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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by조선일보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독재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시위로 촉발된 전쟁은 이제 누가 적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발 붙이고 살기도 두려운 땅이 된 시리아의 이야기다.

 

수시로 북한의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어쩌면 시리아는 그저 먼 나라 사정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씩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시리아의 참상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21세기 들어 최악의 전쟁으로 여겨지는 시리아 내전. 한 나라의 사정이 아닌 지구촌 전체의 아픔이자 숙제가 되고 있다.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터키의 한 해변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의 어린이 쿠르디. /AP 뉴시스

바닷가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밀려온 파도가 아이 얼굴을 적셨지만 그 앞에서 제복을 입은 남자는 뭔가를 적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진기자가 그 모습을 보고 굳어버렸다. ▶기사 더보기

 

지난 2015년, 바닷가에서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죽어 있는 어린아이의 사진이 세상에 나왔다. 장소는 터키 남서부의 한 휴양도시, 어린아이는 시리아 국적의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였다. 엎어진 쿠르디의 시신 가까운 곳에는 형(5)과 엄마(35)의 시신도 발견됐다. 쿠르디를 처음 발견했던 호텔 직원은 '아이가 마치 잠을 자듯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미처 감지 못한 아이의 눈을 감겨줬다'고 증언했다.

 

쿠르디 가족은 폭격을 피해 시리아에서 독일로 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안전장치 하나 없던 고무보트는 순식간에 뒤집혔고, 이들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이날 보트에 탄 시리아 난민 23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이 숨졌다.

넋이 나간 꼬마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알레포 폭격에서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조된 5세 꼬마 옴란. (작은 사진)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옴란의 최근 모습. /연합뉴스·SNS 캡처

구조대원이 먼지를 뒤집어쓴 사내 애를 앰뷸런스 주황색 의자에 앉혔다. 아이는 차 안이 신기한 듯 눈알을 굴렸지만 표정이 없다. 눈물도 안 흘렸다. 전문가에게 물었다. "아이가 왜 안 울죠?" 우울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는 도움을 청할 때 소리 내 웁니다. 울지 않는 건 아무리 울어도 도와주러 오는 손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더보기

 

해변에 엎어져 숨진 쿠르디 사진이 세계를 울린지 약 1년 후, 폭격 현장에서 '제2의 쿠르디'가 나왔다. 시리아 내전의 격전지 중 하나인 알레포에서였다. 흙먼지와 피로 범벅이 된 이 아이는 다섯살짜리 옴란 다크니시. 옴란은 시리아 정부군이 열기압 폭탄을 떨어뜨려 무너진 주택의 틈 사이에서 가까스로 구조됐다. 알레포미디어센터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 영상 속에는 구조된 옴란이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폭격 현장은 담기지 않았지만, 이 처참한 모습의 어린아이는 폭격 현장을 본 것 못지 않은 충격을 준다. 특히 넋이 나간 듯 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다섯살 꼬마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시리아 아이들의 선택은 단 두 가지 뿐…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이 영상이 일으킨 반향은 '쿠르디'가 준 것 못지 않게 컸다. 세계의 언론들은 알레포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옴란에게 '알레포 소년'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수단 출신의 한 작가는 '시리아 아이들의 두 가지 선택'이란 제목의 만평을 그려 트위터에 올렸다. (왼쪽 이미지) 한쪽에는 옴란의 그림이, 다른 쪽에는 쿠르디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각각의 아래에는 '만약 (시리아에) 남는다면'과 '만약 (시리아를) 떠난다면'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불행한 시리아 어린이들의 안타까운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옴란의 영상과 만평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는 알레포 지역 48시간 휴전으로 이어졌다.

 

한편, 옴란은 최근 건강해진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며 또 한번 화제가 됐다. 영상 속에서 옴란은 폭격의 충격이 모두 가신 듯 밝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을 안심하게 했다. 하지만 해당 언론사가 시리아 친정부 성향을 띄고 있으며, 정부가 옴란의 가족에게 가택연금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며 또다른 씁쓸함을 낳았다.

