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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덴마크 레고하우스] '레고의 고향' 빌룬을 가다

21개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이곳은 세계 어린이들의 수도

by조선일보

레고다운 '레고 집'

블록 끼워맞춘 형태로 관광객들 눈길 끌어

체험관·식당 등 곳곳에 블록 2500만개 자리잡아

 

건물 곳곳 '레고 DNA'

레고 블록의 역사 담긴 높이 15m 나무부터

세계 레고 팬들이 만든 마스터피스 전시관도

 

'내안의 어린이'를 깨우다

놀 줄 모르는 어른 위해 체험 공간마다 '도우미'

레고로 물고기 만들면 3D 영상으로 바뀌기도

21개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이

장난감이 아니다. 조감도도 아니다. 지난 9월 말 덴마크 빌룬에 들어선 실제 ‘레고하우스’를 공중에서 찍은 사진이다. 마치 땅 위에 21개 색색의 레고 브릭을 끼워 조립한 듯한 모습이다. 사진 맨 아래 중앙에 있는 빨간 지붕 집은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살던 집이다. 레고가 태어난 곳 지척에 레고의 새집이 생겼다. / Iwan Baan

매끈한 몸에 동그란 돌기 솟은 이 녀석, 아이 부모들에겐 골칫덩이다. 치명적 매력에 빠져 못 헤어나는 어른도 많다. 근엄한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조차 녀석의 어마어마한 인기를 우스개로 표현했다. 적어도 소파 쿠션 아래 박힌 녀석이 100억개, 진공 청소기 안에 들어간 놈이 30억개쯤 될 거라고.

 

손톱만 한 작은 몸집 하고선 세계인의 가슴에 콕 박힌 블록, 레고다. 장난감의 대명사 레고에게 한 달 전 자신을 뻥튀기한 모양의 특별한 집이 생겼다. 지난 9월 28일 레고의 고향인 덴마크 빌룬(Billund)에 들어선 레고 체험관 '레고하우스(LEGO House)'다. 개장 날 찾은 새 레고의 성지는 웃음·재미·배움 세 요소로 버무린 '레고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레고 마을에 들어선 레고 집

21개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이

레고하우스를 옆에서 바라본 모습. 하얀 타일로 외벽을 감싸고, 귀퉁이는 계단형으로 만들어 누구나 오르내릴 수 있게 디자인했다.

"웰컴 투 홈 오브 레고!" "인조이 레고!" 1964년 레고 그룹이 만든 빌룬 공항에선 여권 심사 담당자도, 환전소 직원도 레고로 인사를 건넸다.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이번엔 레고를 테마로 1968년 개장한 놀이공원 '레고랜드'가 반겼다. 공유 숙박 사이트로 예약한 숙소엔 서랍 한가득 레고가 들어 있었다. 쇠똥 냄새 그윽하고 인적마저 드문 인구 6000명의 외딴 시골이 온통 레고 투성이다.

 

레고하우스는 이 '레고의 땅'에 찍힌 화룡점정. 읍내 수준의 소담한 시내 한복판, 단층 주택이 자아내는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을 뚫고 건물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방금 청소를 마친 욕실 벽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흰 타일을 온몸에 휘둘렀다. 거대한 흰색 레고 브릭 21개를 끼워 조립한 형태의 외관이 온몸으로 아우성친다. 여기가 '레고 집'이라고.

 

1만2000㎡(3630평)에 들어선 높이 23m 건물. 빌룬에선 제일 높은 건물이다. 빌룬 타운홀(시청사)이 있던 땅을 레고 그룹에서 사들여 4년간 공들여 완성했다. 건물을 구성하는 21개 네모 상자의 외부 꼭대기는 알록달록 칠해, 위에서 보면 거대한 들판에 색색의 레고를 꽂은 것만 같다. 관람료 없이 공짜로 올라갈 수 있는 옥상 놀이터에선 빌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0여m 떨어진 레고 창업자 집도 훤히 보인다.

