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맛있는 한우는 없다... 원산지보다 중요한 건?

[푸드]by 조선일보

"수입산 소고기로 이 맛을 내다니" 의정부 전주곰탕

아무리 맛집이라도 ‘30분 이상 가서 30분 이상 대기해야 한다면’ 가지 마라

진짜 고객 아닌 ‘인증샷’ 인파는 요식업 지속가능성 해쳐

싸고 맛있는 한우는 없다... 원산지

미국산 양지머리로 만든 의정부 전주곰탕의 수육, 야들야들하게 익혀 나오는 수육의 맛이 웬만한 유명 노포의 것보다 훨씬 낫다./사진 이용재

2016년의 일이다. 어느 날 사회 관계망 서비스인 트위터에서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프로필 사진’이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마스터’인 것으로 보아 요식업계 종사자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무슨 음식을 하는지 밝히지 않은 채 요리 세계나 자영업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정보를 이리저리 맞춰가며 찾아보았다. 의정부의 전주곰탕이었다.


종종 찾아가 먹거나 가끔 트위터에서 오가는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안면은 텄지만, 그와 나는 현실 세계에서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먹으러 가서도 웬만하면 눈인사 정도 나누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음식에서 사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국산 사골과 호주산 갈비로 만든 진한 탕반의 맛

고기를 찍어 먹는 양념장의 단맛이나 김치를 빨갛게 뒤덮은 고춧가루의 매운맛 등을 생각하면 전형적인 (또한 개선이 필요한) 한식의 틀 안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개선점을 찾고 최선을 다한다. 뽀얗지만 텁텁하지는 않은, 균형이 잘 맞는 국물 속에 고기와 연골, 힘줄 등 조리가 어려운 부위가 적당히 담겨 있다. 어떤 게 적당한 상태일까?


탕반은 대체로 많이 움직여 맛은 진하되 질길 수 있는 정육 부위나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분해해야 되는 관절 등을 끓여 만든다. 이들을 분해하고 맛을 끌어내려면 은근히 오래 끓여야 하는데, 요즘은 오래 끓이면 모양이 망가진다는 이유로 질기거나 불쾌하게 씹히는 상태까지만 익혀 내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오래 장사를 했다는 곳에서도 껍질이 덜 분해되어 불쾌하게 씹히는 우족 등을 먹게 되는데, 이곳의 건더기는 대체로 씹기 좋도록 적당히 익어 있으면서 모양 또한 잘 유지한다. 탕반이 굳이 눈으로도 먹어야 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모양도 맛도 잘 잡았다.


이곳의 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메뉴는 수육이다. 나는 2016년, 이것을 처음 먹고 ‘올해의 쇠고기로도 손색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최고급만 추구한다는 미식가 블로거가 차려 직접 운영하는 고깃집의 질 좋은 한우를 먹고 잡지에 리뷰를 쓴 해였지만, 여느 쇠고기보다 돋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싸고 맛있는 한우는 없다... 원산지

의정부 전주곰탕의 곰탕, 이 집은 미국산 사골과 호주산 갈비로 진한 맛을 낸다./사진 이용재

운동을 많이 하는 부위를 말했는데 양지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소의 다리 위쪽 가슴살인 양지는 굵은 고깃결이 세로로 길게 나 있는 부위로, 맛은 진하지만 질겨 구워 먹기는 어렵다. 은근한 불에 오래 익힌 뒤 결의 반대 방향으로 얇게 썰어줘야 특유의 질감도 살아나고 진한 고기의 맛도 두드러진다. ‘텍사스 소 떼’ 같은 농담이 한때 유행했듯 소를 많이 키우는 미국의 텍사스주에서 바비큐의 주재료로 쓰이는 양지머리가, 젓가락으로 집어 들면 자연스레 처지지만 찢어지지는 않을 정도로 야들야들하게 익혀 상에 오른다.

싸고 맛있는 한우는 없다...원산지보다 중요한 건 사람

서울에서 몇십 년의 이름값과 대물림을 자랑하는 소위 ‘노포’보다 낫다고 감히 생각하는 탕반과 수육이다. 거기에 먹을 만큼만 덜어 내놓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반찬의 전부-를 먹으면 굳이 애써 짚어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 적어도 이십 년 이상 요리를 했고 출발점은 한식이 아니며 일정 수준 현대 요리의 감을 이해해 한식의 틀 안에서도 탐구하며 작은 변화를 주고 있구나. 열정이라 섣불리 말할 것은 아니지만 음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 자연스레 자기 기준도 높은 실무자이다.


그런데 곰탕이 7000원이고 도가니탕과 갈비탕은 9000원, 꼬리곰탕이 1만2000원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재료가 국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가니, 꼬리, 양지, 사골, 우족은 미국산, 갈비는 호주산이다.


미식가라면 ‘한우가 아니라면 일단 제쳐 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단지 국내산, 한우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꺼릴 수도 있으며, 이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쓸 수 있는 돈과 음식을 향한 기대 사이의 격차가 크면 곤란해진다. 한마디로 한우로 끓이되 가격은 수입산인 탕반을 원하는 경우 말이다. ‘무조건 한우’이기 때문에 가격에 수긍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재료의 원산지와 상관없이 싸고 맛있을 수도 있는 음식을 원하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도 결과에 만족하고 실무자로 쓸데 없이 힘이 빠지지 않은 채로 길게 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찬사 위주로 썼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찾아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직업인이야 취재를 하러 가는 것이지만, 단지 맛집에 목마른 생활인이라면 모든 음식점에 ’30-30 규칙’을 적용해볼 것을 권한다. ‘어떤 교통수단으로든 30분 이상 걸리고 30분 이상 대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음식의 맛보다 인증, 즉 ‘내가 이렇게 요즘 유명한 음식을 먹었다’를 위해 찾는 것이니 찾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야 먹는 이도 편하고, 한정된 재료로 한정된 양을 낼 수밖에 없는 음식점도 힘 빼지 않고 길게 갈 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등장한 ’포방터 돈까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 같은 난리는 소비자와 실무자, 그리고 주변 지역 주민까지 모두에게 손해이며 요식자영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2019.01.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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