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인도는 망고의 나라

[여행]by 채지형

일기 예보를 봤습니다. 오늘 최고 기온 42도. 그래도 이번 주 최고 온도 중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5월의 인도는 활활 타오릅니다. 델리에 사는 후배 수미의 표현대로 ‘타죽을 것 같은’ 날씨가 이어지죠. 대낮에 거리에 나가면 빛나는 햇살이 날카로운 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어컨을 켜면 되지 않느냐고요? 모르시는 말씀. 5성급 호텔이나 최고급 쇼핑몰이 아닌 이상, 인도는 어디를 가도 전기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바라나시는 더 말할 나위 없고요. 

인도의 5월은 망고의 계절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여러종류의 열대과일을 맛볼 수 있는 인도 길거리. 5, 6월은 단연 망고의 달

그러나 5월에 인도를 여행하는 것이 괴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망고가 있거든요. 5월은 망고 철입니다. 노란 망고가 예쁜 색보다 더 사랑스러운 맛을 내는 시기랍니다. ‘새콤달콤한 망고’이 아니라 ‘달디 달고 또 달아서 너무 단’ 망고들이 지천에 깔립니다.

 

가을에 사과를 사러 시장에 가면, ‘문경 사과, 대구 사과, 청송 사과’ 등 지역의 자존심을 건 다양한 사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도에서는 망고가 그렇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름이 다른 여러 망고를 볼 수 있죠.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왼쪽) 새콤달콤한 애플망고 (오른쪽) 아차르 만들 때 쓰는 파란 망고

인도에서 판매되는 망고 종류는 1000여 가지에 이르는데요. 그중 안드라 쁘라데쉬 지역에서 유명한 사페다(safeda), 구자라트 지역의 파이리(pairi), 하이데라바드에서 인기 있는 니람(neelam), 우따르 쁘라데쉬의 두세리(dussehri) 등이 유명합니다. 껍질의 색과 모양, 재배 시기에 따라 구분합니다.

 

인도 망고 중 최고로 치는 것은 ‘알폰소 망고’입니다만, 이 품종은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수출용으로 대량 소비되거든요. 혹시나 알폰소 망고를 만나게 된다면, 운이 좋은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격도 다른 망고에 비해 비싸고요. 꼭 알폰소 망고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어떤 망고를 선택하든, 성공확률 90% 이상입니다. 

 

여러 종류의 망고를 구경하다 보면, 새파란 망고도 보게 되는데요. 이 망고는 그냥 먹기보다는 식재료로 쓰이는 망고입니다. 인도식 장아찌인 아차르나 인도식 양념인 차트니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쓰이거든요. 

인도를 사랑하게 만드는 망고의 힘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큐브처럼 잘라먹는 것이 정석이지만 인도에서는 잘 익은 속만 크게 잘라 먹는다

5월의 망고는 12월 제주의 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가나 쉽게 구할 수 있죠. 가격이 착한 것은 물론이고요. 엊그제 사 먹은 망고는 1kg에 40루피였는데, 저울에 통통한 망고가 4개 정도 올라가더군요. 40루피를 우리 돈으로 환산하니 700원 정도 되네요. 눈에서 하트가 쏟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망고가 먹고 싶을 때면, 비싼 망고를 회 뜨듯 껍질을 벗긴 후 바둑판처럼 잘라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맛보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어찌나 게걸스럽게 먹게 되는지요. 원시인처럼 대충 껍질을 벗긴 후, 입을 크게 벌립니다. 부드럽고 달달한 과육이 입안에 쏙 들어가면, 달콤함에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 ‘과일의 왕’이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맛입니다.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트리밴드럼에서 맛 본 망고 쥬스. 걸쭉해서 숟가락을 이용해야한다

인도에서는 망고 주스 또한 차원이 다릅니다. 얼음을 섞지 않고, 망고를 그대로 짜서 주거든요. 남인도 트리밴드럼의 길거리 주스 가게에서 처음으로 망고 주스를 주문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갑자기 숟가락을 주더군요. 주스를 마시는데 빨대 대신 왜 숟가락을 주나 했는데, 컵을 받아들고 알았습니다. 그 집의 망고 주스는 마시는 종류가 아니라, 떠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요. 퓨어 망고 주스를 주문했는데 정말 물 한 방울 안 섞은 100% 망고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한가득 쌓아놓고 망고를 먹는 맛

숙소에 냉장고는 없지만, 방에 망고가 떨어지면 안 됩니다. 한가득 쌓아놓고 먹어야 제 맛이거든요. 망고가 가득한 책상을 보니 부자가 된 것 같더군요. 한편으로는 가족들과 친구들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망고를 좋아하는 조카 서린이도, 부드러운 과일을 좋아하는 어머니도 행복해하실 텐데 말입니다. 길거리 리어커에 있는 망고를 모두 사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파티를 열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후배 수미가 이야기해준 조카들의 인도 여행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생전 처음 혼란의 극치인 델리를 보고 울음을 터트린 조카들. 당장 집에 가고 싶다고 울던 조카들이 망고를 맛본 후에는 인도에 살고 싶다고 했다네요. 마력을 가진 망고의 힘. 조카들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우정과 행운의 아이콘, 망고

신나게 인도 망고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니, 문득 ‘왜 지금까지 인도 망고가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망고가 한창인 시즌에 인도를 여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고, 우리나라에서 인도 망고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인도는 세계 1위 망고 생산량을 자랑하는 나라더군요. 무려 전 세계 망고 생산량의 42%를 차지하고 있고요. 망고의 발상지도 북인도 지역이었습니다. 약 4000년 전부터 망고를 재배했다고 합니다.

 

인도의 제 1종교인 힌두교 신화에도 망고가 등장합니다. 시바와 파르바티에게 가네쉬와 무루간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망고를 가운데 두고 세상을 세 바퀴 먼저 돌고 온 아들에게 망고를 주겠다고 경쟁을 붙였습니다. 무루간은 곧장 공작새를 타고 떠났지만, 가네쉬는 여유를 부리며 시바와 파르바티 주위를 세 번 돌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죠. 시바와 파르바티가 세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요. 결국 무루간을 물리치고 망고를 차지하게 된 가네쉬. 역시 지혜의 신답습니다. 

 

망고는 신화뿐만 아니라 뉴스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과일을 넘어서 우정과 행운의 아이콘이기 때문인데요. 인도는 다른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을 때 달달한 망고 선물을 통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곤 한답니다. 미국과의 교역에서는 인도가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수입하는 대신, 미국에 망고를 수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고요. 

“더워도 괜찮아, 망고가 있으니까”

망고가 있어 행복한 인도여행

맛도 있고 이야깃거리도 넘치는 인도 망고. 지난 4월 말에는 인도 망고가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알폰소 망고 출시 행사도 열렸다고 하고요. 집에 돌아가면 인도 망고가 얼마나 그리워질까 싶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도 인도 망고를 만날 수 있다니 내심 기대됩니다. 인도에서만큼 원 없이 즐기지는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아직 인도를 여행할 날들이 남아 있어 다행입니다. 인도를 떠나는 순간까지 망고를 품고 있으렵니다. 망고 이야기를 풀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네요. 저는 다시 망고를 사러 다녀와야겠습니다.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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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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