 

"건물 대각선 모퉁이에 85년 전 할아버지가 레고를 시작한 집이 그대로 있어요. 레고의 역사가 숨 쉬는 이 동네를 '상상력 넘치는 세계 어린이 수도(creative world capital of children)'로 만들고 싶습니다. 시작이 레고하우스이지요." 개막식에서 레고 창업자의 손자인 키엘 키르크 크리스티안센(70·레고 그룹 이사회 회장)이 감격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60여 년 전 레고 포장 상자를 장식한 모델이었던 그는 이젠 푸근한 동네 할아버지가 됐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억만장자지만 나고 자란 작은 벽돌집을 떠나지 않았어요. 우린 그를 믿어요. 또 시련이 닥쳤지만." 전날 밤 숙소 주인 티나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21개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이

1) 레고 브릭 196만여 개로 만든 ‘레고 폭포’(왼쪽)가 장관을 이룬다. 2) 레고로 만든 축구 경기장과 대도시 풍경.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3) 1층부터 3층까지 관통한 높이 15.68m의 거대한 ‘레고 나무’. 레고 브릭 631만여 개를 일일이 조립해 만들었다. 4) 건물의 쐐기돌 같은 ‘마스터피스 갤러리’. 레고로 만든 대형 공룡과 레고 팬이 만든 작품이 전시돼 있다. 5) 건물 내부 계단. 벽에 붙은 타일도 ‘2×4 브릭’의 비율을 그대로 적용했다. / 레고그룹·Iwan Baan

덴마크 왕세자 부부가 개막식에 참석할 정도로 최고의 경사를 맞았지만 레고를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04년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가 '기업 혁신의 교과서'로 불리며 회생에 성공한 지 13년 만에 올 상반기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 9월 초 직원 1400명을 정리 해고했다. 사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레고이기에 충격은 컸다. 아날로그에 깊게 뿌리 내린 회사가 디지털의 높은 파고를 견뎌내기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미묘한 시점에 문을 연 탓인지 레고하우스는 단순한 체험관을 넘어 유산(遺産)을 되돌아보고 꿋꿋이 버텨내겠다는 레고의 선언처럼 보였다.

 

크리스티안센은 "레고하우스의 주인은 레고 팬, 레고 직원, 그리고 빌룬 주민"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레고하우스가 공항 근처 레고랜드만 찍고 돌아가는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아 시내까지 둘러보게 하는 자석이 되기를 기대했다. 빌룬 주민 6000여 명 중 4500명이 레고 관련 일을 한다. 그에겐 빌룬을 살리는 일이 곧 레고를 살리는 일이다.

 

9월 초 정리 해고 소식이 흘러나올 무렵 미국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레퓨테이션 인스티튜트가 발표한 '2017 글로벌 CSR 평판'에서 레고는 1위를 차지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근거해 산출한 결과였다. 성장은 둔화되어도 여전히 존경받는 기업이란 분석엔 이유가 있어 보였다.

'잘 놀아보세!'… 레고 DNA를 체험하다

21개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이

로비에 있는 ‘레고 광장’.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들어와 건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는 “빌룬 사람들의 사랑방이 됐으면 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 Iwan Baan

"의자 아래 깜짝 선물을 꺼내보세요." 단상에 올라선 외르겐 비 크누스토르프(49) 레고 그룹 회장의 말에 개막식 참석자들이 의자 아래로 손을 뻗었다. 깜짝 선물은 빨간 '2×4 브릭(동그란 돌기가 4개씩 2줄로 있는 기본 레고 브릭)' 6개 들이였다. 2×4 브릭은 레고하우스 건물 디자인에 적용된 브릭이기도 하다. 크누스토르프 회장이 화면에 조립된 예를 보여준 다음 10초 안에 똑같이 따라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일순간 블록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회장이 다시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미션을 완수하려고 창의력을 발휘했지요? 이 과정이 레고가 강조하는 '놀이를 통한 배움(learning through play)'입니다."

 

1934년 만들어진 '레고'라는 브랜드명은 덴마크어 '레그 고트(leg godt)'를 줄인 말로 '잘 논다(play well)'는 뜻이다. 이름자에도 오롯이 새겼듯 놀이는 레고의 DNA이자 생명줄이다. 예스퍼 빌스트럽(45) 레고하우스 대표는 "체험존, 옥상, 식당 등 어디서든 놀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괜한 자만이 아니었다. 1층부터 3층 꼭대기까지 관통한 거대한 '레고 나무'에서부터 입이 떡 벌어진다. 레고 631만여 개를 일일이 조립해 만든 15.68m 높이 나무는 레고의 역사를 나이테로 휘감았다. 밑둥치엔 초창기 레고가 만든 오리 인형이 있고 위로 갈수록 최신 제품이 있다. 레고 브릭 196만여 개로 만든 5.66m의 거대한 '레고 폭포'도 장관을 이룬다. 기계로 뚝딱 만든 3D 프린트 조각에선 느낄 수 없는 땀 냄새가 진동한다. 사람의 손으로 빚은 '레고 자연'은 대자연 못지않게 황홀했다.

