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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치킨집, 그 속으로 들어가다

은퇴자 로망은 치킨집?
'뜨거운 닭 맛'을 보다

by조선일보

대한민국은 치킨공화국

은퇴 앞둔 중장년층 치킨 장사에 뛰어들어

국내 치킨 전문점 3만6000여 곳 이르러


치킨집의 하루

오후 2시 영업 시작 오후 5시 30분 지나자

주문 밀려들어와 약 10시간 동안 운영


치킨의 뜨거운 맛

하루에 11곳 문 열고 8곳은 폐업하는 꼴

전체 30%는 월수익 300만원도 못 벌어


"은퇴하면 치킨집이나 해 볼까." '치킨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은퇴를 앞둔 중년들이 습관적으로 뱉는 말이다. '별 기술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란 인식이 배어 있다. 너도나도 치킨 장사에 뛰어든다. 그 결과 2013년 현재 치킨 전문점은 3만6000여 곳(KB금융지주 조사). 맥도널드 전 세계 매장 수(3만5429곳)보다도 많다.

 

은퇴자의 로망이라는 치킨집은 말처럼 간단한 걸까. 현실을 보기 위해 지난달 15~21일 일주일간 서울 마포구 '치킨플러스' 성산점에서 직접 닭을 튀기며 '뜨거운 닭 맛'을 봤다. 테이블 40석이 있는 중상 규모의 매장이었다.

 

"야, 여기 다리 하나 없다!" 튀겨낸 치킨을 간장 양념에 버무리던 김순복(49) 점장이 소리쳤다. 최악의 사고가 터졌다. '닭다리 실종 사건'이다. "가끔 한 조각이 실수로 빠질 때가 있어요. 다른 부위는 몰라도 다리나 날개는 절대 빠지면 안 돼요. 손님 항의가 엄청나요." 결국 빠진 닭다리는 찾지 못했고, 한 마리를 새로 튀겨 배달 내보냈다. 주방은 전쟁터였다. 뜨거운 기름을 앞에 두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은퇴자 로망은 치킨집? '뜨거운 닭

①튀김옷을 만들어 닭에 묻히는 과정. ②포장에서 닭다리가 빠지는 건 치킨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 닭다리가 무사한지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에야 박스에 담는다. ③박스에 담긴 치킨. 땀의 결실이다. / 성형주 기자

치킨집 하루는 오후 2시에 시작한다. 오후 3시부턴 그날 장사 준비를 한다. 본사에서 배달된 닭을 뜯어 1인분씩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를 채운다. "1인분씩 포장돼 오지만 일일이 손봐야 해요." 평일은 오후 5시가 될 때까지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직원들은 오후 4시 30분쯤 저녁을 미리 먹는다. 유강호(35) 대표 어머니가 준비해온 밥과 반찬이 차려졌다. "치킨이 남아 뒹굴어도 아무도 손도 안 대요." 물릴 만도 했다. 치킨집 주방에서 일하면 손과 팔에 화상 자국투성이라는데 직원들한테는 상처가 거의 없었다. 긴소매 옷을 입고 위생 장갑까지 끼기 때문에 기름이 생각만큼 많이 튀진 않는다고 했다.

 

"순살 반반요." 오후 4시 53분, 전화와 홀을 담당하는 김의영(33) 팀장이 전표를 주방에 건넸다. 순살 치킨 한 마리를 프라이드와 양념으로 반씩 해달라는 주문. 튀김가루를 물에 개 튀김옷을 만들어 닭에 묻혀 튀겨낸다. 물과 가루 양을 본사가 정해준 대로 맞추기만 하면 되지만 일일이 잴 시간이 없다. 적당한 점도를 기억해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 미리 만들어 둬서도 안 된다. "튀김옷이 뻘게져요. 한 마리 분량씩 만들어 무쳐야 해요." 물에 튀김가루를 붓고 거품기로 저었다. "그게 뭐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가루가 덩어리졌잖아. 이대로 튀기면 써서 맛이 없어. 튀김옷도 두껍고 느끼하다고."

