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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청춘, 농촌을 깨우다

죽 쒀서 60억, 산골에서 블루오션 찾았어요

by조선비즈

귀농 인구 절반이 30대 이하...새바람 일으키는 청년 농부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농촌 소멸론'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자신의 미래를 농촌에서 찾으려는 청년들도 매년 늘고 있다. 2016년 귀농·귀촌한 48만9000명 중 30대 이하 청년이 절반(50.1%)에 달했다. 세계를 둘러보며 익힌 세련된 감각과 첨단 IT(정보통신) 지식으로 무장한 청년 농부들은 농촌에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년들이 주축이 된 농촌 지역 협동조합·사회적기업·마을기업이 2011년 348개에서 2016년 3502개로 늘었다. 농촌에서 금맥을 캐고 있는 청년 농부들의 분투를 소개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죽 쒀서 60억, 산골에서 블루오션

주걱 들고 김치~ - 경남 하동의 청년 농부 오천호(가운데)씨. 오씨가 개발한 친환경 이유식 제품이 대박을 치면서, 지역 농촌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 농작물의 안정된 판로가 생기자, 농민들은 경작지를 더 넓히고 있고, 도시로 나갔던 자녀들도 귀농해 농사일을 돕고 있다. 오씨와 지역 출신 청년 직원들이 지리산이 환히 보이는 공장 공터에서 이유식 재료로 쓰이는 지역 농산물을 보여주고 있다. /오천호씨 제공

경남 하동에서 쌀농사를 짓는 토박이 농부 정종복(70)씨는 요즘 몸은 고되지만 신이 난다. 친환경 농법으로 애지중지 재배한 쌀을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든든한 판로가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고소득을 기대할 수 있게 되자, 진주 시내에서 영어학원을 하던 막내아들(38)도 귀농해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있다. 정씨 같은 토박이 농사꾼들에게 안정된 판로를 보장해 주는 주인공은 서른여섯 살의 젊은 사장 오천호씨다. 오씨는 대학 졸업 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죽을 팔다가 사업에 실패한 뒤 2012년에 귀농했다. 죽 가게를 할 때, 단골손님이 "이유식으로 쓸 거니 간을 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이때부터 친환경 농작물 '이유식'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향인 하동에 가면 다양한 친환경 농산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귀농 후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빌린 1억원 등으로 텃밭을 사고 이유식 제조업체, '에코맘의 산골 이유식'을 세웠다. 지리산 제철 농산물로 이유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콘셉트가 인기를 끌며 5년 만에 매출 60억원 대박을 쳤다. 지난해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 이유식 매장을 냈고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에도 매장 오픈을 준비 중이다. 요즘은 동남아 수출 물량을 늘리기 위해 베트남과 홍콩 등지를 출장 다니고 있다. 오씨는 "돈을 벌고 싶어서 서울로 갔는데, 그 길이 고향인 시골에 있더라"고 했다.

청년 농부 한 명이 일으킨 나비효과

죽 쒀서 60억, 산골에서 블루오션

지난 5일‘에코맘의 산골이유식’오천호 대표가 직원 구내식당에서 이유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하동=김동환 기자

오씨의 사업이 번창하면서, 지역 경제도 덩달아 살아났다. 오씨는 이유식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 17억원어치의 하동 농축산물을 사들였는데 이 돈이 고스란히 지역 농가 50여 곳에 뿌려졌다. 쌀, 단호박 등을 재배해 오씨 공장에 납품하는 김인규(65)씨는 이제 주변 농가 휴경지까지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늘어나는 물량을 맞추다보니 재배 면적이 5년 사이 2만 평(6만6000㎡)에서 3만 평(10만㎡)으로 커졌다. 오씨는 "묵묵히 이 땅을 지킨 어르신들 스토리를 회사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고객들이 더 믿고 우리 이유식을 찾는다"고 자랑했다.


2012년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정규직 35명 규모로 성장했다. 35명 모두 지역 주민이다. 9명이 60세 이상 노인이고 14명은 지역 출신 청년이다. 오씨는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 회사 1층에 예쁜 카페를 만들었다. 여기서 상품 홍보 영상도 찍는다.


오씨 회사가 대박을 치고 지역 주민들 소득이 늘어나자, 지역 경제 전반에 온기가 퍼지고 있다. 하동 악양농협은 지난해 예금이 50억원이나 늘었고, 택배 수요가 몰리면서 하동우체국은 지난해 전국 군 단위 우체국 중 1등상을 받았다. 오씨 공장에 쇠고기를 납품하는 하동축협은 매달 3000만~5000만원씩 고정 매출이 생겼다. 2016년 SK그룹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오씨 소개로 SK 사내 쇼핑몰에 한우를 납품하기도 했다.

하동 청년 농부들 3000만달러 수출

죽 쒀서 60억, 산골에서 블루오션

지난 5일‘에코맘의 산골이유식’오천호 대표가 직원 구내식당에서 이유식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 /하동=김동환 기자

하동엔 오씨 외에도 성공한 귀농 청년들이 적지 않다. 1999년 귀농해 배즙, 매실 추출액 등의 제품으로 연 40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강삼(47)씨, 섬진강 다슬기국을 팔아 역시 4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추호진(39)씨 등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청년 농부들 성공 스토리가 소문을 타면서 하동 악양면, 화개면을 중심으로 청년 농부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에만 청년 114명이 하동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청년 농부들의 분투 덕에 인구 4만8000명인 하동군은 지난해 3000만달러(320억원)어치 농축수산물을 해외에 수출했다. 2014년(600만달러)에 비해 5배로 불어난 것이다. 김경원 하동군 부군수(군수 권한대행)는 "해마다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 걱정인데 청년 농부들이 하동의 희망"이라고 했다.

 

하동군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오씨가 현대백화점에 매장을 내는 날 윤상기 군수가 상경해 축사하고 점장도 만났다. 100억원을 들여 산골 공장까지 도로, 상수도망을 깔았다. 외국 기업을 유치하듯 청년 농부 기업을 키운 셈이다.

 

오씨는 요즘 죽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노인들에게 죽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다가 '실버푸드'인 죽의 사업성을 주목하게 됐다. 죽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2022년엔 회사 매출이 350억원으로 뛸 것으로 기대된다. 이 정도면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악양면 평사리의 모든 농가가 쌀을 팔 수 있는 수요처가 생기는 셈이다. 오씨는 지난해 평사리 211개 농가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친환경 농법을 확대하기로 했다. 오씨는 "사업을 하며 힘들 때마다 평사리 들판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며 "이곳을 우리나라 최고의 친환경 농촌으로 만드는 게 저의 꿈"이라고 했다.

 

하동=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