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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디테일추적

트럼프, 박근혜, 유아인…맘대로 '정신 분석'해도 되는 걸까?

by조선일보

트럼프, 박근혜, 유아인…맘대로 '정

트럼프 정신 분석과 유아인 정신 분석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연합뉴스·조선일보DB

지난 24일 밤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일부 여성 네티즌과 ‘페미니스트’ 논쟁을 벌이고 있는 배우 유아인. 


그런 유씨에게 한 정신과 전문의가 “‘경조증’ 질환이 의심된다”고 지적하면서, 이번에는 불똥이 ‘의료 윤리’ 논쟁으로 번졌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현철(대구 ‘공감과 성장’ 원장)씨는 지난 26일부터 유씨 글에서 돋보이는 심리적 특징들을 분석해 트위터로 공개했다. 김씨는 유씨에게 “사고 비약 및 과대 사고 같은 보상 기전”이 보인다며, ‘경조증(지나치게 들뜨는 기분 장애)’을 앓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트럼프, 박근혜, 유아인…맘대로 '정

인터넷 캡쳐

김씨는 “후폭풍과 유사한 ‘우울증’이 더 위험하다” “이론상 내년 2월이 위험하다” “아 불길하다” “소속사 측에서는 얼른 조치를 취하시기 바란다” “ㅇㅇㅇ(유아인을 의미)님 지금 거의 일주일째 잠 거의 안 주무신 것 같은데” 같은 경고성 글을 연달아 올렸다. 졸지에 ‘경조증’은 30일 내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트럼프, 박근혜, 유아인…맘대로 '정

인터넷 캡쳐

유씨는 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신과 의사들이 독재 세력과 결탁해 부정한 목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검열, 반대 세력을 강제 수용하고 숙청하며 인권을 유린한 오만과 광기의 폐단이 근현대사에서 어떠한 폭력으로 펼쳐졌는지 상기 바란다”며 ‘인격살인’에 동조하지 말아달라고 언론에 호소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도 김현철 전문의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다. 김씨는 결국 해당 트윗글들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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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의사는 공적 인물의 건강 정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해도 괜찮은 걸까. 말할 수 있다면, 그 수위는 ‘어느 선’까지여야 옳은 걸까. <디테일추적>은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원에서 ‘의료윤리학’을 전공하며 과학전문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치과의사 김준혁씨와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해봤다. 

트럼프, 박근혜, 유아인…맘대로 '정

양상은 모두 다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배우 유아인은 최근 공개적인 '정신 분석 대상'이 됐다. /조선일보DB

-이번엔 유아인씨가 공개적으로 ‘강제 정신 분석’을 당했습니다. ‘공인’의 ‘머릿 속’ ‘정신 상태’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건 유아인씨가 처음은 아니죠. 작년 하반기만 해도 한국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정신과 의사·심리학자·미디어의 ‘인기 분석 대상’이었어요.


“20세기 초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환자 본인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을 분석가·상담가가 밝힐 수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이후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대상자’보다 그의 생각을 더 잘 밝힐 수 있다는 의견이 자리잡게 됐죠. 여기에 우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신적 인과론’까지 겹쳐지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정신 건강’이 어떤 사건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사건 주인공의 심리적 원인을 따지는 데 온통 집중합니다. 행위자의 ‘무의식’ ‘정신 질환’을 밝혀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 ‘정신 세계’가 절대적 원인이 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수학자 존 내쉬는 조현병 환자로 환청·환시를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파괴적 행동이 오로지 ‘조현병’ 때문 만은 아닙니다. 고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황, 평소 그의 성격 등 복합적인 요소가 원인으로 작용했겠죠.”


-앗, <디테일추적> 역시 ‘갑질 폭행 CEO’나 ‘음주 난동 재벌 3세’ 같은 사건이 터지면,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분들께 자주 자문을 구해왔…(말 흐림).


“저는 언론이 ‘CEO 당사자의 정신 질환’에 집중해서 묻는 것보다, ‘그런 갑질을 허용하는 사회적 구조·담론’을 지적하는 게 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진단을 받을 건지는 ‘개인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진단을 원하지 않는 환자를 강제로 진단하는 것도, 그의 질환 상태를 밝히는 것도 기본적으로 옳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존재해요. 개인의 질환이 ‘타인에게 심각한 위해를 입힐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입니다. 최근 일부 미국 정신과 의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 상태에 대해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시작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보이고 있는 자기애·망상적 태도가 미국 국민과 세계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이른바 ‘골드워터 규칙’ 반대론이 나오기 시작했다는데요.


