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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전쟁에 찌들었던 청년,
'베트남의 삼성' 빈그룹 창업자로

by조선비즈

베트남 빈그룹

고소득층 라이프스타일 겨냥해 ‘베트남의 삼성’ 성장

금융위기 버티며 점유율 늘려… 자동차 산업 진출도

전쟁에 찌들었던 청년, '베트남의 삼

빈그룹이 총 1조5000억달러를 들여 조성중인 ‘빈홈 센트럴파크’의 조감도/빈그룹

올해 국내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해외 여행지로 급부상한 곳 중에는 베트남 중부의 다낭이 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데다 백사장 길이가 20km에 달하는 아름다운 미케비치가 있어 인기가 높다.

 

미국 ‘포브스’가 ‘세계 6대 해변’으로 선정한 미케비치에는 반얀트리·하얏트리젠시·풀만 등 세계적인 리조트들이 성업 중이다. 그런데 다낭의 인기 리조트를 논할 때마다 늘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베트남 ‘토종’ 리조트가 있다. 바로 빈펄 리조트 앤드 빌라다.

 

‘빈펄’이란 이름의 리조트는 다낭과 호이안·냐짱·푸꾸옥 등 베트남의 주요 휴양지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5월에는 다낭에 두 번째 빈펄 리조트가 문을 열었다. 풀빌라로만 구성된 빈펄 오션 리조트 & 빌라다.

 

빈펄리조트를 운영하는 빈그룹(Vingroup)은 하노이에 본사를 둔 재벌 기업이다. 아파트와 리조트·쇼핑센터 등 부동산 개발로 시작해 ‘빈마트’로 유통업도 장악했다. 현재 베트남 전역에 1000개가 넘는 수퍼마켓과 편의점, 30개가 넘는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유통사업 두 배 넘게 성장

최근에는 ‘빈패스트(VINFAST)’라는 이름으로 자동차 제조업까지 손을 뻗쳤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에 공장을 건설하고 2025년까지 연 50만 대 생산 설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베트남에서 자체 브랜드로 완성차를 제조하는 것은 빈그룹이 처음이다.

 

빈그룹의 시가총액은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로 국영기업을 제외하면 베트남 1위다. 지난해 매출은 약 57조6100억동(약 2조8700억원)으로 2015년 대비 69% 성장했다. 특히 유통과 호텔∙리조트 분야의 성장률이 각각 115%와 39%로 두드러졌다.

전쟁에 찌들었던 청년, '베트남의 삼

현재 빈그룹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야심작은 총 1조5000억달러(약 1698조원)를 들여 조성 중인 ‘빈홈 센트럴파크(Vinhomes Central Park)’다. 내년 완공 예정으로 호찌민에 조성된다. 81층 건물과 아파트, 뉴욕 센트럴파크를 본뜬 대규모 공원 등이 들어선다.

 

빈그룹의 눈부신 성장의 중심에는 ‘베트남의 도널드 트럼프(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전에는 부동산 개발 업자에게 최고의 찬사였다)’로 불리는 팜 니얏트 보홍(Pham Nhat Vuong) 회장이 있다. 팜 회장은 2013년 4월 베트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미국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팜 회장의 현재 추정 재산은 31억달러(약 3조5000억원)다. 베트남의 1인당 GDP가 약 2300달러로 우리나라의 12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을 생각하면 베트남 경제에서 팜 회장과 빈그룹의 위상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최대주주이자 설립자인 팜 회장은 빈그룹 지분의 30%를 소유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은 약 15%다.

 

팜 회장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북베트남(월맹) 공군으로 복무했고 모친은 노점에서 차를 팔았다. 팜의 가족은 한때 얼마 되지 않는 모친의 수입에 의존해 근근이 연명해야 했다. 바라는 것이라곤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것뿐이었던, 가난에 찌든 청년이 어떻게 베트남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성공 비결 1

혼란 속에서 기회를 보는 안목

 

수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팜 회장은 장학금을 받아 러시아(당시 소련)로 유학을 떠났다. 모스크바 지질탐사대(Moscow Geological Prospecting Institute)에서 경제학과 원자재 관련 과목들을 공부했다.

 

학교를 졸업하던 1993년, 소련은 1991년 체제 붕괴의 여파로 무법천지나 다름없었다. 팜 회장은 그런 상황을 사업의 기회로 여겼다. 이제 자본주의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우크라이나에 정착을 결심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지원받은 1만달러로 베트남 식당을 차렸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고무된 그는 베트남에서 생산라인을 들여와 즉석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회사 이름은 ‘테크노컴’이었다. 오늘날 빈그룹의 모체인 셈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베트남식 즉석라면 맛에 빠져들었고, 팜 회장은 현지에서 ‘라면 왕’으로 이름을 떨쳤다.

