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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가상화폐 규제

"도박·투기판" vs "새 금융패러다임"

by조선비즈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열기가 뜨겁다. 비트코인의 경우 올해 들어 1년 동안 가격이 1000% 폭등하면서 튤립 버블 이후 최대 버블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가상화폐가 결국 결제수단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 일본 등 가상화폐에 세금을 매기고 거래소를 인가제로 하는 등 제도권에 편입시키려는 국가가 있는 반면, 중국 러시아 등처럼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시키는 국가도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일단 소비자 보호 등을 이유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중립적인 편이다. 가상화폐 규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이번 시리즈를 통해 논의해봤으면 한다. [편집자주]

“비트코인은 사기(fraud)다.” -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2017년 9월)

“비트코인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지 않다. 적절히 규제된다면 비트코인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이다.” -마리안 레이크 JP모건 최고재무책임자(CFO)(2017년 10월)

미국 최대은행인 JP모건의 최고경영진들 간의 의견을 보면 대표적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첨예하게 갈리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조직 안에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투자전문가들 조차 비트코인이 무엇인지(정체성)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 투자에 대한 시선도 도박과 같은 투기의 일종일 뿐이라는 비판과 신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긍정이 교차한다.

"도박·투기판" vs "새 금융패러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 사진 = 블룸버그

 “비트코인은 사기(fraud)…끝이 안 좋을 것”

비트코인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이 가장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가격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유명한 비판가로 알려진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가상화폐 열풍에 대해 “튤립 버블보다도 심하다”며 “가상화폐는 실체가 없는 만큼 언젠가 폐지되고 말 것이고, 그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이먼 회장이 말한 튤립 버블은 17세기 네덜란드 귀족들이 튤립을 고가로 매입한 투기현상을 말한다. 이 튤립 버블로 집 한 채 값이 넘는 튤립 뿌리까지 등장했지만 가격 거품이 사라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빚더미에 앉았었다.

 

다이먼이 지적한 비트코인의 버블이란 급격한 가격 상승과 하락이다. 실제 비트코인은 지난 달 28일 최고 1만1517.40달러의 가격을 기록한 후 다음 날 9290.30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가며 하루만에 18%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가격 변동성이 극심해 예측이 쉽지 않은 상태인 셈이다. 이런 특성은 많은 전문가들이 가상화폐로 불리는 비트코인에 화폐의 지위를 부여하기 꺼려하는 주된 이유다.

 

경제학에서 화폐는 크게 ▲욕구의 쌍방 간 일치(double coincidence of wants) 문제 제거를 통한 ‘교환의 매개수단’ ▲계산단위(unit of account) 또는 ‘가치의 척도’(measure of value) ▲가치의 ‘저장수단’(store of value) 등 3가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화폐가 실물자산의 가치를 저장하고 교환의 매개수단이 되기 위해, 또는 가치를 계산하거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가격의 안정성이 전제가 돼야 한다. 문제는 비트코인처럼 단기간에 폭락하거나 폭등하는 경우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내일의 가격을 누구도 알 수 없다면 그런 화폐로 물건을 교환하거나 실물자산의 가치를 저장·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불법화돼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못하다”(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거나 “사람들은 매일같이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하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 소식에만 주목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사기는 아니지만 분명 눈물로 막을 내릴 것”(켄 그리핀 시타델 창업자)의 비판도 이런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화폐적 기능이나 역할을 할 수 없는 비트코인이 단기간에 성행하면서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도박·투기판" vs "새 금융패러다

프랑스 파리의 비트코인 패널 / 사진 = 블룸버그

“가상화폐는 새로운 패러다임, 승차 못하면 낙오될 뿐”

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비트코인을 필두로한 가상화폐가 금융은 물론 실물경제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기에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1일(현지시각) 시카고옵션거래소(CBOE·Chicago Board Options Exchange) 글로벌마켓의 크리스 콘캐논 대표가 “가상화폐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머지않아 국가 통화를 운용하는 기관들도 잇따라 가상화폐를 도입할 것”이라고 한 발언을 보도했다.

 

최근 몇 달 동안 CBOE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와 함께 비트코인 수요 증가에 따른 선물 도입 논의를 진행했고 CFTC로부터 선물상품 승인도 받았다.

 

세계 3대 대체투자 운용사(헤지펀드) 중 하나인 영국 맨그룹(Man Group)도 비트코인 거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루크 엘리스(Luke Ellis)는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성공적으로 시작되면 이를 ‘투자대상 기업군(Investment universe)’에 포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대상 기업군은 전체 상장 종목 중 자산운용사가 추려낸 200~300여개 종목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정식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하기 위한 움직임들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4월부터 가상화폐를 결제수단으로 인정하는 자금결제법을 시행하고 가상화폐 거래소 등록제도 도입했다. 현재 일본 내 1만개 점포에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하다.

 

일본회계기준위원회(ASBJ)도 최근 비트코인을 기업회계원칙에 반영하는 방침을 정하고 회계기준 초안을 준비하고 있다. ‘경영의 언어’로 불리는 회계기준에서도 적극적으로 비트코인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스위스는 대형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모여있는 도시 추크(Zug)를 가상화폐지역(크립토밸리)으로 정해 가상화폐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가상화폐공개(ICO)를 통해 디지털증권(토큰)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을 정부차원에서 보증하고 금융기관들도 가상화폐를 통해 조달한 자금에 대한 보관 업무를 하고 있다.

 

가상화폐를 자선구호활동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 최대 블록체인(blockchain) 회사 비트퓨리(bitfury)의 최고경영자(CEO) 겸 창립자인 발레리 바빌로프(Vavilov)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아이들을 위해 지원금을 주더라도 부모가 다른 곳에 쓸 경우, 지금은 통제할 수 없다”며 “정부가 가상화폐를 이용해 지원한다면 사용처를 지정해 정해진 목적에 정확히 쓰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바빌로프는 또 모든 가상화폐 거래가 전산에 기록된다는 특성을 이용해 “수사기관의 추적이 용이하기 때문에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은 낮다”고도 했다. 기존 화폐보다 투명성과 신뢰성이 더 높아질 수 있는 시스템이 가상화폐라는 주장이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홍익대 교수)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는 있지만 산업적으로 어떤 수요를 일으킬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라며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규제를 제한적이고도 명확한 목적으로 시행해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비트코인과 가상화폐가 새로운 시장을 이미 창출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실체가 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모순에 빠져 있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승차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만 낙오자가 될 뿐”이라고 했다.

 

정해용 기자(jh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