는 28㎞의 계곡을 말한다. 지금이야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지만 한때 구천동은 깊은 오지(奧地)마을을 뜻하기도 했다.


덕유대 야영장을 지나면 본격적인 숲길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를 잔뜩 머금은 초록숲이 맑고 싱그럽다.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산길을 따라 수려한 계곡들이 쉼 없이 뻗어있고 톡 건드리기만 해도 손에 초록물이 묻어 날 듯한 숲이 이어진다.


백련사길 중 인월담에서 안심대까지 약 3.3km 구간은 2016년에 복원한 구천동 어사길이다. 구천동 계곡을 사이에 두고 주로 오른쪽은 어사길, 왼쪽은 탐방로다. 두 길은 어사길이 끝나는 안심대에서 하나로 합쳐져 백련사로 이어진다.


어사길은 조선 후기 어사 박문수(1691∼1756)가 구천동을 찾아 주민에게 횡포를 부리는 자들을 벌하고 사람의 도리를 바로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져 이름을 붙였다. 어사길은 원래 계곡을 따라 집을 짓고 살던 주민들이 왕래하던 길이었다. 백련사 탐방로에서 계곡을 건너 나무 데크를 따라 길은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진다. 비를 맞은 물박달나무, 참나무, 버드나무, 물오리나무, 소나무 등이 물이 잔뜩 올라 싱그럽다.


내리막과 숲길을 지나 좀 더 걷자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타났다. 무주구천동 16경인 인월담(印月潭)이다. 달을 새겨놓은 큰 연못이란 뜻으로 계곡물이 암반 위를 지난 후 커다란 연못을 이루고 있다. 너럭바위 측면에는 '九千洞門'(구천동문)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탐방로 곳곳에는 이름도 예쁜 담들을 여럿 품고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거문고를 타는 듯 하다는 금포탄(琴浦灘, 22경), 호랑이의 서글픈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호탄암(虎嘆岩, 23경), 울창한 수림과 기암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청류계(淸流溪, 24경) 등을 천천히 감상하며 걷다 보면 안심대(安心臺)에 닿는다. 구천동과 백련사를 오가는 이들이 이곳에서 계곡을 건너면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생육신으로 익히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1435년~1493)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 생육신들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거나 아예 벼슬길에 나서기를 거부한 인물들이다. 김시습도 관군의 추적을 피해 각지를 떠돌다 덕유산에 이르렀다. 관군은 험한 산세에서 길을 잃고 그를 놓치고 말았다. 김시습은 구천동의 한 여울목에 이르러서야 잠시 발을 멈추고 쉬었다. 바위에 기대어 한시름을 놓고 쉬던 이곳을 사람들은 김시습이 안심하고 쉬었다 해서 이름을 안심대로 부르게 되었다.


안심대를 지나면 거울처럼 세상을 비춘다는 명경담(明鏡潭), 구천폭포, 세속에서 물러난 바위 언덕 이란 뜻의 이속대(離俗臺) 등 아름다운 경관이 연이어 나타난다. 잠시라도 지루할 틈이 없다.


계곡에 바짝 붙어 걷는 길은 물소리가 커다랗게 들려 천둥소리와 같다. 자연의 소리 중 아름답고 장엄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그 중에서도 비 내리는 숲이 만들어내는 화음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소리도 드물다.


백련사까지 6㎞ 거리가 어느새 지났는지 모르게 흘렀다. 백련사는 무주구천동 계곡의 끝부분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집 중 하나다. 옛날에는 이 계곡에 14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모두 폐찰이 되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다.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은거해 있었던 이곳에 하얀 백련꽃이 피어나 그 위에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다. 절집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그윽하다. 구름도 쉬어가듯 처마밑에서 다리쉼을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백련사에서 2.5km 산길을 오르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이다. 코스의 길이는 비교적 짧지만 끝없는 오르막의 연속이라 힘든 길이다. 하지만 향적봉으로 오르는 쉬운 방법도 있다. 무주리조트 관광곤돌라를 타면 된다.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서 내리면 서늘한 기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산 아래와 10도 안팎의 차이가 난다. 설천봉에서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진 탐방로는 편도 0.6km 구간으로 20분 정도 가면 정상이다. 탐방로를 가다보면 수백 년 된 주목과 다양한 아고산대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어린이나 노약자 등 누구나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서 서면 적상산, 남덕유산, 중봉 등 해발 1300m 안팎의 능선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정상은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사방이 뻥 뚫려 허파 깊숙이 상쾌한 바람이 들어찬다. 동쪽으로는 첩첩한 산등성이 너머로 가야산이, 남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아득히 펼쳐진다. 덕유산의 능선 중 향적봉에서 중봉,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덕유평전 이라고 부른다. 여름 덕유산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바로 이곳 덕유평전에 있다. 하지만 그런 덕유산의 비경을 눈으로 담기엔 짙은 비구름이 야속하기만 하다. 잠시 열리는 시야에도 감격스러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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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1. 가는길 : 수도권에서 가면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가다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무주 IC를 나와 좌회전해 19번 국도를 타고 적상면 삼거리 지나 사산삼거리, 치목터널과 구천동터널을 지나면 덕유대야영장쪽으로 가면 덕유산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백련사길은 자전거길도 조성되어 있어 자전거를 이용한 탐방도 가능. (주말, 공휴일, 여름 성수기는 안전 상 출입 통제)
  2. 볼거리 :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했던 안국사를 비롯해 머루와인동굴, 지전마을 돌담길, 반딧불이 춤추고 희귀 곤충이 반기는 무주반디랜드, 적상산, 무주리조트, 나제통문 등이 있다.
  3. 먹거리 : 어죽이 유명하다. 무주 읍내에는 여럿 식당들이 어죽을 내고 있지만 섬마을, 금강식당 등이 알려져 있다. 얼큰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아 맛깔스럽다. 도리뱅뱅이(사진)도 인기다.

무주=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2019.08.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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