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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롯데 1심 판결

10년 구형→집유, 벌금 3000억→35억… 검찰의 무리수였나

by조선일보

검찰, 넉달간 400여명 뒤지고도… 1심서 9명 중 7명 무죄·집유

신동빈 혐의 6건 중 4건 무죄… 서미경씨 모녀에게 특혜 준 매점 운영권과 공짜 월급은 유죄

檢, 원래 타깃인 비자금 안나오자 증여세 700억 포탈 내세웠지만 이 혐의도 법원서 무죄 판결

신동빈, 국정농단 연루 재판 남아


법원이 22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검찰이 적용한 범죄 혐의의 기본 전제가 맞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검찰은 "신 회장이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범행의 주도적 역할을 했고, 실질적인 최대 수혜자"라며 징역 10년을 구형(求刑)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범행 대부분이 신 회장이 롯데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전인 '신격호 시대'에 발생했고, 신 회장이 얻은 직접적·경제적 이익이 없다"고 했다.

10년 구형→집유, 벌금 3000억→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신격호(왼쪽)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오른쪽) 롯데그룹 회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각각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법원은 신 회장의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신 총괄회장에겐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이 선고됐으나 건강상 이유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김지호 기자

신 회장은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신 회장의 6가지 혐의 중 2가지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 신 회장이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격호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서미경씨 모녀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 특혜를 줘 회사에 778억원 피해를 주고, 서씨의 딸에게 공짜 급여를 준 혐의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해 금액이 778억원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고, 2가지 혐의 모두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에 의해 범행이 시작됐다"며 "(실형을 선고해) 신 회장을 경영에서 격리시키는 것보다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해 "그룹 창업자이자 총수로서 범행을 결심하고 전 과정을 장악했다"면서 징역 4년에 벌금 35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도 6가지 혐의 중 2가지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수사의 최대 성과'라고 했던 신 총괄회장의 증여세 700억원 포탈 혐의는 무죄가 나왔다. 신 총괄회장은 신영자 이사장과 서미경씨에게 일본 롯데홀딩스 차명주식을 넘겨주면서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 이사장의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됐고, 서씨는 실질적으로 일본에 거주해 세법상 국내 거주민이 아니어서 무죄"라고 했다.

10년 구형→집유, 벌금 3000억→

사건의 핵심인 신동빈 회장, 신격호 총괄회장의 혐의가 절반 넘게 무죄가 나오면서 다른 피고인들에겐 줄줄이 집행유예 또는 무죄가 선고됐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초라한 재판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지난해 6월 10일 검사와 수사관 240여명을 동원해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과 신동빈 회장 거주지, 롯데그룹 정책본부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사 20명으로 대규모 수사팀도 꾸렸다. 검찰은 "롯데 총수 일가의 3000억원대 횡령·배임, 비자금 조성 혐의가 수사 대상"이라며 "내사(內査)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수사를 끝낼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수사 초반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10년 구형→집유, 벌금 3000억→

그러나 4개월여 수사 기간 동안 10여 차례 압수수색이 반복되고 롯데 임직원 400여명이 소환됐지만 비자금은 나오지 않았다. 작년 8월 '롯데 2인자'로 불린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에 비자금은 없다'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검찰이 청구한 신동빈 회장의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작년 10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계 5위 대기업 수사를 4개월 만에 마쳤다"며 "심각한 수준의 기업 사유화·사금고화 폐해를 확인했다"고 했다. 검찰이 밝힌 성과는 비자금이 아닌 신 총괄회장의 증여세 포탈 혐의였다. "비자금 수사가 난관에 부딪히자 탈세 수사로 방향을 틀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증여세 포탈 혐의도 무죄가 나왔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징역 10년을 구형했는데 집행유예가 나왔다면 수사가 부실했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고 했다.

 

신 회장은 집행유예 선고로 일단 큰 위기는 피했지만 국정 농단 사건 연루 혐의가 남아 있다. 신 회장은 이 사건과 별도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에 70억원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 이 사건에서 신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박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