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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전쟁터 된 임신부 배려석

by조선일보

"임신부 아닌 사람 못 앉게하라" "양보 강요하는 게 어딨나"

지난달 평소보다 30배 쏟아져

민원 전쟁터 된 임신부 배려석

지난달 대전도시철도공사가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에 비치한 곰 인형. '임신부를 위해 앉지 말고 비워두라'는 의미다. /대전도시철도공사

지난달 서울교통공사에 임신부 배려석 관련 전화·문자 민원이 5767건 접수됐다. 올해 1~10월 월평균 접수 건수(183건)의 30배가 넘는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받아 민원이 발생한 열차 기관사에게 무전으로 알려준다. 한 기관사는 "어떤 때는 1분에 몇 통씩 오는 바람에 운전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임신부 배려석 관련 전화·문자 민원은 2014년 101건, 2015년 830건, 2016년 1394건, 2017년 10월까지 1829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임신부 배려석은 서울 지하철 1~8호선 객차 한 칸에 두 자리씩 있다. 예전에 임신부는 노약자·어린이 자리와 함께 있었다. 초기 임신부가 주위 눈치 때문에 이 자리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2013년 노약자석과 따로 임신부 배려석을 만들었다. 출산율을 높여보자는 목적이 있었다. 기관사가 수시로 객차에 '임신부 배려석을 항상 비워 두자'는 안내 방송을 한다. 이를 따르지 않아도 제재하는 건 아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8일까지 임신부 32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6명만이 임신부 자리 등을 배려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접수된 민원들은 주로 "임신부 배려석에 남성이나 임신부 아닌 여성이 앉아 있다" "배려석을 비워 두라는 안내 방송을 더 해달라"는 것이다. 지난달에 민원이 쏟아진 것은 여성들이 움직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초 여성 이용자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서울교통공사 콜센터 번호와 함께 '민원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자'고 올라온 글이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임신부 사이에선 "우리를 위해 마련된 자리인데도 여전히 남성들이 태연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비켜 달라고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다. 일부 여성은 임신부임을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가방 등에 단다. 일부 자치단체들이 '임신부 먼저'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를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기관사에 따라 안내 방송을 더 하거나 이미 예정된 방송 시간을 조금 앞당기는 식으로 대응한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민원도 같이 늘고 있다. "임신부가 왔을 때 비켜주면 되지 않느냐" "양보를 강요하지 마라. 안내 방송을 하지 마라" "기존 노약자석으로 충분하니 임신부 배려석을 아예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이어진다.

 

최근엔 임신부 배려석과 관련된 문구에 대한 민원도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배려석에 쓴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라는 글이 임신부가 아닌 태아를 강조해 임신부를 낮춰 보는 것이므로 고쳐 달라는 민원이 요즘 부쩍 늘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안전 운행이 최우선인 상황에서 이러한 민원에 일일이 대응하기 쉽지 않다"며 "규제나 단속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김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