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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하룻밤 건축여행

제주 황금오리, 전나무 숲 작은집… 건축가 靈感 녹아든 숙소가 바로 '여행지'

by조선일보

승효상 '밀브릿지' 오대산국립공원 내 자연학습체험장

문훈 '우주오리 ' 황금 부리 모양 구조물 전망대 겸 라운지

서승모 '613여관' 침실·욕실·응접실 갖춘 복층 구조의 객실

이상묵 '창신기지' 80년 된 한옥을 개·보수

제주 황금오리, 전나무 숲 작은집…

건축가의 고민이 담겨 있는 공간에서의 하룻밤은 그 어떤 여행보다 특별할 수 있다. 공간 속 건축가가 숨겨놓은 디테일과 마주하는 순간 영감은 깨어난다. ①제주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건축가 문훈의 감각이 묻어나는 렌털하우스 ‘우주오리’는 보는 방향에 따라 오리 같기도, 바람결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여자의 형상 같기도 하다. ②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렌털하우스 ‘우주오리’의 오리 눈 부분은 전망대 겸 라운지로 꾸몄다. ③경남 남해 ‘613여관’은 건축가 서승모의 작품이다. ④종로구 창신동의 80년 된 한옥은 건축가 이상묵의 영감이 더해져 현대적 숙소 ‘창신기지’로 변신했다. ⑤경남 남해 ‘613여관’의 내부. /② 남궁선 ①⑤ 진효숙 ④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단순히 잠만 자는 숙소 고유 기능에서 벗어나 숙소에 머무르며 집 자체를 즐기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머물다는 뜻의 'stay'와 휴가 'vacation'을 합친 말)'이 여행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여행에 있어 '코스'보다 '숙소'가 중요한 선택 요소가 된 시대. 영감을 충전하는 휴식을 기대한다면 건축가들의 고민이 담겨 있는 공간에서의 하룻밤이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 20세기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처럼 숙소에 머무는 동안 숨은 디테일들을 발견하며 하룻밤 건축 기행을 하다 보면 겨우내 움츠려 있던 영감이 꿈틀댈지도 모를 일. 국내 유명 건축가들의 영감이 숨 쉬는 숙소와 그 속에 담긴 건축 이야기를 들어봤다.

승효상의 평창 '밀브릿지'

제주 황금오리, 전나무 숲 작은집…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평창 자연체험학습장 ‘밀브릿지’ 생활관의 모든 객실엔 전나무숲을 바라보는 창이 있다./박근희 기자

"건축은 땅이 가진 조건과 기운에 따라 달라집니다. 밀브릿지 설계 땐 오대산국립공원의 울창한 전나무숲이 핵심이었죠. 전나무 위치 정보가 담긴 도면이 없어 설계할 때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나무를 보존하려면 전체적으로 큰 건물을 지을 수 없었고 산속에 있어 겨울엔 공사도 할 수 없었어요. 거의 일일이 손작업하다시피 해 완성한 곳입니다."

 

2016년 문 연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국립공원 내 자연학습체험장 밀브릿지(033-335-7282)를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말했다. 여러 제약이 건축가에게 고민을 안겨줬지만 그 고민 덕분에 모든 객실에서 전나무숲과 마주할 수 있다. 전나무를 최대한 보호하며 자리 잡은 박공지붕의 아담한 건물들은 마치 전나무에 깃들어 사는 새집처럼 아늑한 풍경이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낸 오솔길을 걷다 보면 오대산 명약수(名藥水)를 맛볼 수 있는 방아다리 약수터, 황톳길 산책로와 만난다. 다만 아쉽게도 동절기라 약수터, 산책로 등은 안전 등을 이유로 잠시 폐쇄한 상태다. 대신 전나무숲 풍경이 네모난 통유리창 속 그림처럼 펼쳐지는 갤러리와 카페는 연중무휴로 운영한다.

 

대제학원이 국립공원 안 사유림에 꾸민 자연학습체험장이라 생활관 안에서 취사는 할 수 없다. 사전 예약자에 한해 부대시설인 공용 식당에서 식사를 별도 제공(1인 조식 1만원, 중식 1만2000원)한다. 이용은 당일 체험 프로그램과 숙박형 체험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당일 체험 프로그램 입장료는 3시간 기준 성인 2000원, 중·고등학생 1500원, 초등학생 1000원. 생활관 1박이 가능한 숙박형 체험 프로그램 이용료는 2인실 비수기 주중 10만원~4인실 성수기 주말 26만원.

