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플라스틱 없는 삶... 가루 치약, 대나무 빨대
쓰고 '포장'은 거부하는 사람들

by조선일보

“플라스틱 당당히 거부하고 내 그릇 써요”

SNS에 기록하고 공유하는 플라스틱 없는 생활

플라스틱 없는 삶... 가루 치약,

두부를 살 때는 사장님이 비닐봉지로 두부를 잡기 전에 빨리 용기를 내밀고 외쳐야 한다. “여기에 담아 주세요.”/잡지 쓸 인스타그램

5년 전 KBS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에서 개그맨들이 쓰레기 없이 사는 체험을 방송해 화제를 모았다. 그들을 통해 본 쓰레기 없는 삶이란 꽤 의미 있었지만, 궁상맞고 서글펐다. 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일회용품이 우리 삶에 너무나 만연하다 보니 마치 벌칙을 수행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반복됐다. 한국은 1인당 연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2위다. 생활에서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 이제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는 얘기다.

플라스틱 없는 삶 들여다보니 

‘쓰레기 없는 삶’를 표방하는 독립잡지 ‘쓸’(SSSSL)의 편집장 배민지 씨를 만났다. ‘Happy’라고 적힌 커다란 텀블러를 들고나온 배 씨는 명함 대신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이 담긴 도장을 찍어줬다. 그는 3년 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해 지금은 플라스틱 없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물을 끓여 먹고, 비누 형태의 세정제와 샴푸로 샤워를 한다. 치약은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가루 치약을 쓴다. 출근 전엔 일회용 컵을 대신할 텀블러와 비닐봉지를 대신할 천 가방 등을 챙긴다. 햄버거나 치킨 같은 패스트푸드 음식이 먹고 싶은 날이면 저장 용기까지 챙겨야 하기에, 보통 큼직한 배낭을 메고 다닌다.

 

장을 볼 때는 재래시장에 간다. 대형마트에서는 개별 포장 용기로 사용된 플라스틱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먹을 만큼만 장을 보고, 준비한 천 가방에 물건을 담는다. 두부를 살 때는 미리 담아갈 용기를 가져간다.

플라스틱 없는 삶... 가루 치약,

플라스틱 통이 필요 없는 비누형 주방세제, 플라스틱 수세미를 대신하는 천연 수세미. 잘 찾아보면 플라스틱을 대체할 대안 제품은 많다./더피커 인스타그램

배 씨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건 한 환경 다큐멘터리를 접하면서다. 제3국 아이들이 중금속 가전 쓰레기를 고사리손으로 거르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시 그는 대구의 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근무했다. 배달을 위주의 매장이었기에 포장 용기를 많이 사용했고, 본사에서 오는 식자재도 모두 일회용품 포장지에 싸여 왔다. 그는 바로 하던 일을 관두고, 서울에 와 재활용 단체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센터에 작은 사무실을 내고 플라스틱을 비롯한 쓰레기 없는 삶을 전파하는 일을 한다.

포장을 거부하는 것, 유별남이 아니라 재미있는 문화

“처음엔 공포가 밀려왔어요.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었거든요.”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털어놓는 소감이다. 플라스틱 없는 생활은 쉽지 않다. 과자 하나, 라면 한 개를 먹으려 해도 모두 플라스틱 필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100%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입맛까지도 포기해야 한다.

 

가끔은 주변의 차가운 시선도 감수해야 한다. 배 씨는 “공공장소에서 ‘텀블러에 담아 달라’, ‘일회용 용기는 주지 말라’는 말을 하면 유별난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라고 했다. 그가 부모님께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살고 있다”라고 고백한 것도 최근 들어서다. 하지만 문화가 퍼지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마음이 열릴 것이라 기대한다. 당당히 권리를 내세우는 채식주의자들도 얼마 전까진 사회 부적응자로 취급을 받았으니 말이다.

플라스틱 없는 삶... 가루 치약,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은 먼저 자신이 매일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어떤 것인지 관찰하고 기록해보라고 조언한다./정다운 인스타그램 (@hello_ibeka)

요즘엔 SNS에 플라스틱 없는 삶을 기록하고 이를 공유하고, 연대하는 문화도 생겼다. 인스타그램에서 #플라스틱제로 #zeroplastic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자신이 하루에 쓴 플라스틱 쓰레기를 기록하고, 일회용품 대신 쓰는 대체품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검색된다. 인터넷 커뮤니티 ‘쓰레기덕질’의 경우 최근 쓰레기 대란 이후 주목받으면서, 신규 회원이 부쩍 늘었다. 플라스틱 없는 생활을 위해선 내가 배출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떤 것인지 관찰하는 게 우선이다. 인스타그램에 플라스틱 없는 생활을 기록하는 정다운 씨는 “내가 버리는 쓰레기를 기록하는 게 어떤 일회용품을 많이 버리고 뭘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플라스틱 없는 삶, 선구적인 라이프로 진입

포장 없는 매장을 표방하는 가게도 있다. 서울 성수동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더피커는 국내 최초로 포장 없이 식료품을 파는 가게다. 재활용 이전에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자는 의미로 ‘프리사이클링(Precycling)’을 내세웠다.

플라스틱 없는 삶... 가루 치약,

포장 없는 식료품점 더피커, 채소와 곡류를 개인 용기에 담아 무게를 재 구매할 수 있다./김은영 기자

이 매장에선 진열된 채소와 곡류를 원하는 만큼 개인 용기에 담아 무게를 달아 계산한 뒤 사야한다. 채소와 곡류 외에도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와 주머니, 유리병, 대나무와 스테인리스 빨대 등을 살 수 있다. 포장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대나무 펄프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일회용기에 포장해 준다. 송수니 매니저는 “이 일회용기들은 3개월 안에 생분해된다. 일반 플라스틱보다 단가가 5배 이상 비싸지만, 포장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사용한다. 텀블러나 용기를 준비해오는 고객에겐 500원을 할인해준다”고 했다.

 

우리 생활에서 플라스틱을 덜어내자는 움직임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퍼지고 있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컵과 접시의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며, 영국에선 플라스틱 빨대와 면봉 판매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선 최근 우산 비닐 커버 대신 우산 빗물제거기가 관공서에 설치돼 화제를 모았다.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자사 포장 용기를 100%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으며, 맥도날드도 2025년까지 모든 포장 용기를 재생이나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바꿀 계획이다. 머지않아 플라스틱 없는 삶은 불편하고 극성스러운 소수의 선언이 아닌, 더욱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로 다가올 전망이다.

 

[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