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와 가수저라

[푸드]by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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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일본 나가사키가 본고장으로 알려진 빵인 '카스테라'는 원래 포르투갈 음식으로 방어용 성을 뜻하는 '카스텔로(Castelo)'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커다란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마치 둥근 성벽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 한다. 조총과 함께 16세기 말 임진왜란 전후로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전래된 서양 문물 중 하나였다. 일본인들은 조총 못잖게 카스테라 역시 개량을 거듭하며 자신들의 음식으로 바꿨다.


카스테라는 일본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조선에도 전해졌다. 1636년 조선이 병자호란에서 청나라에 패배한 이후 청나라로 조공을 갔던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에 머물며 포교활동을 하던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선물로 받아왔다. 조선 사신들은 카스텔로를 한자로 음차해 '가수저라(加須底羅)'라고 이름을 붙였고, 조리법을 소개하는 책도 함께 들여왔다.


조선의 선비들과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모두 이 음식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당시 카스테라 당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카스텔로는 당시 뱃사람들이 장기간 빵을 보관하기 위해 설탕을 많이 넣어 절여놓는 보관용 음식이었다. 16세기 이후 서양에서는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건설해 설탕이 흔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여전히 설탕이 매우 귀해 당도가 높은 음식은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조선의 선비들도 체면 불구하고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에 갈 때마다 가수저라를 내오라고 큰소리쳤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일본 측에서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만찬장 메뉴에서 카스테라를 제외시키자 왜 안 나왔냐고 따졌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다.


카스테라는 포르투갈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대표 음식으로 정착했지만, 조선의 가수저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가수저라는 맛있는 음식임에는 분명했지만, 그들의 성리학적 사고방식에서 가수저라 역시 포르투갈의 천주교와 서양기술들은 모두 함께 받아들여선 안될 양이의 문물일 뿐이었다. 이 두 빵의 운명을 갈라놓은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은 19세기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두 나라의 운명을 뒤바꾸고 말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2020.03.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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