“지난 4월 상담 전문가 존 가트너는 여러 정신과의사·임상심리학자들과 함께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위험한 정신 질환에 대해 대중에게 경고할 윤리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들 중 누구도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적은 없었죠. 미국 정신 분석학회(ApsaA)도 ‘미국 정신과 학회(APA)의 윤리 원칙’인 골드워터 규칙을 무시하고 트럼프의 정신 건강을 발표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의 정신 건강에 관해 밝히는 ‘경고의 의무(Duty to Warn)’라는 전문가 집단도 등장했어요. 골드워터 규칙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디테일추적> 독자분들을 위해, 우선 ‘골드워터 규칙’이 뭔지 설명해주세요.


“골드워터 규칙은, 미국 정신과 학회(APA) 의료 윤리 원칙 7절의 ‘별명’이에요. ‘정신과 의사가 직접 진단하지 않은 공인에 관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밝히는 것, 그리고 동의를 받지 않은 개인의 정신 건강에 관해 공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규정한 조항입니다. 

 

여기서 골드워터는 1964년 미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의미해요. 그해 잡지 ‘팩트’는 ‘보수의 무의식: 배리 골드워터의 정신에 관한 특집호’에서 정신과 의사 1000여명의 설문 조사를 실시했어요. 이 기사에선 ‘골드워터 후보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골드워터는 선거에서 졌고, 팩트 편집장을 고소해 7만5000달러(현재 가치로 6억원)를 배상받았어요. 하지만, 결과를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미국 정신과 학회는 골드워터 사건에서 전문의가 견해를 밝힌 건 비윤리적 행위라고 지적하고, 1973년 제정한 의료 윤리 원칙에 이 조항을 포함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공인, 특히 정치인의 정신 질환과 관련한 언급을 공적 자리에서 정신과 의사 또는 심리학자가 밝히면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됐어요.”


-그렇다면 골드워터 규칙이 아닌, ‘경고의 의무’를 주장하는 의사들의 논리는 뭔가요?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타티아나 타라소프라는 대학생이 살해당하면서 이른바 ‘타라소프 규칙’이 나왔습니다. 살인범이 범행에 앞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며 ‘타라소프를 죽이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의사는 ‘의료비밀 보호의 의무’를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어요. 결국 살인 사건이 벌어졌고, 피해자 부모가 의사 측에 소송을 냈어요. 법원은 제3자에게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그 위험을 알려주거나 상응하는 보호 조치를 해야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게 바로 ‘경고의 의무’ 논리이지요.”


-잠시 잊고 있던 ‘유아인씨 얘기’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유씨에게 ‘경조증’ 가능성을 지적한 의사는 ‘경고의 의무’를 실천했다고 보시나요.


“유아인씨 사건 역시 ‘공인의 정신 건강에 관해 공적 견해 표명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견 충돌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 사건에선 면담하지도, 동의한 적도 없는 인물의 정신 건강 소견을 내는 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뚜렷한 가치가 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김현철 전문의는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견해 표명을 정당화 했습니다만, 누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유씨 SNS 글을 보는 시민을 보호하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배우 유아인 본인을 보호하려는 것일까요. 전자라면 유씨 주장처럼 ‘과도한 검열의 폭력’일 것이고, 후자라면 ‘무리한 참견’ 아닐까요. 그는 의사의 전문가적 견지가 한 개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국내에선 공인의 정신 질환 가능성 언급에 대해 어떤 의견이 우세한 상황인가요.


“아직까지 한국에선 이 주제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상담전문가 윤리 강령’을 봐도 관련 조항을 찾아볼 수 없어요.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신 건강에 대한 정신·심리 전문가의 발언에 대한 윤리적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게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유아인씨 사건과 관련해선, 30일 ‘정신과 봉직의협회’가 유감을 표명하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조치를 촉구했습니다. 유아인씨 사건을 계기로 구체적인 윤리 조항과 사회적 합의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