 

은퇴자 로망은 치킨집? '뜨거운 닭

본지 김성윤 기자가 치킨을 양념에 버무리고 있다. / 성형주 기자

오후 5시 30분이 지나자 주문이 밀려들었다.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튀기려니 실수가 잦아졌다. 주문도 헷갈렸다. 프라이드와 양념치킨 외에도 강정치킨, 쉑쉑양꼬치킨, 토마토커리치킨, 개매운치킨 등 조금씩 다른 메뉴들을 모두 '반반'으로 주문할 수 있어 엄청나게 헷갈렸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김 점장이 짜증 냈다. 오후 7시 직전부터 다시 주문이 밀려왔다. 정신없이 닭을 튀겨냈다. 오후 9시쯤 주문이 다 나가고 잠깐 여유가 생겼다. "어휴, 다리 아파." 김 점장이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매장에는 직원이 넷 있다. 주방 담당 점장, 주문·홀 담당 팀장, 배달 직원 둘. 모두 매달 250만원씩 받는다. '배달'이 생명이다. 전체 매출 중 80% 정도가 배달이다. 배달 전담 직원을 두 명씩이나 둬도 주문이 몰릴 때는 부족했다. 이럴 때는 배달 대행업체를 쓰기도 하는데, 기본 3000원에 거리·구역별로 추가 요금이 붙어 주문 한 개당 4000원쯤 줘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이 매장에선 아르바이트생은 쓰지 않는다. "연락 없이 잠수 타는 건 예사죠. 최저임금이 올라서 '알바' 비용도 만만찮아요."

 

배달 사고도 가끔 났다. 60대 초반 남성이 배달 주문을 하고 갔다. 배달 직원이 '공원 아파트'라고만 써놓았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 아파트가 없었다. 사장이 직접 치킨을 들고 주변을 뛰다가 혹시나 싶어 놀이터 공원 옆 아파트를 찾아 1시간 만에 겨우 배달했다.

 

은퇴자 로망은 치킨집? '뜨거운 닭

대개 밤 11시 30분쯤 주문이 잦아들었다. 주방과 홀에서 마감을 시작했다. 주방에서는 튀김기에 담긴 기름을 정제기로 거르고, 다음 날 쓸 순살 치킨을 냉동고에서 꺼내 해동하고 설거지를 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문 닫기 직전까지 배달 주문이 들어왔다. 하루는 밤 11시 50분 바삭한 프라이드 한 마리, 11시 54분 바삭한 순살 치킨 한 마리 주문 전화가 왔다. 유 대표는 "오늘 매출이 100만원이 안 됐는데 겨우 채웠다"며 기뻐했다.

 

목요일 매상은 주문 53건에 매출 105만8600원. 치킨 70마리쯤에 피자·떡볶이·주류까지 합친 매출이다. 치킨은 종류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1만3900원. 닭과 튀김가루 등 원재료는 마리당 3500~4000원 주고 본사로부터 받는다. 이 매장 하루 평균 매출은 100만원 정도. 전국 치킨집 중 중상쯤 해당하는 매출이라고 했다. 유대표는 "내가 가져가는 돈은 월 400만~500만원쯤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월 500만원 이상 수익을 내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30% 정도고, 300만~500만원이 40%로 가장 많다. 월 300만원을 벌지 못하는 곳도 30%에 달한다. 유 대표는 10년 전 커피 전문점으로 프랜차이즈업계에 들어섰다. 2년 전 치킨집을 차렸다. 본사에 가맹비, 인테리어비 등으로 7000만원을 냈다. "본사에서 60세 이상은 안 받아요. 너무 힘들거든요." 유 대표가 조용히 웃었다.

 

2016년 한 해 치킨집 3980곳이 문 열고 2793곳이 문 닫았다. 하루에 치킨집 11곳이 문 열고, 8곳이 문 닫은 셈이다. 뜨거운 열기 속 닭과 함께한 일주일, 그 의미가 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치킨집이나 차려야지'라는 말은 치킨의 뜨거운 맛을 모를 때나 하는 말이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