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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동료 의사가 말하는 이국종과 중증외상센터

자기 희생해 사람 살리는 의사를 대한민국 제도는 죄인으로 내몬다

by조선일보

1억원 들여서 환자 살려놓으면 정부는 의사에 5000만원만 줘

많이 살려낼수록 적자 더 커져

평균 의료수준은 세계 1위지만 매년 3만명 중증외상으로 사망

수없이 문제 말했지만 허사였다


자기 희생해 사람 살리는 의사를 대한

배기수 아주대 의대 교수

이국종은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헌신을 한다. 그는 자기 인생을 중증 외상 환자 살리는 데 헌납했다. 아버지 노릇은 부실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처자식에게 환영받는 가장은 못 되었을 것이다. 이국종의 인생 사면은 고독 고(孤)자로 둘러싸여 있다. 3평짜리 연구실이 그의 인생 9할을 점하는 생활 터전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 일에만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일로써도 보상은 따르지 않는다. 헬기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심지어 헬기에서 직접 줄을 타고 접근이 어려운 환자에게 내려가 구해내기도 한다. 또 병원에서도 넘치는 환자로 쉬지 못하고 고생할 뿐만 아니라 자리가 없어 돌려보낸 환자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센터를 유치할 때 300병상 규모로 하자고 관철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재 100병상으로도 연 10억원 이상 적자가 나서 병원 당국에는 재정적으로 '병원을 해하는 인물 1위'로 찍혀 있다. 자신을 희생하며 사람 살려낸 의사를 대한민국 제도는 죄인으로 내몬다. 많이 살려낼수록 적자는 더 커진다.

 

한 해 국민 3만명이 죽는 중증 외상! 우리나라 '예방 가능 외상 사망률'(조기에 치료하면 죽지 않았을 사람 비율)은 35%로 선진국 6~9%보다 높지만, 한때는 실질적으로 70%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한다. 대한민국 의료의 평균 수준은 현재 세계 1위다. 치료 가격이나 속도를 따지자면 선진국보다 더욱 월등하다. 선진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모두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중증 외상을 당해 병원을 찾았을 때는 그 상황이 전혀 달라 거의 원시 의료를 맞게 된다. 아마존 밀림에서 야자나무에 올랐다 떨어져 죽나 국내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 죽나 그 확률은 별반 차이가 없다. 사고 현장 근처 1차 의료 기관에 들렸다가 2차, 3차 기관으로 이송되는 동안 몸속 피가 다 빠져나와 소생 불능해진다. 심지어 3차 기관을 직접 찾았을 경우라도 외상학 전문의가 없어서 손상된 여러 장기에 대한 치료 우선순위가 잡히지 않아 치료에 실패하게 된다. 

 

자기 희생해 사람 살리는 의사를 대한

이국종 교수

국내 초대형 대학 병원들은 외상센터를 두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적자가 나는 일은 하지 않을 만큼 현명하다. 병원이 희생해도 정부나 국민이 고마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회피해도 딱히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중증 외상 환자는 일단 살아나면 완전 회복 가능성이 크다. 환자 대다수가 왕성하게 산업 현장을 누비는 젊은 인력인 데다가 4~6인 가정의 가장임을 생각할 때 이들을 살리는 것은 우리나라 산업 역군을 지켜내고 그 가족을 살피는 국가 미래를 위한 위대한 과업이다. 정부는 치료비 1억원 들여 사람 살린 의사에게 5000만원만 주어 손해를 보게 해 외상 진료 발전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살아난 사람의 가치가 삭감 진료액의 수십 배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 자신도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을 때 어처구니없이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응급 의료 시스템과 중증 외상 환자 진료 시스템은 별개다. 몇 년 전 장 중첩증으로 대구 시내 병원을 전전하다가 아이가 사망한 적이 있다. 신문·방송에 이 사건이 크게 실리고 정부는 관련 병원들에 징계를 내렸다. 이처럼 잘 갖춰진 응급 의료는 1명만 사고가 나도 나라가 들썩하지만, 매년 3만여명이 죽는 중증 외상이라는 병에 대해서는 아직도 국민 이해가 부족해 소리 소문 없이 국민 생명은 산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가 정책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그간 이국종을 도와 중증 외상으로 죽는 사람의 규모와 빠른 환자 이송 및 외상센터 설립이 시급하다는 설명을 수도 없이 해왔다. 이들은 얼핏 이해하는 듯하지만 아니다. 그동안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 규모나 순서가 지역 인구, 산업체 수, 사고 발생률 등과 관계없이 정치 논리로 이루어졌다.

 

이국종은 이제 심신이 다 지쳤다. 어떤 때에는 '헬기서 줄 타고 내려가다가 사고로 떨어져 죽었으면 차라리 후련하겠다'며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극심한 피로와 우울을 겪는 그에게 남은 욕심이란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내자는 것이다. 온갖 배신 속에서도 국민을 보호하고자 열악한 전쟁을 마다하지 않으신 이순신 장군의 심경 일부를 그에게서 읽을 수 있다. 귀순 북한군 병사가 이국종에게 이 세상에 한 번 더 호소할 기회를 주었다. 국민의 생명과 가정을 지켜내는 중증 외상 진료가 더 이상 죄악이 되면 안 된다는 그의 절규를 듣고, 무엇이 급하고 소중한지를 분별해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배기수 아주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