시리아 참상 알린 다섯살 꼬마 사진에 48시간 전격 休戰

제2의 쿠르디… 폭격 현장서 피와 먼지 범벅으로 구조된 소년에 네티즌 '울컥' 동영상 

"아가야, 안녕이라고 말해봐"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왼) 숨진 생후 9개월짜리 쌍둥이의 시신을 안고 절망하는 아빠의 모습. (오) 사린 가스 공격을 받고 치료 중인 어린이. /AP연합뉴스·AFP연합뉴스

지난 4월 초, 시리아 정부군은 민간인 마을에 사린 가스로 추정되는 화학무기를 살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린 가스는 청산 가스보다 독성이 500배 가량 높은 신경계 마비 물질로,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몸으로 흡수되면 수분 내에 사망할 수 있다. 시리아 정부군은 4년 전에도 사린 가스를 살포해 280여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적이 있다. 

 

이 화학무기 공격으로는 주민 100여 명이 사망(어린이 30여 명 포함)하고 400여 명이 다쳤다. 특히 남성들이 일터로 간 이른 아침에 가스가 살포된 탓에, 어린이와 여성들이 많이 희생됐다. 구호단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 여성은 히잡을 벗어 아이의 코와 입을 막다가 그대로 함께 숨졌으며 기저귀를 찬 채 죽어간 아기들도 숱했다. 아이들은 온몸을 심하게 떨거나 뒤틀다가 흐릿한 눈빛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기사 더보기

 

한 20대 아빠가 두 아이를 양팔에 안고 있는 사진도 소셜미디어를 휩쓸었다. 사진 속 아빠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아기들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눈을 감고 있다. 이날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이 아기들은 생후 9개월 된 쌍둥이였다. 사진은 아빠가 아기들의 시신을 안고 공동 묘지에 묻으러 가는 중에 찍힌 것으로 알려졌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아빠인 유세프 씨는 이날 쌍둥이 자녀를 비롯해 부모와 형제, 아내 등 20여 명의 가족과 친척을 잃었다. 그는 쌍둥이를 보내면서 "아이들은 이제 신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시리아에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아기들 사진 보고 공습 결정한 트럼프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사진: CNN이 공개한 화학무기 공격 당시의 영상. /동영상 캡처

CNN은 화학무기 살포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담은 영상을 편집 없이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영상 속에는 수십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입에 거품을 문 채 나뒹구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CNN은 이 영상을 공개하며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순간이다. 여러분이 증인이 돼 달라"고 호소했다. ▶기사 더보기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학무기 공격 60여시간 만에 시리아 공군 기지 공습을 결정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쌍둥이 아빠'의 사진을 비롯해 처참한 마을의 모습을 본 뒤 충격을 받고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어린이와 아기들을 화학무기로 살해한 것은 수많은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진 찍을 땐 살아 있었지만, 끝내 호흡이 끊겼다"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영양실조로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시리아의 생후 1개월 아기. /연합뉴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아기의 사진. 최근 외신에서 보도된 앙상한 시리아 아기의 모습에 세계인이 절규했다.

 

태어난 지 한 달 된 이 여자 아기는 몸무게가 채 2kg이 되지 않고, 눈은 푹 꺼졌으며 반투명한 피부 사이로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아기가 찍힌 곳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동쪽 외곽인 '구타(Ghouta)' 지역. 사실 이곳은 시리아·러시아·이란·터키가 협의한 안전지대 중 하나다. 하지만 아사드 대통령이 이곳에 국제사회 원조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막았고, 이 때문에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다.

