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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심화반은 급식 때 먹는
쌀부터 다르다?

by조선일보

[김은실의 대치동 24시]

임원 활동도 수상 실적도 될 아이만 밀어주는 학교

관리 받는 학생이나 밀려난 학생이나 모두에게 큰 마음의 상처


8년 전, 대학입시 관련 책을 쓰느라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합전형) 합격 사례자인 K군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다수의 대학에서 '리더십 전형'을 시행했었다. 전교 학생회장·부회장, 학급 회장 등을 대상으로 지원 자격을 주어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심사하는 전형이었다. 

심화반은 급식 때 먹는 쌀부터 다르

전교 학생회장 출신이었던 K군은 이 전형으로 명문대에 합격했다. 내신은 4등급 내외로 우수한 편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K군의 모교는 각 학년의 2개 반을 '심화반'으로 운영했다. 학교는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으로 상위권 학생을 선별해 심화반을 편성했고 특별 관리를 해줬다. "심화반의 자습실은 일반반과 건물이 달라요. 냉난방과 방음 시설 등이 잘 갖춰진 신축 건물을 사용하게 했고 책걸상도 새것을 이용했어요. 그리고 특별 교재로 심화반 학생들에게 별도 수업을 해 주었어요. 심지어 심화반 아이들은 급식 때 먹는 쌀이 다르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니까요." 


K군은 자신은 심화반이어서 특별 대우를 받았지만 차별 대우를 당하는 친구들을 보며 괴로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총학생회장이 된 후 차별 대우의 폐단을 전교생에게 알렸고, 학부모회까지 참여하는 찬반 투표로 이어졌다. 심화반 폐지로 압도적인 의견이 모아졌다. 학교 측은 마침내 심화반 폐지를 결정했다. K군은 학교의 특별 관리를 받는 학생들이나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나 모두 상처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K군과의 만남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화반은 아직도 다수의 고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학교 관리 밖의 학생들은 풀이 죽은 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리다시피 온다. 며칠 전 서울 지역 자사고에 다니는 H군으로부터 심화반 이야기를 들었다. H군은 경제·경영 분야로 진로 관련 활동을 열심히 했으나 2학년 2학기 들어 논술과 정시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내신이 생각만큼 안 나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될 아이들만 밀어줘요. 임원 활동도 수상 실적도 어차피 한 개 더 얹어봤자 안 될 아이들에게 주어 버리느니 득을 보는 아이에게 주자는 것이지요." H군과 비슷한 경험을 한 '학교 관리 밖'의 학생들은 입을 모아 '학교가 나를 버렸다'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부모의 편애가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처럼, 학교의 편애 역시 관리를 받는 학생이나 밀려난 학생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멍을 남긴다. 학교 입장에서는 명문대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고교 서열을 매기고, 학력 우수 학교를 중심으로 예산 편성과 특혜 지원 등이 이루어지니 어쩔 수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변명'으로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교육을 믿고 맡긴 학교에서 소수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다수의 학생들이 '나를 버렸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면 이건 '교권의 포기'이고 '권력의 횡포'이다.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아이들인가. 고교 심화반은 지금 당장 없어져야 한다. 


[김은실 교육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