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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혼돈의 삼성

권오현이 던진
5가지 화두

by비즈니스워치

역대 최대 실적발표 직후 '무거운 짐' 내려놓기로

"더이상 미룰수 없어" 인적쇄신 폭풍 이어질수도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13일 자진사퇴 선언은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2012년부터 5년이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그만둘 때가 됐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건 평상시 얘기다.

 

지금 삼성은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삼성의 얼굴 역할을 하던 권 부회장이 물러난다는 건 한 개인의 퇴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권오현이 던진 5가지 화두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① 왜, 영화 같은 퇴장

이날 권 부회장의 사퇴 발표는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의 실적(3분기 영업이익 14조5000억원)을 발표한 직후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박수칠 때 떠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반도체 연구원 출신인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1위의 반도체기업으로 올려놓았고 떠나야 한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보여준 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영화같은 장면이다.

 

권 부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인 '삼성전자 라이브(LiVE)'에 "우리 반도체가 세계 일등으로 성장해 온 과정에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면서 "이 자리를 떠나면서 저의 이런 자부심과 보람을 임직원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② 모를리 없는 리더십 공백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올해 2월 이 부회장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로 가뜩이나 구심점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룹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그가 떠나는 건 곧바로 리더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권 부회장 스스로도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로서 5년을 지낸 본인도 막막해 하는 일을 후임자가 잘 해낼 것으로 여기는 건 자칫 모험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사퇴 결정을 내린 것은 권 부회장이 느끼는 중압감이 한계점을 넘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기력을 느끼는 '번아웃(Burnout) 증상' 같은 심리상태가 사퇴의 한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권 부회장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일부터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운 이 부회장 재판까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숱한 현안을 처리해왔다.

③ 사전 언질 있었나

재계에서는 총수일가 등 누군가로부터 사퇴에 대한 언질을 미리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직원들 사이엔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한명이라도 아쉬운 상황인데 혼자 훌훌 떠나는 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삼성에서 30년 넘게 몸담은 권 부회장이 과연 이 같은 오점을 남기면서까지 떠나고 싶었겠냐는 것이다.

 

권 부회장은 지난 8월말에도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에 앞으로 3년간 7조8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총수 부재 속에서도 미래를 준비한 그가 갑작스럽게 물러나는 배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인 셈이다.

 

다만 권 부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것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결정이라는 점을 내비쳤다. 삼성전자 역시 "권 부회장이 조만간 이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게 사퇴결심을 전하며 이해를 구할 예정"이라며 그의 사퇴가 경질이 아님을 에둘러 표현했다.

 

삼성 관계자는 "글로벌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자신의 퇴임을 미리 예고해 후임자에게 준비할 시간을 준다"며 "경영진 교체에 따른 혼란을 줄이려고 권 부회장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오현이 던진 5가지 화두

④ 인적 쇄신 신호탄인가

남은 관심은 권 부회장의 사퇴 이후 빈자리를 누가 메우느냐에 모아진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소폭의 사장단 인사만 해왔다. 총수 부재의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현상유지에 무게를 둔 인사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최순실 사태로 사장단 인사를 아예 건너 뛰었다. 이러다보니 삼성 내부에선 인사적체로 조직내 활력이나 의욕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커졌다.

 

권 부회장의 사퇴결심도 그룹 전반에 걸친 인적쇄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이 앞장서 총대를 멨으니 다른 사람들도 따르라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전자 라이브에 올린 글에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⑤ 계열사까지 확산될까

굳이 쇄신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후속 사장단 인사가 불가피하다.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이자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문장이다.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그의 자리를 채우다보면 자연스럽게 연쇄 임원 인사로 이어진다. 중요한 건 인사의 폭이 어디까지 확대될 것이냐이지 인사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이 후임자도 추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삼성은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 등 전자계열사의 전략 및 인사업무를 #[삼성전자]가 총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권 부회장의 사퇴로 시작되는 인사이동이 다른 계열사까지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은 미전실 해체 이후 각 계열사별 자율경영을 표방했는데 이런 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학선 기자 naemal@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