 

사진 속 아기의 엄마도 심한 영양 결핍으로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없었으며, 분유를 살 돈도 없었다고 알려졌다. 아기는 사진이 찍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이러한 비극은 한 아이의 일만이 아닌 구타 지역 전체의 일상이 되었다. 이 아기가 죽기 바로 전날에도 또 다른 아이가 영양실조로 숨졌으며, 최근 검사를 받은 어린이 9700명 중 절반 가량이 극심한 영양실조 혹은 영양 결핍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영양실조로 사망한 생후 1개월 아기의 처참한 사진 '충격'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전쟁 피해 지역의 어린이들이 심리 치료 시간에 그린 그림들.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 비행기에서 미사일이 떨어지는 장면 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유니세프 블로그

원인도 모른채, 수시로 떨어지는 폭탄을 피하며 살아야 하는 시리아 어린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지난 6년간의 내전으로 희생된 시리아 어린이는 모두 1만7400여 명에 달한다. 한 해 평균 3000명에 달하는 어린이가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 가는 셈이다. 살아있는 어린이들의 삶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에만 900명에 가까운 어린이가 소년병으로 끌려가 총을 들거나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됐다. 시리아 전체 가구의 75%는 생계 유지를 위해 어린이들을 일터로 보낸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나이의 어린이들은 폐허가 된 거리로 나가 껌을 팔거나 청소부, 목수 등으로 일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건 정신적인 트라우마다. 공습과 죽음이 일상이 된 시리아의 아이들은 매일 공포와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고 유니세프는 밝혔다. 특히 태어나서 줄곧 전쟁을 경험한 5세 미만 아이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유니세프 대변인은 "5세 미만 아이들은 오로지 전쟁밖에 알지 못한다"며 "이들의 눈에서 상실감과 공포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전쟁 6년째… 어린이 1만7400명 목숨 잃고, 생계노동 내몰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시리아의 안네 프랑크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시리아의 안네 프랑크'라는 별명을 얻은 7세 소녀 바나 알라베드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아사드와 푸틴은 폭격을 멈춰달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트위터

나치 치하 독일에 안네 프랑크가 있었다면, 아사드 독재 정권의 시리아에는 바나 알라베드(7세)가 있었다. 알라베드는 지난해 9월 '평화를 원해요'라는 제목의 첫 글을 시작으로, 트위터를 통해 시리아 내전 상황을 생생하게 알려 주목받은 소녀다. 그는 영어 교사인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폭격으로 우리집이 사라졌다' 등과 같은 트위터 글을 남겼다.

 

지난해 말 "군인들이 우리 가족을 곧 붙잡을 것 같다. 사랑하는 세계여, 우리는 다시 만날거에요. 안녕"이라는 글을 남긴 채 계정을 삭제해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는데, 이후 가족이 함께 터키로 탈출한 것이 전해졌다. CNN은 알라베드를 '2016년 올해의 여성' 9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최근 알라베드는 자신의 난민 생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현존하는 최악의 전쟁터에 사는 아이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연합뉴스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해 시작됐던 시리아의 반정부시위는 어느새 현존하는 최악의 내전으로 번졌다. 고대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던 땅은 처참한 폐허가 됐고, 절반이 넘는 국민들은 갈 곳 없는 떠돌이가 되었으며, 지옥이 된 고국을 떠나기 위해 목숨을 건다. '민간인 피해는 최소화한다'는 전쟁의 도덕적 마지노선이 깨진지도 오래다. 특히 전쟁이 뭔지, 폭탄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그 폭탄이 내려앉은 곳에서 미래마저 빼앗기고 있다. 그럼에도 이 참사의 원흉,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아이들이 희생 당하고 있는데 잠이 오나'라는 질문에 "나는 잘 자고, 운동하며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대규모 유혈사태와 화학무기 살포에 대해서도 '나는 모른다'며 발뺌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은 여러 나라들과 여러가지 이유가 뒤섞여 갈수록 복잡한 양상을 띄어 간다. 우리나라보다 약간 더 큰 시리아 땅은 정부군과 반군, IS, 쿠르드족이 각각 나누어 점령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있다.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다.

 

[구성 및 제작=뉴스큐레이션팀 정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