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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30억 번 사람 있대"… 비트코인 환상에 주부·학생까지 빠져든다

by조선비즈

내년 초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모(32)씨는 최근 '가상 화폐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달 초 "11월에 가상 화폐 '비트코인'을 샀는데, 3주 만에 1000만원을 벌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화근이었다. 김씨는 "부동산 투자할 목돈이 없는 우리 같은 흙수저는 가상 화폐라도 사야 한다는 말이 계속 떠오르더라"며 "한 달만 굴려서 신혼집에 보탤 요량으로 5000만원을 대출받았다"고 했다. 김씨의 '전세금 1억원 만들기' 프로젝트는 며칠 만에 끝났다. 투자금 5000만원은 2일 만에 8300만원이 되더니 이틀이 더 지난 10일 4700만원까지 주저앉았다. 그는 "이틀간 잠든 사이 시장이 폭락할까 봐 눈도 거의 붙이지 못했다"며 "원금 회복이 되자마자 바로 가상 화폐 시장에서 빠져나왔다"고 했다.

"30억 번 사람 있대"… 비트코인

1400만원대로 폭락했다가 1900만원대 급반등 - 11일 서울 중구에 있는 가상 화폐 거래소‘빗썸’의 전광판 모습. 지난 8일 최고 2400만원대로 거래됐던 비트코인은 10일 1400만원대까지 내려갔다가 11일엔 1900만원대로 회복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전 세계 가상 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은 가상 화폐 '그라운드 제로(폭탄 투하 지점)'로 불린다. 투자 열기와 시장 참여자들의 숫자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의미다. 국내 투자자만 200만명으로 추산되고, 코스닥시장 거래량을 넘어섰다. '친구의 친구가 가상 화폐 투자로 30억원을 벌었다더라' '하루에 한 달 월급을 번다더라' '앞으로 비트코인 1개당 1억원 된다'는 '카더라 통신'이 투자 심리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상 화폐 광풍(狂風)이 1999년 상장 이후 한국 증시 역사상 최고의 버블로 기록된 새롬 기술, 전국을 도박판으로 몰고 간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 등에 비견된다고 진단한다.

 

◇ 하루 2~3번 단타 거래, '잡코인' 묻지 마 투자도

 

 

"30억 번 사람 있대"… 비트코인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 11일 국내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인‘빗썸’홈페이지 모습. 빗썸은 이날 서버 안정화를 위해 서버 점검을 진행했다.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 위주로 시작됐던 가상 화폐 열풍은 최근 학생·주부·노년층까지 번지고 있다. 올해 수능을 본 서울의 한 고등학생은 "수능 끝나자마자 그간 모은 용돈으로 코인을 샀다"며 "스마트폰에 가상 화폐 거래소 앱을 깔고 하루에 1~2번씩 단타 거래를 하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 뛰는 것보다 쏠쏠하다"고 했다. 비트코인은 반드시 1개 단위로 살 필요가 없다. 소수점 아래 8자리, 1억분의 1개까지 쪼개서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

 

가상 화폐를 잘 모르는 노인들을 겨냥해 가상 화폐와 다단계를 결합한 '신종 사기'도 등장했다. '가상 화폐를 만들 수 있는 채굴기에 투자하면 수익금을 가상 화폐로 돌려주겠다' '새로운 가상 화폐를 개발했다'며 투자자를 속여 금품을 가로채는 식이다.

 

잘 알려진 가상 화폐가 아닌 신생 '잡(雜)코인'(잡종 가상 화폐라는 의미)을 사는 '묻지 마 투자'도 유행이다. '잡코인'은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 화폐를 제외한 대안코인(Alternative coin·알트코인)을 부르는 말이다. 가상 화폐 투자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루에도 '가즈아! ○○코인'이란 글이 수백 개씩 올라온다. '가자'의 발음을 강조·변형한 '가즈아'는 코인 값이 오르라는 뜻을 담은 은어다. 잡코인에 3000만원을 투자 중인 직장인 이모(35)씨는 "잡코인은 하루에도 잘하면 수익이 수십 배씩 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하지만 잘 모르는 투자를 하고 보니 사놓고 오르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고, 불안할 때면 인터넷에 글을 올리게 된다"고 했다.

 

◇왜 유독 한국에 광풍 부나… 'IT 인프라' '한탕주의'가 기름 부어

 

가상 화폐 투자 열풍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가상 화폐는 주식·금·부동산 등 다른 자산과 달리 적정 가치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크다. 예를 들어 가상 화폐 대표 격인 비트코인은 가치가 코인당 0원에서 2억달러로 평가자마다 천차만별이다. 또 1년 365일 24시간 거래되다 보니 공포와 탐욕이 쉬지 않고 연쇄적으로 확산되는 것도 특징이다. 

"30억 번 사람 있대"… 비트코인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유난히 가상 화폐 '이상 과열' 조짐이 보이는 이유로 한국 특유의 문화적·사회적 기반을 꼽는다. 가상 화폐의 '불' 같은 특성이 유행을 잘 좇는 한국인 특유의 심리와 잘 맞고, 잘 갖춰진 IT 인프라가 빠른 확산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부동산 투자 열풍에서 소외된 서민층의 심리를 가상 화폐가 파고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심정적으로 '가상 화폐야말로 흙수저 탈출의 유일한 기회'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국내 자본시장에 고위험·고수익 자산이 부족하고, 도박도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보니 고수익을 원하는 자본이 가상 화폐로 몰리고 있다"며 "부를 축적할 수단이 제한되어 있다고 여기는 젊은 층이 가상 화폐를 돈을 빠르게 벌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모듬 기자(modysse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