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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1600만원 일본 '후뢰시맨' 의상,
문화재 대접 받았다

by조선일보

후뢰시맨 의상, 국내 수집가가 일본서 1600만원에 낙찰

관세청 한달 간 검증 끝에 “史學적 수집품” 인정

베이브 루스 야구 방망이, 찰리 채플린 모자와 같은 반열

수집가들 “오타쿠가 해냈다” 환호

 

1980년대 일본에서 방송된 어린이 드라마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방송이 끝난 후에도 각국의 ‘전대물 오타쿠’들의 사랑을 받았다. 방송에서 쓰였던 촬영용 의상을 경매에서 1600만원에 낙찰받아 한국에 갖고 들어오려면 ‘관세’를 내야 할까.


우리 관세청은 고심 끝에 “기왕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베이브 루스의 야구 방망이, 찰리 채플린의 모자처럼 ‘역사적인 수집품’에 해당돼 관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냈다. 오타쿠들은 ‘쾌거’라며 환호하고 있다.

1600만원 일본 '후뢰시맨' 의상,

한국 수집가가 약 1600만원에 낙찰받은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촬영용 의상. 관세청은 최초로 전대물 의상을 ‘수집품’으로 인정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야후재팬옥션에 따르면 1986년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에서 리더인 ‘레드 후뢰시’ 촬영 의상은 지난달 8일 155만3000엔(약 1600만원)에 낙찰됐다. 경매에 올라온 물품은 레드 후뢰시 역을 맡은 배우 다루미 도타(垂水藤太·60)가 직접 착용한 붉은색 헬멧, 쫄쫄이 우주복, 벨트, 장갑 등이다. 차순위 입찰자는 155만2000엔을 적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1000엔(1만원) 차로 낙찰자가 결정된 것이다. 레드 후뢰시 의상을 낙찰받은 것은 한국인이었다.

 

문제는 관세였다. 경매회사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부치자, 관세청은 낙찰자에게 “세금 400여만원을 내고 찾아가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낙찰자는 “후뢰시맨 레드 의상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희귀물품”이라면서 “관세법상 ‘수집품’에 해당하니 세금부과 대상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관세청은 고민에 빠졌다. 전대물(戦隊物·일본에서 제작한 특수촬영물로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의 장르) 촬영 의상이 관세청 품목분류에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후뢰시맨 레드의상’을 수집품으로 인정할 것인지 한달 여 따졌다. 진품인지 유사품인지 야후재팬옥션에 확인하는 한편 낙찰자에게도 본인확인·낙찰여부를 따지는 자료를 꼼꼼히 요구했다. 관세청은 “후뢰시맨 의상은 방송사(史)를 연구할 수 있는 사학(historical)에 관련한 수집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1600만원 일본 '후뢰시맨' 의상,

1989년 한국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누린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영상 캡처

관세법상 수집품(HS 9705호)은 관세가 따로 부과되지 않는다. 수집품이 되려면 화석·미라 같은 유물(遺物)이거나 희소성의 관점에서 흥미를 끌 수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베이브 루스의 야구 방망이, 찰리 채플린의 모자, 엘비스 프레슬리의 재킷,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영화 ‘자이언트’에서 입었던 나이트가운 등이 수집품으로 인정됐다.

 

관세평가분류원 관계자는 “후뢰시맨 촬영 의상의 경우 옷의 재질로만 가치를 따지자면 몇 만원 수준이지만 촬영 당시 배우가 실제로 착용한 유일한 의상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며 “수집품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희소성 여부가 가장 중요한데, 후뢰시맨 촬영 의상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은 1986년 일본 토에이 프로덕션에서 기획, 아사히TV에서 방영한 작품이다. 에일리언에게 납치된 다섯 명의 지구인 아이가 외계행성(플래시 별) 원주민에게 구조되어, 장성한 뒤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는 이로부터 3년 뒤인 1989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낙찰자는 또 다른 전대물 시리즈인 ‘초전자 바이오맨’ 촬영 당시 쓰인 ‘바이오 소드’, ‘빛의 전사 마스크맨’ 촬영 대본 등도 보유하고 있는 수집가로 알려졌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세청 담당자와 인천 세관 담당자와 100통 넘게 전화를 하고 한 달 넘게 옥신각신한 끝에 결국 후뢰시맨 의상을 수집품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수집가들은 “대한민국 수집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가 해냈다”면서 환호하고 있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