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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아이돌 가수 '뮤비' 세트장 같다"
북한 인테리어에 관심 집중

by조선일보

북한 인테리어부터 고프닉까지, 포스트 소비에트 스타일 뜬다

생소한 자극에 목마른 젊은이들 매료

"아이돌 가수 '뮤비' 세트장 같다"

평양 능라도 경기장 라커룸/올리버 웨인라이트 텀블러

최근 온라인 상에선 북한의 건축과 인테리어 사진이 화제를 모은다. 완벽한 좌우대칭 구도와 과감한 파스텔 색상이 이색적이다. 이 사진들은 영국의 사진작가 겸 건축평론가 올리버 웨인라이트가 찍었다.

 

북한 인테리어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성과 비견되며 외신에도 여러번 소개됐다. 자로 잰 듯한 대칭 구도와 동화적인 색감으로 환상적인 영상미를 선보인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았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북한의 건물들이 소비에트 시대의 건축기법을 따르고 질 낮은 복고풍 소품을 많이 활용하며, 완벽히 대칭적인 인테리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라며 닮은꼴의 이유를 분석했다. 또 “동화적인 색상을 사용한 것은 빈곤한 현실을 감추고 싶어하는 의도”라 해석했다.

대칭 구도, 동화적인 건축 양식에 인스타 세대 열광

네티즌들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세트장 같다” “독특하고 예쁘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비현실적이어서 무섭다”는 반응도 있지만, 대체로 “힙(hip·최신 유행에 밝다)하다”는 평이 많다. 한 대학생은 “통일이 되면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라올 거 같다”며 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 인테리어가 젊은층에 관심을 끈 것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한반도 평화 무드가 결정적이었지만,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포스트 소비에트 문화에 대한 관심과도 연관이 있다.

"아이돌 가수 '뮤비' 세트장 같다"

런던에서 열린 ‘포스트 소비에트 비전’ 전시에 출품된 사진들/

1991년 소련 해체 후 급격한 개혁을 맞은 러시아와 동유럽 젊은이들이 즐긴 반항적인 하위문화는 최근 몇 년 사이 패션과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죽하면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는 ‘포스트 소비에트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동유럽과 러시아 젊은 예술가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가 열렸고, 국내에선 지난해 디뮤지엄이 관련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유스(youth)’ 전시회를 열어 흥행했다. 이런 가운데 소비에트 양식을 담은 북한의 건축은 낯설음보단 호기심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반항적인 ‘고프닉’ 패션, 주류 패션으로 자리매김 

패션계엔 ‘고프닉(Gopnik)’과 같은 포스트 소비에트 패션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고프닉이란 90년대 러시아와 동유럽 젊은이들이 즐긴 비주류 문화로, 머리를 짧게 깎은 머리에 아디다스 운동복과 러시아 군복, 빈티지 가죽 재킷 등을 입은 반항적인 스타일로 대표된다.

"아이돌 가수 '뮤비' 세트장 같다"

구 소련 국기를 모티브로 한 티셔츠(왼쪽)와 러시아 구성주의 미술가 알렉산더 로드첸코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재킷/고샤 루브친스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 뎀나 바잘리아, 스타일리스트 로타 롤코바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와 조지아 등 동유럽 출신으로, 포스트 소비에트 패션을 세계에 전파한 주역이다. 고샤 루브친스키는 아디다스, 버버리, 휠라 등 서구 브랜드와 협업하며 서구 브랜드에 반항기 어린 러시아 스타일을 주입했고, 뎀나 바잘리아는 프랑스 명품 발렌시아가의 디자인 수장이 되어 명품의 가치를 새롭게 바꾸었다. 1000원짜리 이케아 장바구니를 고가의 가죽 가방으로 만들어 판 것이 대표적인 예다.

 

파리와 런던, 서울의 트렌디한 젊은이들은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 러시아 키릴 문자, 러시아 국기가 들어간 티셔츠를 입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스타 리한나와 킴 카다시안, 국내 아이돌 지드래곤과 혁오 등도 그들의 옷을 즐겨 입는다. 우울하고 공허한 분위기, 불완전하고 반항적인 스타일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립된 미지의 세계였던 포스트 소비에트 문화가 생경한 자극에 목말라 있던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고 평한다. 유럽의 재단법을 기반으로 세워진 서구 중심의 패션 질서를 파괴한 것에 대한 통쾌함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는 “동구권 디자인은 서구에 비해 가다듬어지지 않고, 색의 사용방식도 다르다. 익숙한 디자인 문법에서 벗어난 생소한 미학이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호감을 주었으며, 일상까지 전염되고 있다”라고 했다.

 

[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