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70년간 찍은 교과서 20억부…
지구 13바퀴

by조선비즈

"지난 70년간 저희 회사가 펴낸 교과서를 한 줄로 놓으면 지구 13바퀴에 이를 정도입니다."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에서 만난 김영진(44) 미래엔 대표는 "1949년 초등용 '우리나라의 발달', 중등 실업계용 '누에치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찍어낸 교과서만 모두 20억 부가 넘는다"며 이같이 말했다.미래엔은 1948년 9월 대한교과서로 출발, 올해 70주년을 맞은 출판 전문 기업이다. 교과서를 비롯해 참고서, 어린이 도서, 단행본 등을 내고 있다. 1989년부터 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 인쇄를 도맡아 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매출은 1711억원, 영업이익은 230억원을 기록했다. 박경리, 조정래 등을 배출한 현대문학도 계열사다.

 

국내 최고(最古) 교과서 전문 기업

미래엔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교과서 전문 기업이다. 일제 강점기 신문사 지국과 인쇄소 등을 운영했던 독립운동가 우석 김기오 선생이 광복 직후 창업했다. 광복 후 첫 일반인 공모 방식으로 설립될 때 전국의 사립학교 설립자, 서점 대표 등 수백 명이 주주로 참여했다. 창업주의 증손자인 김 대표는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우리 힘으로 만들자는 증조할아버님의 생각에 많은 분이 동참하며 회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70년간 찍은 교과서 20억부… 지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에서 김영진 미래엔 대표가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며 활짝 웃고 있다. 미래엔은 국내 최대 교과서 전문 기업으로 초·중·고용 도서와 단행본 등 2822종을 펴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6·25 때는 직원들이 직접 인쇄 기계를 싣고 부산으로 내려가 전시 교재를 찍어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해군이 마련해준 땅에 겨우 공장을 차렸는데 막상 종이 살 돈이 없어 증조부님이 아끼던 시계를 내다 팔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고 하더라"고 했다.

 

1998년에는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국정 교과서를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현재 교과서 시장 업계 1위로 점유율은 35%에 이른다. 초등학교 국어·도덕 등 국정교과서 시장과 111개 출판사가 경쟁하는 검·인정 교과서 시장 점유율이 모두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70년의 세월을 이어온 기업인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7년에는 교과서 입찰제가 도입되면서 회사 존립을 걱정할 정도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김 대표는 "수의계약이던 국정 교과서 사업이 입찰로 바뀌면서 시장 점유율이 52%에서 14%까지 떨어졌다"며 "당시 전체 매출 1300억원 중 1000억원 정도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투자 자산을 팔고, 초등 참고서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800명이던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고, 조치원 공장 생산라인 대부분을 멈췄다.

 

김 대표는 "당시 회사를 떠나시던 분들이 '회사가 힘든 걸 아니까 내가 희생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똑바로 경영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며 "교과서 집필에 더 공을 들이고 입찰 전략도 꼼꼼하게 세운 덕에 2011년 입찰 때 전 부문 평가 1위를 휩쓸었고, 이후 점유율을 회복하면서 나가셨던 분들부터 먼저 모셨다"고 말했다.

4대 이어온 명문장수기업

70년간 찍은 교과서 20억부… 지

김 대표는 2013년 별세한 고(故) 김광수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증권사를 다니다 2000년 미래엔에 입사, 2010년 대표에 올랐다. 부친인 고 김필식 사장이 김 대표가 중학생이던 1987년 지병인 간암으로 작고하면서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컸다. 김 대표는 "미국 유학 시절에도 가계부를 써서 보내야 생활비를 보내주시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셨다"며 "늘 교과서를 만든다는 걸 명심하고 잘못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올해는 대한교과서가 미래엔으로 새 출발 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할아버지께서 미래지향적인 회사를 만들자며 손수 '미래엔'이라는 이름을 선택하셨다"며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기능이 적용된 신개념 콘텐츠 개발에 더해 독서 컨설팅, 캐릭터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희 기자(joyja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