문훈의 제주 '우주오리'

제주 황금오리, 전나무 숲 작은집…

건축가 문훈이 설계한 경남 남해의 풀빌라 ‘품다’./문훈발전소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 내엔 거대한 황금 부리의 구조물이 불쑥 솟아 있다. 언뜻 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 황금 오리가 고개를 쏙 내민 모양 같기도,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여자의 형상 같기도 하다. 이 황금 부리의 구조물은 저지리의 랜드마크가 된 렌털하우스 우주오리(050409042007)다. '건축가의 탈을 쓴 아티스트'라 자신을 규정하는 건축가 문훈 문훈발전소 대표의 작품이다. 문 대표는 "'바람의 집(Wind House)'을 재해석한 공간으로 멀리서 보면 설치예술이나 조각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기능성 예술품이 되는 '아트 스테이'"라고 설명한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황금 부리 형태는 돌풍이 잦은 제주도의 기상 조건과, 그곳에서 바람에 날리는 여자의 머리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 듯하다. 황금 부리 구조물은 실제 전망대 겸 숙소의 라운지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오리의 눈처럼 보이는 창문을 통해선 가까이에 있는 저지리 마을 일대와 멀리 제주의 오름들이 보인다. 이곳 직원은 "이색 건축물이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숙소는 2인 기준 객실인 '우주동'과 최대 6인이 이용 가능한 '오리동'으로 나뉘며 이용료는 1박 기준 우주동 비수기 주중 20만원~성수기 30만원, 오리동 비수기 주중 15만원~성수기 25만원. 건축가는 "우주오리국으로 여행 떠나는 상상을 하면서 아늑한 실내에서 바깥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머물러 보시라"고 했다. 문 대표는 경남 남해군 남면의 풀빌라 품다(010-7666-6580)도 설계했다. 그는 "바다를 향해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피니티풀에서 태초의 자연인처럼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며 "주변과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서승모의 남해 '613여관'

경남 남해군 상주리 은모래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디자인 펜션 613여관(055-862-6114)은 건축가 서승모 사무소 효자동 대표의 작품이다. 아늑한 침실과 응접실, 욕실과 테라스를 갖춘 6개의 객실은 마치 집처럼 편안하게 꾸몄다. 소박한 주방에선 간단한 취사도 가능하다.

 

서 대표는 "주거가 일상을 위한 공간이라면, 여행지의 숙소는 비일상을 위한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613여관은 숙소 현관에 들어서며, 침대맡의 창(窓)을 보며, 목욕을 하며,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빛·그림자·바람 등 익숙해서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동선을 구상했다.

 

"정성 들여 지은 밥처럼 질리지 않는 정성스러운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서 대표의 생각. 613여관을 설계할 땐 창을 통해 연속해서 보이는 풍경에 주안점을 뒀다. 1층 카페에서 체크인하고 계단을 올라 2층 현관에 이르고, 방에서 다시 3층 목욕실에 이르는 동선상에서 창밖으로 푸근한 시골 풍경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서 대표는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창문 너머 낮과 밤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해보거나 목욕실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탕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잔하는 것도 613여관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이용료는 1박 기준 비수기 주중 20만원~성수기 주말 35만원. 숙박 기준 인원이 사전 신청하면 '상주리식탁'이란 이름의 소박한 조식을 제공한다. 2~3월 조식 메뉴는 활전복죽.

이상묵의 종로 '창신기지'

제주 황금오리, 전나무 숲 작은집…

3월 문 열 예정인 제주 서귀포시 요가스테이 ‘브리드인제주’. 건축가 이상묵의 아이디어가 묻어난다. /이병근

몇 년 전부터 전통 한옥 등 오래된 가옥을 되살려 쓰는 '재생 건축'이 건축의 한 흐름이 됐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낡은 골목 안쪽에 있는 렌털하우스 창신기지 크리에이티브 하우스(050409042002)는 재생 건축 숙소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80년 된 한옥을 재건축 대신 재생 건축으로 되살리길 희망하는 건축주의 뜻에 따라 탄생했다. 대대적인 개보수 후 건축가 이상묵 지랩 대표와 공동 창업자의 사무실로 사용하다 사무실을 이전하며 렌털하우스로 '용도 변경'했다.

 

창신기지 크리에이티브 하우스의 창신은 '창신동'이란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이 아닌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법고창신(法古創新)에서 나온 말. 전통적인 한옥 구조인 'ㄱ'자 형태의 객실은 침실과 거실, 주방, 욕실을 단순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꾸몄다. 투숙객은 서까래를 그대로 살린 천장을 보며 잠을 청하고 슬라이딩도어를 열어젖혀 아담한 마당과 만난다. 옛날 화장실이 있던 자리엔 노천 스파 시설이 자리 잡았다. 동절기엔 동파 위험이 있어 가동하지 않는다.

 

주 이용객은 파티를 목적으로 한 커플, 4인 가족이나 외국인들이다. 이용료는 전체 대관 1박 기준 25만원~30만원. 이상묵 대표는 숙소 큐레이션 플랫폼인 '스테이폴리오'를 운영하면서 어라운드폴리 등 전국 10여 개 숙소를 설계했다. "건축가가 지은 숙소에선 일반 호텔과는 달리 건축가의 고민과 철학을 느낄 수 있어요. 공간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요리를 해먹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꽤 근사한 여행이 될 수 있답니다."

 

박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