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英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 배후는 러시아”…경제 제재 경고

by조선일보

지난 4일(현지 시각) 영국 남부 소도시 솔즈베리에서 ‘이중 스파이’였던 세르게이 스크리팔(66) 전 러시아 대령이 괴한의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아 위중한 상태에 빠진 사건을 두고, 영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12일(현지 시각) 국회에 출석, “이번 사건의 배후에 러시아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러시아 측으로부터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다면 영국은 이를 러시아의 불법 무력 행사로 간주하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英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 배후는 러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BBC

메이 총리가 사건 발생 열흘 만에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한 것은 스크리팔을 중태에 빠뜨린 신경작용제가 ‘노비촉(Novichock)’인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노비촉은 1980~1990년대 러시아군이 개발한 화학 무기다.

 

메이 총리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러시아 정부가 스크리팔의 암살 시도를 주도했거나, 러시아군이 통제력을 잃어버려 무기가 암살자의 손에 들어갔을 두 가지의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밝혔다. 두 가지 가능성 모두 러시아 정부의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게 영국 정부의 입장이다.

 

메이 총리는 13일 자정까지 러시아 측에 답변을 촉구하면서, 러시아가 이에 불응하면 전방위 보복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경고했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으로 해석된다.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와 외교관 추방은 물론, 러시아 재벌의 금융 자산 동결과 러시아 관영 언론의 영국 내 방송 송출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英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 배후는 러

러시아 군 정보부에서 근무하며 영국 정보기관에 협조한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 /페이스북

메이 총리는 러시아 제재를 위한 나토 회원국 등 물밑 접촉도 진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영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과거에 러시아 경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이끌어 왔으며 이제 좀 더 강력한 조치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메이 총리를 거들고 나섰다. 그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분명히 러시아 측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가 이번 사건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번 암살 시도를 첩보 세계에서 벌어진 암투극으로 치부하기엔 암살 수법이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사건이 발생한 솔즈베리에선 수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러시아에 해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군사 위협이 커지는 점도 양국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종종 군사 훈련을 실시하며 유럽을 긴장시키고 있다. 유럽은 발트 3국 등에 대대급 병력 배치, 폴란드에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등으로 맞서고 있지만, 군사적 능력과 규모, 특히 ‘의지’ 면에서 러시아에 훨씬 못 미친다.

 

외부 압력을 받으면 더욱 강하게 반발하는 성향을 보여온 러시아는 이번에도 영국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영국의 반응에 대해 ‘써커스쇼’라는 논평을 내놓는 한편, 푸틴 대통령은 영국 기자의 질문에 “당신 나라의 입장을 정리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잘라 말했다.

 

스크리팔은 1995년 군 정보부 요원으로 유럽에서 근무하다 영국 정보기관인 MI6에 포섭돼 이중 스파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MI6 관계자와 접선할 때 주로 루이뷔통 가방을 들고 나가 ‘루이뷔통 스파이’로 불렸다. 스크리팔은 2004년 MI6에 러시아 정보기관 인물들 신상을 넘겼다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0년 미국과 러시아 간 스파이 맞교환 때 풀려나 영국으로 건너왔다.

 

[남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