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교사 10명중 4명이 성폭력' 광주 D여고는 왜 이 지경이 됐나

[이슈]by 조선일보

여고, 男교사 41%가 가해자

“성관계 궁금?” 문자메시지

밝혀진 피해학생만 180여명

학교는 어째서 침묵했을까


김모(25)씨는 지금도 고교 시절 ‘그날’을 생각하면 수치스럽다. 2010년은 김씨가 광주광역시 D여고에 입학한 첫 해였다. 그 해 7월 모기에 물려 김씨 목이 붉게 부었다. 오전 수업에 들어온 영어 교사가 김씨를 보더니 “목에 다른 남자가 ‘쪽’했느냐”면서 웃었다.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교사는 개의치 않고 혼자 “쪽쪽” 소리를 계속 냈다. 오후 수업은 국어였다. 교사가 김씨를 향해 말했다. “누가 목을 그렇게 빨았어?”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어린 학생에게 ‘더러운 소리’ 해대는 것이 정상인가요. 너무 분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친구들도 위로해주며 선생님이 너무 이상하다고 같이 욕했지만, 입시에 피해가 갈까 봐 선생님에게 항의할 생각은 한 명도 못했습니다.” 김씨 얘기다.

'남교사 10명중 4명이 성폭력' 광

교사 16명에 의한 성희롱·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광주 D여고./ 손덕호 기자

선생님이 보낸 메시지 “OO야, 성관계가 궁금하지 않니?”

그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D여고 교사들의 ‘음담패설’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지난달 경찰이 개입하면서 밝혀진 성희롱 교사는 모두 16명. 전체 남성교사 39명 중 41%가 가해자인 셈이다. 경찰과 광주교육청에 따르면 16명의 교사들은 교실 안팎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


“그X 몸매 예쁘네! 엉덩이도 크네.”

“돼지 같은 X, 야 이 미친X아, 설거지나 하고 살아라.”

“입학사정관이 ‘사정’해줄 거다.”


“우리를 지켜주세요.” 지난달 18일 D여고 교장은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 교사들의 상습적인 성희롱 행위를 고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교장은 전교생 860여명을 대상으로 전수(全數)조사를 벌였다. 가해교사가 섞여 있을지 몰라, 교장이 직접 무기명 설문조사를 받았다. 설문조사에서 “성희롱 당했다”고 증언한 피해학생만 180여명이었다. 성희롱 정황이 의심되는 교사는 11명→16명으로 규모가 자꾸 늘어났다. 지난 1일 광주 남부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만난 이 학교 재학생·졸업생들은 “D여고에서 성희롱은 ‘관행’이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미성년자인 학생들에게 따로 접촉해 ‘성관계’를 암시했던 교사도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입학한 지 얼마 안됐을 때였으니 아직 15살이었어요. 그때는 어려서 선생님이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면 무조건 답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연락이 계속되면서 선생님이 ‘OO야, 성관계가 궁금하지 않니’ ‘여자애들끼리 섹스라는 말 많이 하지 않니’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때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졸업생 이모(25)씨가 말했다.

광주D여고는 어째서 '침묵'했나

남자 교사의 41%가 ‘일상’처럼 성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광주D여고는 왜 침묵했을까. 지역사회 교육관계자들은 ①사립학교라는 폐쇄적 집단 ②학생들의 대입(大入) 목줄을 틀어쥔 교사 ③문제를 쉬쉬하는 ‘비리재단’을 원인으로 꼽았다.


사립학교는 교사들의 인사이동이 제한적이다. 교사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정년 퇴직할 때까지 쭉 한 학교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사립고교에 근무하는 교사 박모(36)씨는 “사립학교는 채용된 교사가 정년까지 근무하다 보니 교사들이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공립학교보다 폐쇄적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매일 마주쳐야 하는 동료 교사의 비위를 고발하기로 마음 먹기가 쉽지 않고, 특히 D여고처럼 집단적으로 성범죄가 발생한 곳에서는 모른 척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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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대입 생사여탈권’을 틀어쥔 갑(甲)의 위치라는 점도 D여고 ‘침묵의 이유’다. 대입이 학생부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학생부를 쓰는 교사들의 권한이 커진 것이다.

실제 현재 고교 3학년들이 치를 2019학년도 대입에서 전체 모집인원 34만7478명 가운데 76.2%(26만4691명)를 수시모집(학생부 위주)으로 뽑는다. 교사에게 한번 찍히면 대학 진학이 어려워지는 구조다.


실제 D여고 학부모는 언론 인터뷰에서 “학교생활기록부 때문에 여태 말을 못하고 있었던 측면도 있다. 학교 안에서는 그거 하나로 교사들이 권력자”라고 말했다.

D고교 전임 이사장은 ‘1000억원대 교비 횡령’ 이홍하

그간 D고교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2015년 이 학교에서는 두 명의 교사가 자신의 차량 안에서 학생들의 몸을 더듬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내부처벌은 ‘감봉 1개월’에 그쳤다. 두 교사는 이듬해 같은 사학 재단 내 S여고로 전출 갔지만, 지척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다. 운동장이 없는 D여고가 S여고 운동장을 빌려 쓸 정도다. 반대로 S여고에서 성희롱을 일으킨 교사가 D여고로 전출한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D여고 재학생은 “결국 ‘윗 돌 빼서 아랫돌 괴기’나 다름 없다”면서 “이런 형편이니 어린 학생들 입장에선 함부로 입을 뗄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학교를 소유한 학교법인 전임 이사장은 1000억원대 교비 횡령으로 복역 중인 이홍하(80)씨다. 이씨는 “경영이 어렵다”면서 D여고·S여고 교직원들에게 1인당 4000만~1억5000만원을 빌렸다고 한다. 교사들이 ‘재단’ 감시를 덜 받는 구조가 된 것이다.


D여고 교사들의 성범죄가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키자 광주교육청은 ‘성비위 전담부서’ 구성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광주광역시 남부경찰서도 여경(女警)들이 피해학생 180여명을 모두 대면 조사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본격화했다. 경찰 관계자는 “미성년자에게 성희롱 한 혐의 등으로 가해 교사들을 입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손덕호 기자

2018.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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