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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학생 등골 그만 빼먹어라"
vs. "기숙사 생기면 원룸 폭망"

by조선일보

지난 12월 초 한양대 재학생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한양대 기숙사(제7생활관) 신축 계획안이 통과된 것. 이에 따라 한양대는 2022년까지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국내학생용 기숙사를 지을 계획이다. 2002년 이미 허가받은 외국인학생용 기숙사(제6생활관)도 함께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학생 등골 그만 빼먹어라" vs.

한양대 기숙사 신축계획안. /연합뉴스

한양대가 2015년 기숙사 신축을 추진한 지 2년여만에 첫번째 산을 넘은 것이다. 학교측은 기숙사가 계획대로 지어지면 1200여명을 추가 수용할 수 있어 월세난에 지친 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학생 등골 그만 빼먹어라" vs.

한양대 총학생회는 기숙사 신축안이 통과되자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양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하지만 기숙사가 예정대로 지어질 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양대 인근 원룸 임대업자들이 ‘기숙사 건립 반대 대책위원회’를 통해 격렬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이들은 ‘생존권 보장’을 주장한다. 한양대 주변에는 대부분 70~80대 노인들이 사는데 월세 수입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다. 왕십리의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기숙사가 생기면 원룸 수요가 줄어들까봐 어르신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앞으로 교통·환경영향평가 등 남은 인허가 과정에서 제동을 걸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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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는 일부 원룸 사업자들이 돌린 호소문.

땅집고는 한양대뿐만 아니라 서울·수도권 주요 대학가에서 최근 기숙사 신축을 둘러싼 주변 원룸 임대업자들과의 갈등 사태를 심층 취재했다.

학생들 “원룸 업자들 이기주의 아니냐”

“대학생이 봉입니까. 원룸 월세 부담이 너무 큽니다.”

 

기숙사 신축 계획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한양대 재학생 김모(21)씨는 “우리 학교는 기숙사 들어가기 너무 어렵다”면서 “내가 입주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공사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 한양대는 기숙사 수용률은 평균 이하다. ‘2017년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소재 대학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평균 16.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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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주요 사립대학 기숙사 수용률. /그래픽=이지은 인턴기자

하지만 한양대 기숙사 수용률은 12.5%에 그친다. 올해 신입생 거주를 위한 제 5생활관(행복기숙사)를 오픈했지만 여전히 평균 이하다. 한양대 재학생들은 “우리도 주거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며 “공식 수입원이 없는 대학생이 보증금 1000만원에 50만원을 웃도는 월세를 감당하기란 무리”라고 주장한다.

 

한양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신축 기숙사비는 2인실 기준 18만~26만원이다. 한양대 인근 원룸 월세(50만원 안팎)와 비교하면 반값에 불과하다.

 

한양대 재학생 A씨(20)는 “솔직히 곰팡이 생기고 바퀴벌레 나오는 환경에 가격은 기숙사보다 훨씬 비싼 원룸에 살고 싶지 않다”며 “기숙사 신축 반대는 아직 취업도 못한 학생들 상대로 돈을 벌겠다는 어른들의 이기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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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표류하는 기숙사 신축을 촉구하는 고려대 학생들. /고려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기숙사 신축을 둘러싼 갈등은 한양대 뿐만이 아니다. 고려대는 4년 넘게 주민 반대에 부닥쳐 기숙사 신축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고려대는 기숙사 수용률이 10.3%에 불과해 학생들 불만이 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3년 1100명 수용 규모 기숙사 신축을 발표했지만 주민 항의로 무기한 연기됐다. 총신대는 기숙사 신축 허가는 받았지만 주민들 반대로 사업이 멈춘 상태다. 동덕여대는 갈등 끝에 기숙사 신축 계획을 보류했다.

기숙사 때문에 원룸 장사 망하나?

그렇다면 원룸 임대사업자들 주장대로 기숙사가 생기면 주변 원룸촌은 망하게 되는 걸까. 실제로 갈등 끝에 기숙사를 지은 대학 사례들을 보면, 기숙사 신축 후에도 원룸촌은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학생 등골 그만 빼먹어라" vs.

작년 문을 연 이화여대 신축 기숙사 '이하우스'. /이화여대 제공

이화여대의 경우 기숙사 신축 과정에서 주변 하숙·원룸업자들과 소송까지 치른 끝에 지난해 2344명 규모 신축 기숙사 ‘이하우스(E-House)’를 완공했다. 이화여대 기숙사 수용률은 작년 11.3%에서 올해 22%로 상승해 서울 소재 사립대 중 1위로 올라섰다.

 

기숙사 신축 이후에도 이화여대 인근 원룸과 오피스텔 수요는 꾸준하다. 대현동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이대 기숙사가 지어질 때 임대사업자나 주변 공인중개사들이 생계를 걱정했었다”면서 “하지만 통금·벌점 같은 규제 때문에 기숙사 입주를 싫어하는 학생이 많아 원룸이나 오피스텔 수요는 크게 줄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이화여대 기숙사 입사 경쟁률은 약 1.3대 1로 높지 않다. 단체 생활보다 자유로운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원룸을 선호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원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대학가 원룸은 교통이 편리하고 기반 시설이 좋아 사회 초년생이나 독신 직장인 선호도 역시 높다. 기숙사 신축 이후 이대 근처에 이대프리젠·더가온 등 오피스텔이 잇따라 들어서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한양대 기숙사가 들어서는 왕십리 일대도 광화문 업무지구와 가깝고 강남보다 월세가 저렴해 직장인 수요가 꾸준하다”며 “일시적인 피해는 있겠지만 대학생 수요를 기숙사에 일부 뺏겼다고 생계 회복이 불가할 정도로 직격탄을 맞았다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 했다.

"학생 등골 그만 빼먹어라" vs.

서울 주요 대학가 평균 기숙사비 및 원룸 월세 비교./ 그래픽=이지은 인턴기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사회적 약자인 대학생 주거 생활을 위한 기숙사 건립이 임대업자들의 사업권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학교 주변 원룸은 환경이 정말 열악한데 학생들이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월세를 내고 산다”면서 “기숙사 반대가 동네를 위한 일이라지만 기성세대가 학생들 등골에 빨대를 꼽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왕십리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원룸 주인들이 기숙사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살고 싶은 원룸을 제공하기 위해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월세를 하향 조정하는 것이 시장 원리에 맞다”고 했다.

 

이지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