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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ㅈㅈㅎ 누구야" 성추행 '자음 폭로'에 떨고 있는 사람들

by조선일보

‘나도 ㅈㅈㅎ이 누군지 궁금하다. 알려달라’

‘ㅇㄷㅅ는 그 ㅇㄷㅅ?’

‘연극배우이자 ㅇㅇ행사 연출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 고백이 쏟아지면서 초성으로 ‘가해자 실명’ 찾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실명을 밝히는 경우도 있지만, 가해자 이름의 자음만을 이용한 ‘자음 폭로’로 익명과 실명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ㅈㅈㅎ 누구야" 성추행 '자음 폭로

성추문 논란의 당사자들. 위부터 시인 고은, 연출가 오태석·이윤택./조선DB

배우 출신 A씨는 지난 15일 성추행당한 일을 밝히면서 ‘ㅇㅌㅅ’이라는 가해자의 초성 자음과 ‘서울예대’ 소속이라는 점을 소셜미디에 적으며 “대학로 식당에서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고 고발했고, 곧 ㅇㅌㅅ의 정체가 밝혀졌다.

 

O씨나, A씨가 아닌 ‘ㅇㅌㅅ’이라는 초성을 사용함으로써, ‘오태석’이라는 이름은 쉽게 ‘도출’될 수 있었다. 오태석씨는 지난 22일 서울예대 강단에서 퇴출됐다.

 

배우 겸 청주대 교수였던 조민기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휘둘러 교수직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첫 폭로도 초성자음 ‘ㅈㅁㄱ’으로 시작됐다. 지난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연예인 ㅈㅁㄱ씨가 몇 년간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라는 글이 게재된 것이다. 글이 올라온 후 네티즌들은 ‘청주대 교수’, ‘ㅈㅁㄱ’ 등 단서를 바탕으로 이 인물을 추적했고, 결국 조민기로 좁혀졌다. 피해자들 증언이 잇따르며 현재 경찰은 조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최근 자음폭로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명단은 ‘ㅇㄷㅅ(오달수)’, ‘ㅈㅈㅎ’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윤택이 속한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들이다. 연극인 ‘ㄱㅅㅇ’, ‘ㄱㅅㅁ’, ‘ㅇㅎㅈ’ 등도 폭로 리스트에 올랐다. 이들은 성추행 의혹에 대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예술인을 넘어 대학교수들 이름도 나오고 있다. 각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화생공학과 ㅇㅈㅎ 교수 일(성추행)은 어떻게 되었나’ 같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실명 대신 초성일까.

 

 

①이름 대신 자음을 쓰는 것은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번 연극계 미투 폭로는 피해자의 페이스북이나 연극·뮤지컬 커뮤니티를 통해 이뤄졌다. 커뮤니티의 경우, 배우 이름이나 뮤지컬 제목을 자음으로 쓰는 습관이 굳어져 이번 미투에서도 자음 폭로가 많았다는 것이다. 평소 커뮤니티를 즐겨 이용하는 최모(28)씨는 “아는 사람들끼리는 자음만 써도 알기 때문에 글을 더 빨리 쓸 수 있기도 하고, 은어처럼 여겨져 재밌기도 하다”고 했다.

 

②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서 자음만 입력해서 번호를 찾고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는 습관이 ‘자음 폭로’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했다.

"ㅈㅈㅎ 누구야" 성추행 '자음 폭로

인터넷 화면 캡처

③‘동조자’를 구하려는 절박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음 폭로는 A씨나 김모씨처럼 익명으로 밝힐 때보다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며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달라면서 사람들에게 좀 더 힌트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임 교수는 “미투 운동은 피해자가 당했다는 의미보다 적극적으로 고발한다는 것 아니냐”며 “가해자를 알리기 위해 자음으로 적고, 적극적으로 동참해달라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 배우 이명행, 배우 조민기 등이 ‘’ㅇㅁㅎ’ ‘ㅇㅇㅌ’ 식으로 ‘혐의선상’에 올랐을 때, 네티즌들은 ‘연극배우’ ‘ ○○행사 연출가’ ‘‘△△ 임명 시 폭로될 확률 높음’ ‘상습 성추행 2건’ 등 구체적인 정보를 쏟아내며 가해자를 압박했다.

 

④명예훼손 소송을 피하려는 방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은 형법에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없기 때문에 실명을 폭로하는 ‘미투(me too)’가 많았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을 적시할 경우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실명을 적으면 처벌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음 폭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음으로 적으면 실명을 적을 때보다 처벌 가능성이 낮다”며 “때문에 최영미 시인도 고은 시인을 ‘en선생’이라고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영희 변호사는 “자음으로 적었더라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금방 드러나서 특정이 된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름을 적는 것보다 자음으로 적는 것이 명예훼손 가능성이 더 적다”고 했다.

 

[이다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