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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먹어야 하는 까닭

by아시아경제

[빈섬의 알바시네]영화 '노트북'…사랑, 그 뻔한 공식이 지겹지 않은

 

생각해보면 얄궂은 일이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연애담들의 공식을 저마다 다 외고 꿰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것에 열광하는 이유가 뭔지. 이야기이야기마다의 미세한 차이를 즐기는 것일까. 인간이 유난히 사랑의 세부를 느끼는 감각이 발달되어 구석구석의 팬터지를 유통시키는 것일까.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밥과 소주를 먹듯, 빵과 와인을 먹듯

영화 '노트북'(2004, 닉 카사베츠감독)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우린 사랑을 '읽지' 않는다. 사랑을 먹는다. 밥과 소주를 먹듯, 빵과 와인을 먹듯, 우린 그걸 먹는다. 읽는 사람이라면 '차이'를 즐기겠지만 먹는 사람은 '바로 그 맛'이면 충분하다.

 

사랑을 식욕으로 이해할 때, 새로운 것을 추가한 게 하나도 없어보이는 저 영화 <노트북>이 내게 여전히 맛있는 까닭이, 의문없이 풀린다.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바로 그 맛'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 세 가지의 자극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기억의 자극이다.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나도 저랬지. 그 입술 기억해. 나도 그녀와 저렇게 신작로에 누워있었는데...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상상은 욕망의 현관문이다

또 하나는 상상의 자극이다. 상상은 욕망의 현관문이기도 하다. 오리떼들 속을 헤치며 배를 타는 연인 중의 한 사람이 나도 되고 싶어. 태생이 고귀한 그녀가 비천한 나를 기꺼이 사랑해준다면. 아무도 살지 않는 옛 저택에서의 섹스, 삶의 감미를 무한으로 올리는 아름다운 정념이겠지? 그녀와, 혹은 그와 함께 고요히 숨을 거둘 수 있다면...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세번째는 '바로 지금'의 현실을 부각시키고 미화하는 붓질의 힘이다. 나의 사랑도 고결하며, 나의 남자 나의 여인도 노아나 엘리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이야. 이 세 가지의 자극을 입체적으로 받으면서, 영화를 보고나면, 잠깐 동안은 분홍의 하트마크가 망막 속에 반짝거린다. 영화는 바로 그 최음(催淫)의 마법이다.

기억은 못하지만 기록을 읽어주세요

그토록 인생을 사로잡았던 격정적인 사랑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노인성 치매에 걸린 늙은 아내. 그 아내를 위해 '노트북'을 읽어주는 심장병의 남편. 엘리는 자신이 기억을 잃어갈 무렵, 그 아름다운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꼼꼼히 기록을 해두었고, 남편에게 그녀가 그것을 잊어버렸을 때 읽어달라고 말한다. 마침내 그녀는 남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듣는다. 참 재미있군요. 아름답군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를 물으면서.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노트북 속의 이야기는 일종의 '액자소설'인데, 실은 액자가 너무 커서 영화 전체를 덮었다. 액자 바깥의 사람들은 잠깐 얼굴을 비출 뿐이다. 이야기의 주제를 말하라면 싱겁다. 미친 사랑, 그래서 결국 모든 불가능과 방해를 뛰어넘어 쟁취한 사랑. 그거다.

 

디테일도 사실은 다 어디선가 본 것들이다. 마을 축제에서 만나는 열일곱살의 소년 소녀. 부잣집 소녀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이 시골로 놀러왔다. 소년이 보여주는 기이한 접근 방식(놀이공원의 회전바구니가 허공으로 올라가는 순간 스턴트맨처럼 그걸 붙잡고 올라가서 관심을 고백한다. 나와 사귀지 않으면 손을 놓겠다는 유치한 협박에 소녀는 엉겁결에 그러겠다고 말하고, 그뒤 복수로 매달린 그의 바지를 벗겨놓는다.)과 행복한 데이트들.

모든 반대와 역경을 넘어서서

이윽고 엘리 부모의 반대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반대>는 결국 물리적인 강제가 되어 둘을 떼어놓는다. 이후 7년이 흐르면서 엘리는 부잣집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한다. 노아는 군에 다녀온 뒤 엘리를 생각하며, 집을 짓는다. 엘리가 꿈꾸던 그대로, 건물 사방을 돌아가는 베란다가 있는 하얀 집에, 엘리의 화실까지도 꾸며놓는다. 이후 엘리가 그 집을 방문하고 그뒤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다시 '뻔한 공식'을 적용하면 된다.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사랑의 빈부차이. 혹은 2천년전 맹자까지 나서 카운셀링을 했던 애효(愛孝)딜레마(사랑을 선택할까, 부모 뜻에 따를까, 애효!)가 이 이야기의 갈등의 골격이다. 물론 사랑은 그것을 이기고, 마지막에 만난 망각의 질병과 죽음까지도 이겨낸다. 사랑이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저 영화의 끝처리는, 아까 세 가지 자극을 먹으러온 관객들에게 가장 행복한 서비스일지 모른다. 비극은 기억에 남긴 하지만, 그 기억을 건강한 기억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결혼은 집을 짓고싶은 욕망이다

영화에 대한 얘기는 다 했지만, 사실 나 또한 새로운 얘길 한 건 별로 없다. 노아가 사랑을 잃고 집을 짓는 일은 힘있는 상징이란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집은 정주(定住)의 욕망이다. 사랑은 출렁거리며, 인간은 늘 그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결혼은 어쩌면 '집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머물 집을 갖고 싶은 소망 이외에, 결혼을 설명해보라. 그 집은 원래 없던 것이 아니라, 낡은 건물 위에 펼쳤던 상상을 현실화한 것이다. 사랑은 자신에게 새롭고 놀라운 것이지만, 많은 낡은 사랑들을 자기 방식대로 수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은 '식욕'이다, 우리가 늘 그걸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엘리는 새처럼 날아들어온다

어쨌든 이름도 '노아'인 사내가 이미 약혼까지 하며 행복해져 있는 무정한 연인을 생각하며, 출렁이는 마음바다 위에 방주(方舟)를 띄우는 듯한 집짓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집 안으로 그녀는 새처럼 (엘리는 그 전에 새가 되고 싶다, 나는 새다,라고 말한다.) 날아들어온다. 이만큼 사랑의 낙천주의와 개결한 욕망과 열일곱 순정의 삶에 서비스하는 영화가 어디 있겠는가.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