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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강원도 묵호항

투명한 바다에 마음의 상처 씻고… 골목길 오르니 담벼락 원더할매가 날 반기네

by조선일보

심상대의 '묵호를 아는가'

바다가 그리워질 때 엉엉 울고싶을 때 찾는

술과 바람의 도시

 

동해 대표 항구 묵호항

오징어·명태잡이로 유명 2만명 넘게 살던 항구

지금은 4000명 정도 남아

 

논골담길

시멘트 나르는 인부 문어 잡는 머구리…

실제 주민 모델로 그린 생생한 벽화 가득

 

묵호등대

바람의 언덕 지나 해발 67m 등대

동해와 동해시 두타산이 한눈에

투명한 바다에 마음의 상처 씻고… 골

묵호등대 남쪽에 솟아오른 언덕에 올라가 바라본 풍경.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 얹은 집이 논골담길을 알록달록 수놓았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끝까지 도망치고 싶을 땐 동해로 간다. 서쪽 끝에선 갯벌이 발목을 잡고, 남쪽 끝은 섬이 많아 갇힐 것만 같다. 북쪽은 끝까지 갈 수 없기에 지도 펼쳐 '서울' 적힌 곳에서 자 대고 동쪽으로 줄 그었다. 항구 하나가 나온다. 묵호항.

 

이름 낯익어 기억 더듬는다. 소설가 심상대의 대표작 '묵호를 아는가'의 그 묵호다. 소설은 이곳을 피난처로 묘사한다. "그렇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중략)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허둥지둥 이 술과 바람의 도시를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묵호는, 묵호가 아니라 바다는, 저고리 옷고름을 풀어헤쳐 둥글고 커다란 젖가슴을 꺼내주었다."

 

폭신한 어머니 품 그리웠던 많은 이가 그곳으로 도망쳐 잠시나마 몸 숨겼다. 딱딱한 내륙에 서 있기 힘들어 허둥지둥 교통편 찾았다. 묵호역에는 영동선이 지나간다. 서울에서는 청량리역에 묵호역으로 가는 무궁화호가 있다. 서울의 동쪽 끝으로 기차는 5시간을 내달린다.

동해 대표 항구 도시의 쇠락

투명한 바다에 마음의 상처 씻고… 골

(위쪽 사진 부터) 밤에 바라본 묵호등대. 논골담길에서 멀지 않은 수산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 동해시·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1961년 세워진 묵호역은 고향집 마당 같다. 역에 들어서면 뜬금없이 작은 수도꼭지 하나와 세숫대야가 먼저 보인다. 그 옆에는 역무원들이 기르는 꽃과 작은 나무들이 화분에 옹기종기 담겼다. 하늘에는 허겁지겁 도망쳐 온 인간들 구경 온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웃는다.

 

역에서 걸어 5분이면 묵호항이 나온다. 울릉도로 향하는 여객선에 관광객들이 타고 있다. 바다에는 어선이 줄지어 늘어섰다. 항구 규모가 꽤 크다. 1941년 개항한 묵호항은 한때 동해를 대표하는 항구였다. 오징어와 명태가 잘 잡힌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어부들이 골드러시 오듯 몰려들었다. 가파른 산비탈까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섰고, 국내 건어물 생산과 유통의 8할을 차지했을 정도로 항구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1980년대 초부터 어족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나 2만 명 넘게 살던 항구에는 현재 주민 4000명 정도만 남았다.

 

묵호중앙시장 근처에는 잘나갔던 묵호의 영광을 집약한 동상이 하나 있다.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문 개 동상이다. 경제가 호황일 때 묵호는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개들도 1000원이나 5000원짜리는 쳐다도 안 보고 만원짜리만 물고 다녔다고 한다.

 

과거처럼 시끌벅적하진 않지만, 묵호항은 그래도 여행객들로 나름 활기찬 모습이었다. 어선들 정박해 있는 바다 가까이에 다가섰다. 바닷물 색은 투명한 푸른색. 심상대는 이를 소설에서 소주에 비유했다. "바다,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였다.(중략) 내게 있어서 동해 바다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술, 한 잔의 소주를 연상케 했다." 바닷바람에선 왠지 비린 알코올 냄새가 났다. 크게 숨 들이켜 보이지 않는 상처 소독한다.

벽화로 다시 활기 찾은 묵호

투명한 바다에 마음의 상처 씻고… 골

묵호의 달동네 골목은 사진 속 벽화처럼 한때 오징어와 명태 따위가 한가득 널려 있었다. 이 때문에 온 동네가 논처럼 질펀하다고 해 ‘논골담길’이라고 불렸다. 오징어 그려진 벽화 따라 쭉 논골2길을 걷다 보면 원더우먼을 패러디한 ‘원더할매’ 벽화가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묵호항 뒤편 언덕은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 얹은 집이 빼곡하다. 주택은 사람 서너 명 겨우 지나갈 공간만 남기고 서로 바싹 붙었다. 골목길엔 30년 전만 해도 오징어와 명태 따위의 해산물이 그득했다. 잡아온 수산물을 손질해 햇볕 잘 드는 골목에 주렁주렁 널어놓은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을 골목은 항상 습했고, 담벼락과 바닥은 논처럼 질펀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은 '논골담길'.

