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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디테일추적

괌 판사부부 사건, '국내법 처벌'도 가능하다..그러나

by조선일보

추석 명절 연휴 중이던 지난 2일(현지 시각), 미국령 괌의 한 마트 주차장에서 수원지법 판사 설모(35)씨와 남편인 변호사 윤모(38)씨가 전격 체포됐다. 문을 걸어 잠근 자동차 안에 아들(6)과 딸(1)을 방치한 혐의였다.

괌 판사부부 사건, '국내법 처벌'도

괌 뉴스 캡쳐

3일 현지 매체 ‘괌 뉴스’가 아이 구조 장면, 부모 체포 장면, ‘머그샷’까지 낱낱이 공개하자, 국내 인터넷은 발칵 뒤집혔다. 괌 가정법원은 5일 설씨 부부에게 각각 벌금 500달러를 선고했다. 부부는 아이들과 6일 귀국했다.

 

연휴가 끝난 10일, 수원지법이 설 판사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설 판사는 이날 K마트에서 쇼핑한 시간이 적힌 영수증을 비롯한 소명자료를 냈다고 한다. ‘방치 시간’에 대해 사실 관계를 다툴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판결문도 도착하는 대로 수원지법에 제출하기로 했다.

 

연휴 내내 많은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다. 

“국내 법에는 딱히 처벌 조항이 없다.”

“설 판사가 현지 법에 따라 처벌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 돌와와도 이중 처벌이 될 수 있어 추가 처벌을 할 수 없다.” 

익명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한 언론에

“우리나라에선 해프닝 정도로 여겨지는 사안으로 판사를 징계하는 것은 과하다”

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아무런 죄가 안 된다는 얘기다. 정말일까. <디테일추적>이 법조계 인사들에게 문의한 결과는 좀 달랐다.

괌 판사부부 사건, '국내법 처벌'도

아동복지법 17조

-언론마다 국내 법에 처벌 조항이 없다고 하던데요.

 

“있는데요. 아동복지법 17조 6항이요.”

아동복지법 17조 6항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설 판사 행동이 ‘방임죄’일 수도 있다는 건가요.

 

“애를 차 안에 가둬놓은 행위 자체는 감금이에요. 하지만 부모가 아이를 감금하려던 의도는 없었겠죠. 부모는 법률상 ‘보호 의무자’인데, 설 판사 부부는 여섯살과 한살 자녀를 ‘보호 상태에서 이탈’하게 만든 뒤 쇼핑을 했어요. 그게 방임이에요. 자녀 나이가 얼마나 어린지, 방치한 장소가 익숙한 곳인지 낯선 곳인지, 방치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자녀들의 상태는 어떤지 등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 있겠죠.”

 

-비슷한 일로 국내에서 처벌받은 선례가 있나요.

 

“다만 이와 같은 일로 국내에서 형사 처벌까지 간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기 위해 신생아를 집에 홀로 방치하고 나갔던 엄마가 처벌된 경우는 있었어요. 국내에선 아이들이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수사기관이 ‘사건화’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 여름 강원도의 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네살 어린이가 50분간 방치된 일이 있었다. 이날 낮 기온은 30도까지 올라갔지만 방치된 때가 오전이라 아이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어린이집 관계자를 아동 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설 판사 부부가 현지 법에 따라 처벌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선 ‘이중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처벌 할 수 있어요. 외국 법원 판결은 원칙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기판력’이 없어서, ‘일사부재리(하나의 사건에 두번 이상 소가 제기되지 않음)’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가 국내 법에 저촉될 경우 또 처벌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외국에서 치룬 형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법원 재량에 따라 국내 형벌에 포함시켜줄 수 있죠.”

괌 판사부부 사건, '국내법 처벌'도

형법 7조

-그러니까 죄가 된다는 건가요, 안 된다는 건가요.

 

“설 판사 부부의 행동은 방임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처벌까지 간 선례는 알려진 바 없고, 만일 이런 일로 처벌을 한다 쳐도 부부가 현지에서 이미 벌금형을 치렀기 때문에, 국내 법원이 이를 넘어서는 추가 벌금형을 내릴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입니다. 현실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지, ‘적용할 법 조항이 없어서 처벌을 못 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법원은 한국인 판사가 해외에서 현지 법을 어긴 사례가 처음이라 징계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아예 이 사건을 계기로 ‘빼도 박도 못하게’ 처벌 법령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은 이날 “운전자 및 동승자가 차량에서 벗어날 때 미취학 아동을 차량 내에 방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