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쇼핑센터에서 서핑을?

[비즈]by 조선비즈

안사도 괜찮아요, 놀러오세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 안간힘

 

서울 영등포에 사는 이현선(34)씨는 지난 5일 두 아들을 데리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을 찾았다. 딱히 살 물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이씨는 "어린이날을 맞아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비눗방울 쇼, 옥토넛(인기 캐릭터) 공연, 불꽃놀이를 한다고 해 정했다"고 말했다. 이씨 가족은 아웃렛에서 5시간 동안 머물렀고, 계획에 없던 아이들 모자 2개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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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오픈한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의 실내 서핑장인 ‘플로우하우스’에서 강사들이 서핑을 시연하는 모습. 인공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다. 1분 동안 11만3000t의 물이 쏟아진다.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온라인 전성시대'에 생존 위협을 받고 있는 백화점, 대형마트, 아웃렛 등 오프라인 업체들이 매장을 재정의하고 있다. 그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공간=매출' 공식을 버리고 쇼핑과는 상관없는 놀이·휴식 공간으로 채우고,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찾아 돌아다닐 필요가 없도록 브랜드가 아닌 품목별로 진열하는 등 대변신에 나서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휴식, 체험과 같이 온라인 업체는 절대 할 수 없는 걸 잘하는 오프라인 매장만이 살아남게 된다"며 "이를 간파한 업체들이 재빨리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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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양평점 1층의 모습. 통상 대형 마트 1층은 화장품, 생필품 등이 가득 진열돼 있지만, 이곳에는 ‘어반 포레스트(Urban 4 rest)’라는 휴식 공간이 채우고 있다. 계단형 좌석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앉아 스크린에 나오는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양평점을 시작으로 김포한강점, 서초점, 대구칠성점에서도 대규모 휴식 공간을 운영 중이다. /롯데마트

쇼핑하지 말고 노세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4년 전 "백화점의 경쟁자는 놀이공원과 야구장"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지금 유통가의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은 462㎡(약 140평)의 공간에 매장 대신 인공파도로 즐기는 '실내 서핑장'을 들여놓았다. 1시간에 이용요금이 4만원인데 주말에 100명 넘게 이곳을 찾았다. 같은 시기 증축한 롯데백화점 안산점은 총 6개 층 중 2개 층에선 아예 상품을 팔지 않는다. 대신 5층에 온실 카페와 문화센터를 들였다. 꼭대기 층에는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고 도심 속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을 배치했다. 놀 공간을 만들었더니 매출은 알아서 뛰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안산점 오픈 후 한 달 동안 매출 목표를 40% 초과 달성했다"며 "전체 방문 인원(13만명) 중 2만여 명이 신규 고객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8월 건대점 10층에 VR(가상현실) 체험관인 '롯데 몬스터 VR' 실내 테마파크를 오픈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를 붙잡기 위한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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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롯데백화점 건대점 10층에 있는 가상현실 실내 테마파크에서 놀이기구를 즐기는 모습. 60개 이상의 VR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1400㎡의 공간에서 100명이 동시 탑승할 수 있다고 한다.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도 올 초 압구정본점에 직원의 설명을 듣고 와인을 구매하는 기존 와인 매장에서 탈피해 와인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20여 종의 요리를 판매하는 레스토랑 형식의 와인 매장을 열었다. 체험형 쇼핑 공간인 것이다. 주변 식품매장 불이 꺼져도 밤 10시까지 영업한다.

원하는 품목별 따로 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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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백화점 매장은 브랜드별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에게 이런 매장 방식은 불편하다. 냄비를 사기로 마음먹었다면 온라인에선 '냄비'라고 검색하고 죽 나오는 제품을 비교하면 그만인데, 백화점에선 냄비 브랜드 매장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냄비는 주방용품 브랜드에서 팔기 때문에 냄비를 고르기 위해선 칼, 도마, 프라이팬 등이 뒤섞여 있는 매장을 헤맬 수밖에 없다. 클릭 한 번이면 당일이나 다음날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온라인 시대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백화점도 '공급자 위주'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모든 브랜드와 가격대의 냄비가 한 곳에 진열돼 있는 '상품 중심'의 편집 매장 형태로 바꾸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입점 업체들도 기존처럼 각자 매장만 고집해서는 손님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협조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1일 서울 잠실 월드타워 에비뉴엘 5층 661㎡(약 200평) 공간에 이구일 포토그랩스(291 photographs)를 입점시켰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카메라는 물론 전문 서적, 사진 작품 등을 편하게 둘러보고 살 수 있도록 한 매장이다. 여기에 온라인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사진작가가 직접 찍어주는 '프로필 촬영'과 고객이 원하는 작품을 즉석에서 출력해주는 체험 서비스도 보강했다. 유통업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더그 스티븐스는 저서 '유통 혁명 오프라인의 반격'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때로는 파괴적인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이제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만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미래다."


석남준 기자(namjun@chosun.com)

2019.05.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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