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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원조의 아우라 가득…
훈련소 신병처럼 고기판을 비웠다

by조선일보

[인생식탁] 서울 입정동 '전주집'

원조의 아우라 가득… 훈련소 신병처럼

전주집의 대표 메뉴인 목삼겹살. 국산 암퇘지 생고기를 일부러 얼려 얇게 썰어낸다. 그 분홍빛 단면을 보면 고기의 품질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김치, 콩나물, 부추와 고기를 섞어 매콤하게 익힌 볶음밥.〈작은 사진〉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유행은 첨단과 복고 사이에서 널을 뛴다. 10년 전 청바지 바짓단은 나팔바지 같은 부츠컷이었다. 그사이 10년은 하지 정맥류가 생길 것 같은 스키니진의 시대였다. 며칠 전 20대에 입던 부츠컷 청바지를 다시 꺼내 놓았다. 근래 바짓단 유행이 다시 부츠컷으로 돌아온 덕분이다.

 

요식업의 유행도 청바지 단처럼 돌고 돈다. 근래 가장 뜨거운 음식은 냉동 삼겹살이다. 10년 전에는 '대패 삼겹살'이란 이름이었다. 1인분에 3000원도 안 되는 값이었다. 사람들은 싼 맛에 얇게 썰지 않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질 낮은 고기를 가득 쌓아놓고 구웠다. 2018년 냉동 삼겹살이 다시 돌아왔다. 강남 곳곳에 냉동 삼겹살 파는 집이 생겼다. 사람들은 줄을 서고 값은 몇 배가 되었다. 공사판에서 '도기다시'라고 부르는 테라조 타일 시공을 하고 스테인리스 쟁반에 고기를 담아 낸다. 오래된 느낌이 난다. 다시 말해 찢어진 청바지는 맞는다. 그런데 시간 속에 닳은 게 아니라 일부러 칼로 찢고 사포로 긁어낸 것 같다. 원조를 찾자면 을지로 3가 '전주집'으로 가야 한다.

 

을지로 맥주 골목은 미세 먼지도 두렵지 않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도 부럽지 않은 인파의 행렬이었다. 전주집은 이 골목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있었다. 1989년에 문을 연 전주집은 요즘 유행하는 거의 모든 고깃집의 원형이 될 만한 모든 것을 가졌다. 그리고 오리지널이 아니면 품을 수 없는 아우라가 그곳에 있었다.

 

가스버너가 올라간 식탁과 실내에 가득 찬 뿌연 연기, 전쟁 통에 헤어진 누이를 부르듯 애타게 이모와 아줌마를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보면 여느 고깃집과 다를 게 없었다. 종업원들은 구급물자를 나르듯 다급한 표정으로 고기와 술을 옮겼다.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은 무협지 속 영웅호걸처럼 고기를 굽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술을 나눠 마셨다.

 

원조의 아우라 가득… 훈련소 신병처럼

(위부터)달걀노른자를 올린 파채. 단출하지만 없는 것 없는 상차림. 1989년 세운 주춧돌을 간직한 입구.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사람들이 먹는 메뉴는 모두 같았다. 생고기를 동그랗게 말아 얼린 뒤 썬 목삼겹살이 바로 이 집의 주인공이었다. 국내산 암퇘지만 골라 쓴다는 이 집 고기 때깔은 품질의 바로미터였다. 고기는 봉숭아 물빛을 닮은 은은한 핑크빛에 지방이 첫눈처럼 소복이 껴 있었다. 고기 위에는 후추와 소금을 살짝 뿌려 밑간을 해놓았다. 불판에는 은박지가 아니라 유선지를 깔아놓아 은박지가 벗겨져 혹시나 모르고 삼킬까 하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시동을 걸듯 가스불을 켰다. 두꺼운 주물 불판이 달아오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태초에 몰래 고기를 굽던 카인의 심정으로 고기 익기를 기다렸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만큼 지루한 시간이 갔다. 고기에서 핏물이 빠지고 서서히 익기 시작했다. 고기 양면이 노릇해졌을 때 불판에서 건져내 참기름 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고소하고 깨끗한 기름 맛이 입 천장과 바닥을 코팅했다. 감칠맛 다음으로 현대 과학이 밝혀낸 마지막 맛, 바로 지방의 맛이었다. 여기에 얇고 바삭한 식감이 미뉴에트 리듬으로 맛에 경쾌함을 더했다. 두꺼운 생고기를 구웠을 때 느껴지는 둔탁한 느낌이 없었다. 훈련소 신병처럼 고기 한 판을 빠르게 비웠다.

 

기름장이 질리면 파채를 곁들일 순서다. 파채야말로 전주집의 하이라이트다. 전주집은 파채에 옛날식 다방 쌍화차처럼 달걀노른자를 올렸다. 주인장 집안에서 늘 해먹던 방식을 옮겨온 것이라 했다. 고춧가루와 식초, 간장으로 양념한 파채에 달걀노른자를 올리니 LP판을 듣는 듯 맛에 생동감이 생겼다. 불판과 위장이 구식 자연흡기 엔진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연비 낮은 스포츠카가 된 양 고기를 먹어댔다.

 

얇은 고기를 과자처럼 바삭하게 굽기도 하고 상추쌈에 싸먹기도 했으며 몇 장씩 겹쳐 먹기도 했다. 배가 어느 정도 찼을 때 입가심으로 볶음밥과 김치찌개를 추가했다. 종업원은 가위로 상 위에 있던 김치와 콩나물, 부추, 그리고 남은 고기를 무협영화 속 여전사처럼 빠른 속도로 잘랐다. 밥에 쓱쓱 비벼 참기름을 뿌린 뒤 주물 철판에서 낮은 온도로 서서히 수분을 날린 볶음밥은 선악과처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떡과 고기가 실하게 들어간 김치찌개, 볶음밥에 딸려나온 된장찌개 모두 베스트일레븐에 들어갈 만한 실력이었다.

 

원작보다 흥행에 성공한 속편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원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 원작에는 이 세상에 없었던 무언가를 만들어낸 고민이 있고 위험을 감수한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냉동 삼겹살의 유행은 부츠컷 청바지처럼 뜨고 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전주집을 찾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채식주의자로 전향하지 않는 한.

 

전주집: 목삼겹살(1인분 200g, 1만1000원), 생삼겹살(1인분 200g, 1만2000원), 김치찌개(7000원), 부대찌개(7000원), (02)2267-8208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