 

지금은 골목에 오징어 널어놓은 집이 드물다. 인구가 줄어서 드문드문 빈집도 보였다. 이 마을은 최근에야 다시 활기를 찾았다.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 벽에 지역 화가들이 벽화를 그려 넣으면서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뻔하디뻔한 벽화는 아니다. 지역 화가들이 머구리(잠수부), 어부 등 실제 주민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 나름 지역의 특색이 살아있다. 덕분에 가라앉던 도시 묵호는 이제 해마다 관광객 40만 명이 찾는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시커먼 얼굴로 시멘트 나르는 인부, 그물을 잡아당기는 어부, 오징어 말리는 아낙네…. 특히 잠수복 입은 머구리가 바닷속에서 손 뻗어 문어를 잡는 모습의 큼직한 벽화가 인상 깊다. 실제 항구에서 일하는 머구리를 모델로 해 그림에 생동감이 넘친다. 한 손엔 오징어 한 손엔 소주병 든 사내 모습 담긴 담벼락도 특이하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여행객들을 콧방귀 끼며 바라보고 있다. 마침 근처엔 이런 글이 적힌 푯말이 서 있다. '묵호에서는 삶도, 철학도, 예술도, 인문학마저도 모두 길가의 개똥입니다.'

모성애 담긴 논골담길

투명한 바다에 마음의 상처 씻고… 골

(위 부터)묵호등대 근처는 동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카페가 많다. 묵호항에 배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논골담길은 논골 1길~3길로 나뉜다. 어느 길로 향하든 끝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논골1길~2길~3길~묵호등대 순으로 이어서 걸으면 좋다. 논골 1길로 계속 걸어가면 '바람의 언덕'이 나온다. 알코올처럼 투명한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예쁜 카페들이 언덕 끝자락에 아슬아슬 걸린 곳이다. 카페에서 바라본 동해 풍경은 흐드러져 커피보다는 소주를 팔아야 어울릴 듯하다.

 

바람의 언덕에는 '논골 만복이네 식구들'이라는 동상이 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이 강아지 한 마리와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남편을 기다리는지, 고향집 내려오는 맏이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이 나타나면 다 같이 뛰어나가 안아줄 기세다. 논골 2길에는 이곳 벽화 중 가장 유명한 '원더할매' 벽화가 있다. 원더우먼 복장 느낌의 몸뻬를 입은 할머니가 머리에 자기보다 큰 보따리를 이고 웃고 있다. 도망쳐 온 이들이 묵호를 찾는 이유가 동상과 벽화에 담겼다.

 

논골담길이 들려주는 묵호 이야기를 들으며 길을 걷다 보면 해발 67m에 있는 묵호등대가 나온다. 등대에서는 동해와 백두대간의 두타산 그리고 동해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야경이 인상적이다. 묵호등대가 바다로 불빛을 비추면 어선들도 노란빛으로 바다를 수놓는다.

 

묵호등대는 고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정소영 감독이 만들었고 배우 문희, 신영균 등이 출연했다. 유치원 교사 혜영과 유부남 신호의 불륜을 소재로 한 통속극이지만 작품의 핵심은 모성애. 미혼모 혜영이 아들 미래를 위해 유부남 신호에게 아들을 보내지만, 구박받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다시 데려간다는 내용이다. 혜영의 모성애가 당시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고, 한국 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멜로 드라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

다시 인간의 바다로

투명한 바다에 마음의 상처 씻고… 골

묵호의 대표적 먹을거리 물회.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논골담길에서 내려와 묵호항 수변공원 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수산물 가게가 늘어서 있다. 장화 신은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고기를 손질하는 수산물 시장은 생기가 넘친다. 근처 묵호시장에는 물회 식당과 마른오징어·문어 등을 파는 건어물 상점들이 있다. 상점 앞에 앉은 아주머니들은 "아들, 하나 사고 가"라며 거절할 수 없는 말로 호객한다. 마른 다시마 한 봉지를 샀다.

 

수변공원을 지나 바닷가를 따라 올라간다. 종착지는 서울의 동쪽 끝에 솟아오른 바위. 북위 37도 33분에 있는 이 돌덩이는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正東方)이다. 어미 까마귀들이 새끼를 낳을 때 이 바위로 온다고 해 '까막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날이 어두워져 시야가 까마득해질 때 묵호등대의 불빛이 바다로 퍼져 나갔다. 돌아갈 생각은 파도 소리에 묻혔다.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선 차마 발걸음 떼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바다는 이렇게 말한다. "어서 떠나거라, 얘야.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자아, 어서 인간의 바다로 떠나거라."

 

묵호=표태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