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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why

매운 맛이 짜릿하게
등줄기 타는 고추짜장면…

by조선일보

인천 동춘3동 '만강홍'

 

매운 맛이 짜릿하게 등줄기 타는 고추

부슬비가 내리는 점심 나절이었다. 인천으로 떠난 당일 치기 출장, 동료들과 나는 허기를 달래야 했다. 찾아간 곳은 아파트 단지 상가였다. 낮은 3층 건물 외벽에 붙은 베이지색 타일은 색이 바랬다. 하얀 비닐을 댄 창문에는 빨갛고 파란 당구장 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옆으로 '만강홍'이라는 큼지막한 한자 간판이 보였다. 혼자라면 모를까, 여럿을 이끈 처지라 마음이 심란했다. 당구장 옆에 있는 중국집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게다가 잘한다는 중국집이 널리고 널린 인천이었다. 굳이 이 아파트 어귀까지 와야 했을까? 잠시 나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어쨌든 비는 피해야 했다. 뛰듯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길게 줄 선 광경과 마주쳤다. 한편으로는 황당하고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일단 맛이 없는 집은 아니란 신호였다. 얼마간 줄을 서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검은 짜장면과 붉은 짬뽕을 앞에 두고 고개를 박고 있었다. 한편에 앉은 덩치 큰 남자는 남은 짜장 소스에 공기밥을 따로 시켜 비볐다. 뉴욕대 교수 나심 탈레브는 처음 간 식당에서 메뉴 고르는 법을 이렇게 말했다. "뚱뚱한 남자가 먹는 음식을 선택한다." 일행들도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모았다. "짜장면이요!"

 

한 가지 팁. 이 집 짜장면은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유명한 것은 단연 고추짜장면이다. 취향에 따라 짬뽕, 볶음밥, 잡채밥도 주문서에 올랐다. 여럿이 둘러앉으니 괜히 신이 나서 "양장피, 깐풍기, 난자완스도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점원은 두 손을 모아 주문서를 적은 후 주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요리가 하나씩 도착했다. 머리를 빗은 듯 가늘고 길게 채 썬 오이가 한편에 곱게 앉은 양장피(2만8000원·사진)는 담음새만으로도 맛을 알 수 있었다. 뜨거운 증기로 익혔을 겨자 향이 코를 겨냥했다. "아, 매워!"라고 몇몇이 비명을 질렀지만 표정은 즐거웠다. 젓가락으로 들기에 무거울 정도로 큼지막한 깐풍기(2만5000원)는 사탕을 문 것처럼 달달했지만 혀 뒤로 얼얼한 감각이 남았다. 어른 흉내를 내느라 시킨 난자완스(3만원)는 햄버거 패티처럼 도톰했다. 입에 무니 담백하게 맛이 돌고 목구멍에 살코기를 넘길 때는 간기가 돌았다. 그 조화에 배가 부르다는 지각도 사라졌다. 점차 체면이 사라질 무렵 식사가 도착했다. 맨 처음 나온 볶음밥(6500원)은 멀리서 봐도 윤기가 흘렀다. 한 숟가락에 "잘 볶았다"라고 누군가 감탄했다. 당면을 길지 않게 잘라 한 숟가락에 뜰 수 있는 잡채밥(7500원)은 뜨거운 불길에 그을린 간장의 향이 고소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하나 둘 맛을 보고 나니 고추짜장면(6000원)이 남았다. 첫 젓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첫눈에 반한 것처럼 매운맛이 짜릿하게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단맛과 짠맛은 그 뒤로 숨어 맛을 더했다. 속은 아렸지만 혀는 원했다. "비가 오면 이 짜장면 생각날 것 같아요"라고 한 후배가 말했다.

 

팔에 토시를 하고 손가락에 골무를 낀 주인장에게 기분 좋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렸다. 비에 물들어 침울해진 아파트 단지 풍경이 보였다. 그때 요리 접시 구석에 있던, 무와 피망으로 모양을 낸 연꽃이 떠올랐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귀한 꽃이었다.

 

정동현 대중식당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