전쟁에 찌들었던 청년, '베트남의 삼

팜 나얏트 보홍 빈그룹 창업자겸 회장./빈그룹

성공 비결 2

급성장하는 산업에 베팅

 

팜 회장은 ‘라면 왕’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2009년 테크노컴을 1억5000만달러(약 1695억원)에 스위스계 다국적 식품 기업 네슬레에 팔아넘겼다. 테크노컴의 당시 연 매출은 1억달러였다.

 

테크노컴 매각 훨씬 이전부터 팜 회장의 관심은 조국 베트남으로 향해 있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긴 베트남 경제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활황세를 맞고 있었다. 2000~20006년 베트남의 경제 성장률은 연 6%에 달했다.

 

다가올 21세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해변 도시 냐짱으로 여행을 떠난 그는 경제 성장으로 언젠가는 베트남의 호텔과 리조트 산업이 큰돈이 될 것을 직감했다. 당시 여행의 결실로 225개의 객실을 갖춘 초호화 리조트 ‘빈펄 리조트 냐짱’이 2003년 문을 열었다.

 

2004년에는 하노이 최초의 상업용 단지인 빈컴 센터 바 트리우를 세웠다. 2007년에는 냐짱 리조트에 객실 260개를 추가 건설하면서 냐짱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3.2km 길이의 케이블카도 설치했다. 수백 채의 빌라로 이뤄진 빈컴빌리지를 비롯한 몇 개의 고급 주거단지 건설도 뒤를 이었다.

성공 비결 3

위기는 시장 점유율을 높일 절호의 기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베트남의 부동산 개발 기업에도 혹독한 시기였다. 많은 기업이 성장 동력을 잃고 나가떨어졌지만 빈그룹은 끝까지 버티며 점유율을 높여나갔다. 빈그룹의 2009년 매출과 순익(세후 기준) 성장률은 전년 대비 각각 725.5%, 774.4%나 됐다. 그 결과 빈그룹은 금융위기가 한풀 꺾인 2012년 베트남 부동산 시장에서 매출 기준으로 7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적수가 없는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성공 비결 4

고소득층의 라이프스타일 따라 개발

 

빈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아파트와 리조트, 병원과 쇼핑몰 등 일상에서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개발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초점은 고소득층이다. 베트남의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는 돈벌이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그룹이 추진하는 주거형 부동산 개발 사업은 항상 ‘복합적’으로 이뤄졌다. 고급 빌라 단지 옆에 의료시설과 쇼핑몰, 교육기관 등을 함께 짓는 식이다.

 

빈그룹이 지은 하노이의 빈컴 메가몰 로열시티는 15만m⊃2;(약 4만5000평) 규모의 지하 쇼핑몰로 800여 종류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베트남 최대 실내 아이스링크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빈그룹은 베트남 최초의 실내 워터파크인 ‘빈펄랜드 워터파크 로열시티’도 건설해 운영 중이다.

성공 비결 5

무슨 일이 있어도 공사는 제때에 마무리

 

베트남의 개발 업자 중엔 예정된 공사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팜 회장은 제때에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팜 회장이 억만장자가 되는 데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

 

빈그룹은 베트남 상장 기업 중 공산주의 전통과 무관하게 성장한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빈그룹에 투자한 것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3년에는 글로벌 사모펀드 워버그 핀커스(Warburg Pincus)로부터 2억달러(약 2260억원)를 투자받기도 했다.

전쟁에 찌들었던 청년, '베트남의 삼

빈펄 다낭 리조트 앤드 빌라의 풀빌라동./빈그룹

이제 관심은 빈그룹이 추진 중인 베트남 국민차 사업에 쏠려 있다. 빈그룹은 완성도 높은 자동차 생산을 강조하며 잠재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부품 기업인 보쉬와 함께 개발에 나서는가 하면, 최첨단 수준의 생산공장 건설을 위해 독일의 지멘스와도 손을 잡았다.

 

디자인 작업은 람보르기니·페라리·BMW 등 고급 브랜드들의 고성능 차 디자인을 담당한 이탈리아 업체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세단과 SUV 모델의 예비 디자인을 각각 10개씩 사전 공개해 인기투표도 진행했다.

 

하지만 베트남 자동차 시장이 워낙 좋지 않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2013년 10만 대에 불과하던 베트남 자동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30만 대를 기록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이후 6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다.

 

베트남 자동차생산자협회(VAMA)가 발표한 지난달 자동차 판매 대수는 2만121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1% 감소했다. 특히 승용차 판매 실적(1만1637대)이 무려 28.7%나 줄어들었다.

