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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전원주택 고수들이
맨홀 뚜껑 세는 이유

by조선일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땅속은 모른다

 

혼자 땅을 사서 집터를 장만하는 것은 건축과 토목에 웬만큼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아예 도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대부분 초심자들이 땅을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고, 살아가면서 그 대가를 치른다. 땅을 제대로 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집터로서의 땅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하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데 ‘사람’을 ‘땅’으로 바꾸면 집터로서의 땅을 보는 기준이 된다.

전원주택 고수들이 맨홀 뚜껑 세는 이

맨홀과 우수받이, 차도, 보도가 잘 정리된 전원주택단지. 땅을 보러가면 바닥에 깔린 이런 기반시설을 잘 살펴봐야 한다.

“고수는 땅바닥부터 훑어본다”

집터를 마련하면 건축 기초를 하기 전에 땅속 1m 깊이로 대략 5~6종류의 관이 묻힌다. 상수·하(오)수·우수·전기·통신·가스관이다. 개별적으로 조성한 택지는 가스관을 묻지 않고 LP가스통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화된 전원주택지는 공용 (LP)가스탱크를 묻어 도시가스와 같은 시스템으로 세대별 가스관을 땅속에 묻는다.

 

그래서 전원주택단지를 보러 가면 고수는 땅바닥을 훑어보고 하수는 하늘(전망)을 쳐다본다. 땅속 1m에 묻힌 기반시설이 살아가면서 편안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가장 기초적인 안전장치인데도 불구하고 이걸 물어보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땅값 타령만 한다. 땅값의 진정한 가치는 입지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반시설의 충실도에 달려 있다. 대부분 수요자들이 이걸 간과하니까 업자들은 이런데 돈을 쓰지 않는다.

전원주택 고수들이 맨홀 뚜껑 세는 이

기반시설이 잘 조성된 단지는 도로 위 맨홀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가장 쉽게 이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도로 위에 맨홀이 몇 개 있는지만 헤아려 보면 된다. 맨홀 뚜껑에는 매설된 관의 종류가 모두 표기돼 있어 종류별로 배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만 봐도 제대로 기반시설을 깔았는지 알 수 있다. 도로 개설 공사를 하기 전에 가장 먼저 가스관이 깔린다. 나중에 굴착공사를 하더라도 가스관을 건드리면 대형 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장 깊게 묻는다. 만약 가스관이 도로 오른쪽에 묻히면 전기선은 왼쪽으로 간다. 혹시 있을 수 있는 가스 누출시 전기선의 스파크로 불이 붙어 폭발할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통신선은 전기장에 의한 간섭효과를 막기 위해 전기선과 반대로 깔린다. 따라서 가스·통신선이 같은 라인으로, 전기선이 반대편에 깔리는 것이 정석이다. 그 중간으로 우수·상수·하수관이 깔린다.

 

유감스럽지만 이렇게 정석대로 기반시설이 잘 정비된 전원주택단지는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경사지에 조성되는 것이 대부분인 교외 전원주택단지는 우수·배수가 단지 안전에 매우 중요하지만, 30년 또는 60년 빈도 홍수시 강우량을 계산해서 배관을 매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공개발 사업으로 조성된 택지개발지구가 아니면 이렇게 땅속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 수요자들이 땅값을 매길 때는 주변 나대지 시세를 기준으로 비교하기 때문에 땅속에 투자한 돈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원주택 고수들이 맨홀 뚜껑 세는 이

설비배관 인입공사 및 맨홀이 한자리에 잘 정리된 모습.

“진정한 땅의 가치? 땅속 비용도 감안해야”

대부분 전원주택단지 개발업자들이 통상 3.3㎡(1평)당 15만~20만원선 공사비로 택지 조성을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공기업과 공동사업으로 대지조성 사업만 해왔던 필자의 경험으로는 정석대로 택지 기반시설 조성을 했을 때 적정 공사비는 평당 50만~60만원선이었다. 게다가 일반 전원주택단지는 도로 등 공용부지를 포함해 분양면적으로 공급하는 꼼수로 평당가를 물타기 한다.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한 택지는 공용부지를 제외한 전용 대지면적으로 공급한다. 당연히 공급단가가 조성원가보다 2배 가까이 올라간다. 기본적인 기반시설 공사비 차이까지 감안하면 평당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런 숫자의 장난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땅값을 매겨야 진정한 땅의 가치가 나온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제대로 된 땅이 만들어진다. 땅위에 선 건물은 그런 바탕 위에서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전원주택 고수들이 맨홀 뚜껑 세는 이

기초공사를 하기 전에 설비배관 인입공사를 먼저 하게 되는데, 집터로서의 땅은 이때부터 기능을 하게 된다.

도로에서 대지 내부로 인입된 관은 가능하면 바닥이 안정된 주차장 부지나 진입보도 쪽에 맨홀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이 좋다. 유지 관리 측면에서도 편리하고, 침하현상에 따른 하자도 방지할 수 있다. 도로 위에 맨홀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전원주택 단지를 살펴보면 대지 내부에도 맨홀이 거의 없다. 광역상하수도 공급이 되지 않는 지역은 도로에서 인입된 배관을 주택 기초에 매설된 관에 바로 연결하고 따로 유지 관리용 맨홀을 설치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필자가 늘 하는 말이지만, 싸고 좋은 땅은 있어도 싸고 괜찮은 땅은 없다. 제대로 집을 지으려면 땅값보다 기반시설 조성비가 곱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2000년이 넘은 로마의 유적지에서도 상하수도관이 제대로 남아 있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런 나라들이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눈에 보이는 데만 돈을 쓰는 나라는 절대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땅은 쓰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보물단지가 되기도 하고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