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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임철영의 청경우독

휼륭한 국가의 조건

by아시아경제

유시민 6년만에 개정판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형질에 대한 철학적 접근

탄핵 등 정치 상황 더해 독자 접근성 높여

 

"이게 나라냐."

 

어린 고등학생을 포함한 304명을 죽음으로 내몬 세월호 비극과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수없이 물었다. 냉소가 잦아들면 또 다른 질문이 뒤를 이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바람직하고 훌륭한 국가는 어떤 모습인가.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명확했지만 정작 '과연 그럴까'라는 실체적 물음에 닿으면 크게 부족함이 남는다. 현대사의 적지 않은 순간 국가와 국민은 서로 갈등하는 관계였고, 국민은 때로 국가에 종속적 관계였던 탓이다. 4.19혁명 이전이 그랬고, 5.18광주민중항쟁이 그랬으며 1987년 6월민주항쟁, 광우병 촛불시위, 박근혜 대통령 탄핵요구 촛불시위 이전이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엄중한 시기 광장에 나서 국가에 대한 희망과 바람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당나라 고승의 법어를 빌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했다. 가는 곳마다 스스로 주인이 되면 서는 곳마다 참될 것이라는 의미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다.

 

혼군(昏君) 정치가 야기한 비극과 혼란이 물러가고 공동체 재건에 공을 들여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비상식과 비정상을 깨고 상식과 정상을 되찾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절실한 지금, "이게 나라냐"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우리에게 원초적 물음은 더욱 중요해졌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나아가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하는가.

 

작가 유시민이 내놓은 개정판 '국가란 무엇인가'는 원초적 물음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초판이 나온 2011년 국민, 국가, 통치자, 정치, 정치인과 관련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철학, 정치, 경제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한 민주주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기대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초판에 이어 6년 만에 나온 개정판은 전문 정치인의 길을 떠나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작가 유시민'이 깊게 배어 있다. 초판이 거칠고 격렬한 현실 정치인의 문체였다면 개정판은 보다 차분하고 친절한 문체로 바뀌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상황이 더해져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철학이론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유시민의 강점을 유감없이 녹였다.

 

이 책은 가장 먼저 '국가'의 형질(形質)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크게 국가주의 국가론,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으로 구분하고 각론에 들어가 합법적 폭력(공권력)을 독점하고 국방과 치안을 포함한 공공재를 공급하며, 계급지배의 도구로 활용되는 국가의 일반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상당한 부분을 할애해 옳고 그름의 경계를 넘어 개별 국가론의 이론적 배경을 작가 자신의 어휘로 충실히 설명한 덕에 소화하기 쉽다.

 

국가론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해 마키아벨리,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장 자크 루소, 핸리 데이빗 소로, 카를 포퍼, 카를 마르크스의 철학이론을 모두 아우른다. 작가는 철학자들의 이론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전제군주와 독재의 출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탄생에 활용된 사례에 주목하고 각 이론을 국가주의 국가론,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으로 구분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냉정한 진단도 주목

국가지도자, 애국심, 진보정치에 대한 물음도 담아

 

초판에는 없었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랄한 평가와 냉정한 진단도 눈에 띈다. 유시민은 국가주의 국가론의 쏠림을 경계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국민들이 집권 보수정당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유사한 사태가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현실과 희망사항을 잘 구별하지 못한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생명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끈질기다"라고 했다.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다면 '국가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가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지와 맞닿는다. 이른바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유시민은 플라톤의 '철인정치', 맹자의 '왕도정치' 등을 비교 분석하고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를 포함해 홉스, 포퍼의 주장을 빌어 논의를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확장한다.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자질론'에 빠지지 않고 최악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으로서 민주주의 시스템을 설명한 부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중우정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뽑은) 통치자가 악을 저지른다고 해도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원래부터 그런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합법적으로 정부를 교체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 그 정부는 민주정부"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나머지 질문이 이어진다.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혁명이냐 계량이냐,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하는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주제다.

 

유시민은 애국심에 대한 담론에서 관점의 차이가 선명한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레프 톨스토이, 에르네스트 르낭의 견해를 개관하고 역사적으로 배타적이었던 애국심 대신 공동의 선을 실현하는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가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방법을 언급한 '혁명과 개량' 담론에서는 포퍼 그리고 해롤드 조셉 라스키,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의 이론을 토대로 사회혁명(유토피아적 공학)이 아닌 점진적 개혁(점진적 공학)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우선 선택해야 하는 길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책 종반부는 유시민이 과거 활발하게 활동한 정당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그는 강한 어조로 정치와 정치인 그리고 진보진영(진보정치)을 향해 충고한다. 책을 탐독할 여유가 없다면 새로 쓴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라는 제목이 붙은 맺음말 정도는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훌륭한 국가를 만들지 못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다. 훌륭한 국가에서 살고 싶다면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좋은 정당, 민주적인 정치, 효율적인 행정을 실현하는 일에 시민들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휼륭한 국가의 조건

국가란무엇인가/유시민/돌베개/1만5000원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