 

맨 위층에 놓인 '마스터피스 갤러리'는 전 세계 레고 팬이 만든 작품을 전시한 공간이다. 솜씨 좋은 한국 팬이 만든 작품도 눈에 띈다. 건물 지하에 있는 '히스토리 컬렉션'엔 역대 출시된 주요 제품 200여 개가 전시돼 있다. "레고 마니아도 와서 '와우' 탄성 지를 수 있는 회심의 공간"이란다.

 

체험존은 노랑·초록·파랑·빨강 등 네 가지 색상으로 구분된다. 각각 정서·사회성·인지 능력·창의력을 기르는 공간이다. 코딩을 적용해 북극의 얼음을 깨는 게임 '로보 랩', 직접 동영상을 만들어 보는 '레고 무비' 코너는 흥미진진하다. 그중 압권은 '피시 디자이너'. 레고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스캔하면 물고기가 3D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어 물속으로 헤엄쳐 가는 영상이 펼쳐진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레고식 융합이 어른도 웃음 짓게 한다.

놀 줄 모르는 어른을 위한 놀이터

레고 더미 속에서 헤매면 '플레이 에이전트(play agent·놀이 도우미)'가 다가와 놀 줄 모르는 당신을 도와준다. 건물 전체에 들어 있는 레고 브릭 수는 2500만개. 이리저리 뒤섞인 레고를 분리·해체하는 특수 임무 띤 요원도 있다. 이른바 '브릭 세퍼레이터(brick seperator·브릭 해체사)'. 15~18세 학생들이 방과 후 아르바이트 삼아 한다.

 

입장할 때 두르는 손목 밴드엔 특별한 선물이 숨어 있다. 체험관 출구 옆에 있는 스캐너에 갖다 대면 각자의 이름과 날짜가 찍힌 카드가 나오고, 2×4 브릭 6개들이 한 봉지를 선물로 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기념품 아닌가. 카드마다 이 레고 세트로 만들 수 있다는 9억1510만3765가지 조합 중 하나가 프린트돼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봉지를 뜯어 카드에 찍힌 모양대로 브릭을 맞추다가 옆자리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선 당신이 어른이란 걸 잊고 마음속 어린이(inner child)를 꺼내 보세요." 창업자 손자가 당부할 땐 코웃음 쳤는데 이럴 줄이야.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가슴에서 거짓말처럼 동심이 불쑥 튀어나왔다.

레고는 '레고 고향'서 사라? 한국이 더 싸요~

21개 레고 블록으로 쌓아올린… 이

세계에서 행복도 1, 2위 다투는 덴마크라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관광객들에겐 결코 행복한 나라가 아니다. 외딴 시골도 마찬가지. 레고의 본고장이라고 해서 빌룬에서 레고가 쌀 거라 생각했다간 낭패다. 같은 제품이 한국보다 1.5~2배 가까이 비싸다. 마음에 드는 모델이 있으면 찍어두고 한국에 돌아와 사자.

 

레고하우스 1층에 있는 레고 스토어에서만 살 수 있는 레고 모양 열쇠고리, 티셔츠 같은 기념품 사는 게 차라리 낫다. 오픈 기념으로 아직은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레고 아키텍처 시리즈 '레고하우스' 모형(449DKK·7만9000원 정도)도 괜찮다. 레고하우스 입장료는 어린이·성인 모두 199DKK(3만5000원). 0~2세 유아는 무료다. 티켓은 홈페이지(www.LEGOHouse.com)에서 예매하는 게 좋다. 현장에선 온라인에서 안 팔린 여유분만 판다.

 

덴마크는 유럽연합 가입국이지만 유로화는 쓰지 않고, 자국 통화인 덴마크 크로네(1DKK=약 175원)를 쓴다. 유로화를 받기는 하나 환율 따지면 크로네를 쓰는 게 유리하다.

 

빌룬(덴마크)=김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