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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병인박해 순교자의 땅,
'두 개의 탑'이 솟는다

by조선일보

리움·교보타워 만든 스타 건축가 마리오 보타,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9월 완공

언덕과 계곡의 지형 그대로 살려… 중세 교회건축, 현대적으로 해석

 

조선일보

/이태경 기자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성지인 경기 화성 '남양성모성지'에 두 개의 붉은 탑이 솟았다. 고요한 정원과 숲 사이로 조성된 '묵주 기도의 길'을 걷다 보면 언덕 끝자락 남양성모마리아대성당에 다다른다. 올해 9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성당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76)를 7일 남양성모성지에서 만났다. 그는 빨간 연필을 쥐고 동그란 안경을 들어 올리며 성당 내부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 중이었다. 보타는 "2011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도시와 인접한 땅을 종교적인 정원으로 승화시켜 놓은 것에 감탄했다"며 "성지를 조성한 이상각 신부의 열정에 감명해 설계를 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의 마리오 보타는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을 지은 스타 건축가다. 학교를 그만두고 16세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고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코르뷔지에 사무소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국내엔 삼성미술관 리움과 강남 교보타워를 만든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다.


남양성모마리아대성당은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성당이다. 언덕과 언덕 사이에 위치해 1층은 땅의 일부처럼 폭 파묻혔다. 지역과 장소의 특성을 살리는 건축으로 유명한 보타의 아이디어다. 그는 "성지의 지형과 어우러지면서도 성지 전체에 힘을 줄 수 있는 위치를 찾고 싶었다"면서 "넓고 평평한 공간보다 계곡의 정점에서 도시를 바라보도록 놓아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마리오 보타가 지은 스위스 몬테 타마로의 교회(1996). 언덕의 정상에서 다리 끝을 따라 걸어오면 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중세의 탑을 비스듬히 잘라 놓은 것처럼 보이는 예배당은 다리 아래 산의 경사면을 따라 지어졌다. 7일 한국을 찾은 보타는 “내 건축은 중세 교회의 전통으로부터 이어진다”고 했다. /게티이미지

약 40m 높이의 탑은 태양 빛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하나의 원형 타워가 아닌 반으로 쪼갠 두 개의 탑을 만들었다. "하나의 탑을 두 개로 나누면 그 사이에 열린 공간이 만들어지죠. 남쪽에서 햇빛이 들어오면 두 타워 사이로 햇빛이 통과하는 강렬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위부터 쏟아지는 빛은 성당 내부의 제대를 환하게 밝히겠죠."


그가 지금까지 지은 성당 중 가장 크다. 보타는 "서구에선 소수 엘리트 중심의 작은 성당이 많은 반면, 한국의 성당은 수많은 대중이 모여 '함께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봤다"고 했다. "이곳은 현대 한국인들을 위한 성당입니다. 유럽이라면 이런 성당은 만들어질 수 없죠. 성당 건축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성지인 경기 화성 남양성모성지에 들어선 남양성모마리아대성당의 조감도. /한만원 건축가

보타는 중세 교회 건축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9일 종로 서울극장에선 마리오 보타의 종교 건축과 작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오 보타, 더 스페이스 비욘드'가 상영됐다. 한국의 남양성모성지 성당부터 이스라엘 유대교 회당, 중국에 건립 중인 이슬람 사원까지 종교를 망라해 그가 지은 5개국 건축물을 둘러본다. 영화에서 보타는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성지(聖地)에서만 일하고 싶다"면서 "공장이나 은행처럼 기능적인 건물은 인생의 일부를 차지하지만 상징적이고 창조적인 건축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광대하다"고 했다.


상영회가 끝나고 무대에 선 보타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중력과 역사"라고 했다. "아무리 건축이 공중으로 치솟아도 결국 땅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모든 건축은 집처럼 안정감을 줘야 합니다. 우리가 피곤하면 집으로 돌아가듯, 과거로 돌아가 위대한 기억들을 담아내는 건물이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주머니에 꽂혀 있던 빨간 연필을 꺼내 들었다. "머리에서부터 나온 아이디어가 다다르는 마지막 종착역이 바로 이 연필입니다."


백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