 

판매 부진의 원인에 대해서는 빈그룹이 선보일 ‘메이드 인 베트남(Made in Vietnam)’ 자동차를 기다리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자국산 자동차가 나올 때까지 신차 구매를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역내 관세가 철폐되면 현재 판매되고 있는 외국산 자동차들의 가격이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점은 빈그룹에 악재다. 올해 베트남의 수입 자동차 관세는 30% 수준이다.

 

빈그룹 측은 “수입 문턱이 낮아지고 더 많은 자동차가 싼 가격에 들어오면 경쟁이 치열해지겠지만 해외에서 부품을 더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기회도 된다”는 입장이다.

 

야심 차게 시작한 자동차 사업이 ‘베트남의 삼성’ 빈그룹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벌써부터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PLUS POINT

베트남으로 향하는 국내 건설사들

전쟁에 찌들었던 청년, '베트남의 삼

대우건설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발해 분양 중인 ‘스타레이크 시티’ 조감도./대우건설

‘포스트 차이나’로 급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에 대한 국내 건설사들의 관심도 뜨겁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들이 지난해 베트남서 벌어들인 매출액은 23억1530만달러(약 2조6200억원)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싱가포르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올해도 베트남은 건설 수출액 순위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연간 수출액 규모는 지난해 실적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에는 포스코건설이 897만8000달러(약 1014억원) 규모의 유니벤 식품공장 신축공사 계약을 따냈고, 현대엔지니어링은 3억2000만달러(약 3600억원) 규모의 롱손 석유화학단지 유틸리티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통화·금리 정책 불확실성 등 변수도

신규 진출에 나서는 기업도 늘고 있다. 우미건설은 여러 해에 걸친 시장 조사를 마치고 지난달 베트남 호찌민에 현지 법인인 ‘우미비나’를 설립하면서 베트남 진출을 공식화했다. 첫 해외 사업지인 베트남에서 부동산 투자와 운영은 물론 다양한 주거 상품 개발까지 사업 영역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부영그룹도 첫 해외 사업 대상국으로 베트남을 택했다. 부영은 지난 6월 베트남 모라오 신도시에서 부영 국제아파트 756가구를 우선 분양했다. 2007년 기공식 이후 10년 만이다. 모라오 신도시 요지에 위치한 4만3127㎡(약 1만3000평) 부지에 연면적 55만3683㎡, 3482가구 규모로 ‘부영 국제아파트’를 짓고 있다.

 

이들보다 베트남 시장에 먼저 진출한 대형 건설사들도 꾸준히 실적을 내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 내 빌라 분양을 시작했다. 스타레이크시티는 대우건설이 2006년부터 하노이 서호 지역 208만㎡(약 63만평) 부지에서 개발하고 있는 총사업비 25억달러(2조8000억원) 규모의 신도시다. 대우건설이 100% 지분을 가진 하노이THT 법인이 주도한다.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한국형 해외 신도시 사업의 첫 사례다.

 

대우건설은 이곳에 빌라 364가구와 아파트 603가구를 짓는다. 1단계로 고급 빌라 364가구를 4차에 걸쳐 분양한다. 이 가운데 빌라 1~2차(249가구)가 지난해 우선 분양됐다. 관련 수익은 올 3~4분기 실적에 반영될 전망이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6월 베트남 하노이 접경 지대인 안카잉에 있는 264만㎡(약 80만평) 부지에서 진행 중인 ‘스플랜도라’ 프로젝트 2단계 착공식을 가졌다.

 

스플랜도라는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국영 건설사인 비나코넥스와 50 대 50으로 투자해 2006년부터 추진 중인 현지 최초의 자립형 신도시다. 올 2020년 완성 목표로 총사업비 22억달러가 투입돼 주택 6000여 가구와 베트남 최고층인 75층의 비즈니스센터, 호텔, 쇼핑몰 등이 갖춰진다.

 

GS건설도 비슷한 시기 베트남 신도시 사업에 진출했다. 호찌민 남쪽에 위치한 냐베 지역에서 인구 약 7만 명 규모의 신도시, 일명 ‘H 프로젝트’를 기획해 2011년 착공했다. 냐베 신도시는 빌라와 아파트, 주상복합으로 구성된 1단계 사업을 비롯해 총 4단계에 걸쳐 개발될 예정이다.

 

동남아에서도 특히 경제 성장률이 높은 베트남을 향한 건설 업계의 관심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다만 베트남 건설·부동산 시장 가격 변동성 심화와 통화∙금리 정책 불확실성 등 리스크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용성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