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北 디자인이 나를 강타했다

[컬처]by 조선일보

북한여행사 25년 운영한 영국인 닉 보너

포스터·우표 등 1만여 점 수집, 北 그래픽 디자인 서울서 전시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北 디자인이

영국인 닉 보너(58)는 북한에 가장 많이 가본 외국인 중 한 명일 것이다. 북한 전문 여행사 '고려투어(Koryo Tours)'를 운영한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가르치던 그는 1993년 평양에 처음 가본 뒤 같은 해 베이징에 회사를 세웠고, 25년간 매달 북한에 갔다. 북한을 주제로 한 BBC 다큐멘터리와 평양교예단을 담은 코미디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2012) 등 영상 여러 편을 제작했고, 201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 전시 '한반도 오감도'에도 참여했다.


그가 한국에서 북한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연건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영국에서 온 메이드 인 조선: 북한 그래픽 디자인전'. 순수미술이 아닌, 북한 주민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그래픽 디자인을 다룬 점이 눈길을 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북한을 좋게 보자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북한의 흑과 백을 잘 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톤에 대해선 모른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표면에 드러난 흑백을 보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그는 "북한 주민이 평소 선물로 뭘 사고, 무슨 화장품을 쓰며, 어떤 병에 담긴 맥주를 마시는지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가 수집한 물건 1만여 점 중 200여 점을 선별했다. 작년 봄 영국에 이은 두 번째 전시로, 세관을 통과하지 못한 몇몇 물건 빼고는 런던 전시장을 그대로 옮겼다. 전시는 생산 독려 포스터로 시작한다. 구도는 대부분 비슷하다. 생산물을 한 아름 안고 환히 웃는 노동자, 그 밑에 적힌 '더 많은 고기와 젖을 생산하자!' 같은 글귀들. 제품 포장, 우표와 엽서, 만화책 표지, 티켓도 볼 수 있다.


손으로 직접 그린 옛날 디자인은 강렬한 색상이 특징이다. 보너는 "북한 그래픽 디자인은 매우 단순하며 직설적"이라고 했다. "서양의 광고와 브랜딩은 이성보다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반면 북한 그래픽은 기능이 뭔지 알리는 데 집중한다. 내용물 표현은 거의 순진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소고기 통조림엔 큼직하게 쓴 '소고기' 글자와 소 두 마리, 접시에 담긴 소고기 그림이 있고, 생선 통조림엔 팔딱거리는 생선 그림이 빠지지 않는다. 담배와 성냥갑엔 북한을 대표하는 산, 빌딩, 조각 그림을 넣어 '북한다움'을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보너는 "이러한 디자인이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최고'라는 사상을 고취한다"며 "단순한 그림 하나가 미적 장식을 넘어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2000년대 이후로 다른 나라 디자인과 점점 비슷해지는 것이 흥미롭다. 손으로 그린 그림은 대부분 디지털 이미지로 대체됐다. 보너가 서울 전시를 위해 작년에 북한에서 사온 최신 제품들은 한국이나 외국 것을 베낀 게 틀림없을 만큼 비슷하다.


보너는 "베이징발 평양행 고려항공 편에서 제공된 설탕 봉지가 가장 아끼는 애장품"이라고 했다. "경박함과는 거리가 먼 나라에서 탄생한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디자인이 나를 강타했다. 아마도 당국이 '조미료가 비행에 제공돼야 한다'고 승인하면 국유 스튜디오가 디자이너를 임명해 포장을 만들고, 그 디자인이 심사를 거쳐 비로소 생산에 투입됐을 것이다. 작은 포장 하나에 단순함과 복잡함이 얽혀 있다."


보너가 북한 여행사 대표로서 세운 원칙이 있다. "북한은 여전히 휴양지(holiday destination)는 아니다. 방문하기에 매력적인 곳이지만 말과 행동이 제한적이라는 건 유념해야 한다. 관광객들에게 '마음을 열되 분별 있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4월 7일까지. (02)6273-4242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北 디자인이

‘메이드 인 조선’ 전시품 그림을 합성해 꾸민 전시장 입구 벽면./장련성 객원기자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北 디자인이

‘메이드 인 조선' 작품 사진인 자강도 지역에서 누에고치 생산을 독려하는 포스터./Justin Piperger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北 디자인이

‘하나’와 ‘천리마’란 이름의 담뱃갑. ‘메이드 인 조선’ 작품 사진./Justin Pip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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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조선’ 작품 사진인 1975년 제작된 친절·봉사 강조 포스터./Justin Pipe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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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학(북한의 한의학) 연구 독려 포스터. ‘메이드 인 조선’ 전시 작품 사진이다/Justin Piperger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北 디자인이

‘메이드 인 조선’ 전시 작품 사진인 통조림 캔의 라벨./Justin Piperger

[김상윤 기자]

2019.02.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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