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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페트병 담긴 재활용품 봉투 뜯자… 쉰 김칫국물이 쏟아졌다

by조선일보

[환경이 생명입니다] 재활용 안되는 재활용 쓰레기

- 기자가 직접 선별장 작업해보니

주택·상가, 재활용품 관리자 없어 음식물·동물사체까지 몰래 내놔

페트병 안엔 남은 음료수·담뱃재… 재질 제각각 커피컵도 다시 못써

"수거된 물품 60~70%는 버려져"


허리춤에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까만색 봉투가 보이면 겁부터 더럭 났다. 속이 보이지 않는 봉투 안에서 어떤 '쓰레기'가 튀어나올지 걱정됐다. 지난달 20일 서울 양천구 재활용품 선별장. 기자는 한 시간 동안 60m 길이 컨베이어 벨트 한쪽에 서서 유리병, 종이, 플라스틱류 등 돈이 될 만한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깨끗할 줄 알았던 재활용품 선별장은 '쓰레기 하치장'을 방불케 했다.

까만 봉투만 보면 겁부터 더럭

기자에게 "페트(PET) 재질 플라스틱을 골라내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몸체가 투명해 페트처럼 보이는 것들을 모두 골라냈지만 절반은 헛수고였다. 오물이 묻어 더러운 경우, 페트병 안쪽에 차(茶)·과일주스 등 음료가 남았거나 담뱃재·껌종이 등을 욱여넣은 것들이 보이면 골라내지 않고 그대로 버렸다. 투명한 커피컵이나 딸기 포장박스, 색이 들어간 계란판도 마찬가지다. 작업하는 내내 "이것도요?" "그냥 버려요?"를 반복했다. "더러워서 안 돼요" "너무 얇아 상품성이 없어요" "커피컵은 재활용 안 해요"란 답이 돌아왔다.

페트병 담긴 재활용품 봉투 뜯자… 쉰

서울 양천구 목동 재활용 선별장에서 지난달 20일 본지 손호영 기자(왼쪽 첫째)가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골라내고 있다. 한 시간 작업하는 동안 오물 묻은 플라스틱, 차(茶)·과일주스 등 음료가 남았거나 담뱃재·껌종이 등을 넣은 페트병이 쉴 새 없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왔다. /금호자원

재활용 마크가 투명한 컵 밑바닥에 새겨진 일회용 커피컵은 무슨 재질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옆자리 작업자는 "생크림이 묻거나 종이 소재의 컵 홀더를 끼운 채 버린 플라스틱컵은 분류할 틈도 없고 분류해도 받아주는 업체가 없다"고 했다. 컨베이어 벨트엔 편의점에서 파는 일회용 커피, 주스 컵도 많이 올라왔다. 대부분 몸통이 복합소재 플라스틱이다. 손으로 떼어내도 입구에 알루미늄이 남는다. 이곳에선 "이런 것들은 재활용품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불렀다.

"10년 전보다 재활용품 상태 더 나빠져"

수도권 지역의 다른 재활용 선별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수거된 재활용품 중 쓸 만한 자원을 골라내는 곳인데도 '선별장'이라기보다는 '매립장'에 온 듯했다. "음료수병, 음식용기 등을 세척하지 않고 그대로 내놓아 썩는 일도 잦다"고 한다. 재활용 선별장에선 이런 쓰레기들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직접 분류한다.

페트병 담긴 재활용품 봉투 뜯자… 쉰

서울 송파구 장지동 자원순환공원 내 선별장은 대형 아파트 단지를 제외한 주택·상가 등에서 수거해온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곳이다. 전날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매일 50~60t의 쓰레기가 들어온다. 입구엔 이날 새벽 들어온 쓰레기가 6~7m 높이로 쌓여 있었다. 흰색, 파란색, 검은색 비닐 더미에 다가서니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업체 관계자는 "재활용품만 모이면 악취가 안 나야 정상인데, 온갖 쓰레기들이 구분없이 들어오니 그런 것"이라고 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쓰레기 더미가 휙휙 지나갔다. 한 작업자가 파란 비닐을 뜯자 다 쓴 화장실용 휴지와 홍삼 비닐팩, 핑크색 음료 페트병, 생수병이 섞여 쏟아졌다. 다른 봉투를 뜯으니 쉰내가 훅 올라왔다. 김칫국물이 옆 비닐 쓰레기 여기저기로 흘렀다. 이렇게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품이 뒤섞여 들어오면 대부분 그대로 버려진다. "여기서 14년째 일한다"는 한 직원은 "10년 전보다 재활용품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볼링공, 콘크리트,쇳덩이처럼 한눈에 봐도 재활용이 아닌 품목들까지 들어온다"고 했다. 성인의 변(便)과 줄줄 흐르는 페인트, 깨진 유리나 사기 화분에 동물 사체까지 들어오면 "그날 작업을 다 망친다"고 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단독주택 등지에서 내놓는 재활용품은 아파트와 달리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수거업체들도 재활용 가능한 품목인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장 관계자는 "수거되는 전체 재활용품 중 30~40%만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버린다"면서 "내놓을 때 잘 내놓아야 재활용이 용이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박은호 차장, 채성진·김정훈·김효인·이동휘·손호영·권선미·허상우 기자

[손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