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곳, 호주 브룸

[여행]by 채지형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곳, 호주 브룸

여유있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호주 할아버지

서호주의 주도 퍼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정도 날아가면 작은 도시, 브룸(Broom)이 나타납니다. 이름만큼이나 부드러운 이 도시는 외지인보다 호주 사람들에게 더 유명합니다. 호주의 자연과 역사가 숨어 있으면서, 한없이 여유롭거든요. 그래서 브룸으로 떠나는 여행은 '보러가는 여행'이라기보다는 '느끼러 가는 여행'입니다.

어디에 가도 여유로움이 넘치는 도시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곳, 호주 브룸

어디에서나 편안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브룸

브룸이 속해 있는 서호주는 호주의 8개 주 중에서 가장 큰 주로, 호주의 서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요. 브룸은 호주의 마지막 아웃백이라고 불리는 킴버리로 가는 관문이자 서호주 북서부의 가장 큰 도시지만, 인구는 1만 6000여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시 어느 곳에 가도 붐비는 법이 없죠. 도로를 걷다가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어 인사를 하게 될 정도예요. 여유와 느림이 빡빡했던 마음에 틈을 만들어 주더라구요.

 

끝없이 펼쳐진 케이블 비치의 백사장, 붉디붉은 사암이 켜켜이 쌓여있는 절벽, 파란만장한 진주잡이의 역사,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갤러리, 독특한 음식까지 브룸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한둘이 아닙니다.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곳, 호주 브룸

브룸의 놀라운 락 포메이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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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 나무를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케이블 비치의 화려한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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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고운 케이블비치

그렇게 수많은 브룸의 매력 중에서도 최고는 케이블 비치예요. 케이블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블'과 같은 뜻이랍니다. 해변 이름에 전선을 연상시키는 케이블이라니,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1889년 브룸과 자바 사이에 해저 케이블을 설치했는데, 그 케이블이 이 해변을 지나간다고 해서 케이블비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케이블 비치는 브룸 시내에서 약 6km 떨어져 있는데요. 놀라울 정도로 길고 넓은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이가 무려 22km예요. 넓기도 다른 비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죠. 일몰 때가 되면 큰 차들이 몰려오는데, 그래도 전혀 복잡해 보이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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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케이블비치에서 즐기는 낙타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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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행렬처럼 보이는 케이블비치의 낙타

아침에는 강아지와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밤이 되면 낙타와 사륜 구동차들이 케이블비치를 점령합니다. '해변에서 왠 낙타?'라고 반문하실 텐데요. 케이블비치에서 꼭 해봐야 할 것 중 하나는 낙타 타기거든요. 낙타를 타고 해가 바다 위로 떨어지는 장관을 만나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랍니다. 낙타에 오르면 '흔들흔들' 겁이 나기는 하지만, 여행자들은 마치 케이블 비치에 순례라도 온 듯 낙타와 함께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감상합니다.

 

케이블비치의 남쪽 끝에 가면 갠테움포인트(Gantheaume Point)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붉은 색의 절벽이 눈부시게 푸른 인도양과 어우러지는 곳이죠.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공룡 발자국이 있기 때문이에요. 1억 3천만 년 전 공룡 발자국을 볼 수 있답니다.

진주의 역사가 담긴 브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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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진주를 위해서 바다에 갔던 잠수부들이 착용했던 육중한 장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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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잠수부들의 묘지

브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진주 산업의 역사입니다. 진주 채취가 절정을 이뤘던 20세기 초에는 세계 진주 채취량의 80%까지 공급했을 정도로, 브룸은 진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진주의 메카'였던 브룸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어요. 윌리 크릭 진주 양식장(Willie Creek Pearl Farm)에 가면, 배를 타고 현대적인 진주양식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케일리스 브룸 펄즈(Kailis Broome Pearls)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주 남해산 진주를 볼 수 있고요.


진주의 화려한 모습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00년대 초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잠수부로 활약했는데, 그들의 열악한 잠수 장비를 보니 가슴이 짠해지더군요. 헬맷만 해도 90kg. 배 위의 줄 하나만 의지해서 물속에 들어갔던 잠수부의 힘겨운 생활이 다시 한 번 삶의 치열함을 생각하게 해주더군요. 브룸에는 진주를 캐다가 목숨을 잃은 일본인 잠수부들의 묘지도 있었습니다.

생강 맥주를 마셔볼까, 칠리 비어 맛을 볼까

브룸 여행에서 뭔가 특별한 맛을 보고 싶다면 마쏘 양조장(Matso’s Brewery)을 지나치면 안 됩니다. 수제 맥주와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에요. 마쏘만의 다양한 맥주가 특징인데요. 대표적인 맥주가 '진저 비어'에요. 혀를 톡 쏘는 생강 맛 맥주죠. 핫소스를 탄 것처럼 매운 '칠리 비어', 바나나 맛이 나는 '바나나 비어', 달콤한 맛이 나는 '망고 비어' 등 특이한 맥주들을 맛볼 수 있답니다.

 

마쏘 양조장에서 기분 좋게 한잔 했다면, 이번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극장, 선 픽처스(Sun pictures)를 찾아볼 차례입니다. 선 픽처스는 1926년에 문을 열었는데요. 지금도 반짝이는 별 아래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답니다.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면 밤에 꼭 가보세요.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곳, 호주 브룸

타운 곳곳에는 갤러리가 많다. 몬순 갤러리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 도시 곳곳에 있는 작은 갤러리입니다. 예술인마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갤러리가 많더라고요. 그중에서도 마쏘 양조장 옆에 있는 몬순 미술관은 꼭 들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호주 원주민들과 바오밥 나무 등 브룸의 특징을 화려한 색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볼 수 있거든요.

 

볼거리, 할거리가 이렇게 많지만 브룸에 도착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마음은 계속 여유롭더군요. 이것이 바로 브룸의 마력이 아닐까 싶더군요. 브룸을 떠날 즈음에야, 왜 호주사람들이 브룸이라는 이 작은 도시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곳, 호주 브룸

케이블비치의 황홀한 일몰

201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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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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