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재취업 성공률 83%, 비결은 '내려놓기'와 '스펙쌓기'

[라이프]by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노인 재취업에 드리운 두 얼굴


83.2%.


2019년 4월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10년 이상 장기 근속한 50~60대 은퇴자 1808명 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1504명)을 조사해보니 이렇게 높은 비율이 나왔다. 하지만 숫자 뒤 속사정은 달랐다. 이들은 소득·지위·직무·직종 등 네 부문에서 급격한 근로 여건 변화를 경험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들의 재취업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눈높이 낮추기(22.5%), 둘째는 자격증 취득(13.9%)이었다.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은퇴자에게 재취업 시장은 두 얼굴로 다가온다. '내려놓기' 또는 '스펙 쌓기'다. 신상의 지각변동을 감내한 이들의 재취업 성공에 드리운 그늘이다. '아무튼 주말'이 그 양면을 살펴봤다.

조선일보

지난 20일 오전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에서 주관한 ‘위워크 조식 케이터링 서비스’에 참여한 김윤경(여·60)씨와 홍수형(62)씨. /안영 기자

대기업 임원에서 요양 보호사로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종로타워 33층. 마천루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빌딩숲엔 대기업 사옥들이 포진해 있다. SK서린빌딩, 롯데호텔, 동양생명, 미래에셋증권…. 오전 10시, 이곳 33층에 입주한 공유 사무실 '위워크' 로비에서 '어르신 조식 케이터링 서비스'가 진행됐다. 62세, 60세인 두 사람이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가 담긴 플라스틱 컵을 위워크 입주 업체 20~30대 직원 100여 명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Do what you love'라고 쓴 까만 반소매 티에 남색 앞치마를 입은 홍수형(62)씨와 김윤경(여·60)씨. 이들은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어르신 실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 사무실로 출근했다.


"남들 출근할 때 강아지 산책시키는 게 좋았어요. 퇴직하고 석 달 정도는."


홍수형씨는 한 대기업의 영업·홍보 분야에서 일했다. 30여 년 회사 생활에 전무까지 승진한 그에게도 '퇴직'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2017년 중순, 회사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유급휴직 기회를 주었다. 그는 6개월간 정기 급여와 전용차를 받는 종전 임원 생활을 누리며 퇴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아침마다 여유롭게 아파트 앞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출근하는 사람들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 '연착륙 퇴직' 후 3개월이 지나자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후 대비를 마쳤지만 사회 활동이 그리워졌다.


지난해 10월, 홍씨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문을 두드렸다. 반년이 흐른 지금, 그는 '요양 보호사'와 '시니어 케어 매니저'를 꿈꾸며 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일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홍씨는 "퇴직 후 재취업 교육을 받다가 '돌봄 노동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기 경험을 들려줬다. "40대 후반이던 지난 2004년, 원인 모를 병으로 병상에 누워 돌아가신 70대 후반 아버지를 돌본 경험이 있다"며 "당시엔 그저 도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병상에서 아버지와 정서적 교류가 좀 더 있었다면 돌보는 책무감이 좀 가벼워졌을 것 같다"고 회고하며 "나이 드는 것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면서 돌봄 노동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지난 9일 진행된 어르신 취업준비교육 수업 장면.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고령의 일자리는 청년 일자리와 다릅니다. 일자리 질부터 급여, 업무 환경까지 젊었을 때 일자리 수준을 생각하고 접근하면 실망하기 쉬워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강사 김윤경씨는 말했다. 김씨는 재취업을 준비 중인 어르신들을 상대로 16년째 '내려놓기' 강의를 진행해온 베테랑이다. '내려놓기'는 구체적 현장 실무 능력을 배양하는 '직종 교육'이 이루어지기 전 재취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진행한다. 퇴직 후 겪게 될 크고 작은 충격을 줄이며 새로 시작할 업(業)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김씨는 "예를 들어 경비원 일을 한다 해도 스스로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지속하기 어렵다"며 "내가 경비를 서니까 주민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 뿌듯하다거나, 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교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람을 느끼는 법을 알아야 업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취업 절벽에 스펙 따기 경쟁도

조선일보

"아파트 관리원 자리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어려웠습니다."


2년 전 사무직에서 은퇴한 서울 구로구 김형익(가명·65)씨는 당시 재취업을 자신했다. 하지만 '60대 나이에 전문대 출신 이력'이 걸림돌이 됐다. 시장엔 4년제 대학을 나온 젊은 예비 은퇴자가 넘쳤다.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에 경비원 구인 공고가 하나 뜨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마감됐다. 청년 취업 시장처럼 '대규모 공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알음알음 인맥으로 운 좋게 취직한 아파트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며 주차, 분리 수거, 청소 등을 도맡아 했다. 김씨는 주민들의 악성 민원과 택배 사고 책임에 시달리다가 두 달 전 결국 일을 그만뒀다. 그가 나온 자리는 이틀 만에 다음 구직자로 채워졌다.


"취업 시장의 높은 벽을 절감한 분들이 '스펙 경쟁'에 뛰어들기도 합니다."조용태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과장이 말했다. 조 과장은 "이전 직장 이력을 강조하거나 다양한 서비스직에 종사해본 경험을 드러내는 게 채용 업체에는 긍정적 신호로 작용한다"며 "그 점을 아는 어르신들이 마치 청년들처럼 스펙 한 줄 더 넣으려고 열을 올리기도 한다"고 했다.


스펙 경쟁만이 아니다. '교육 쇼핑'을 하는 은퇴자도 늘었다. 김동우 서울노인복지센터 과장은 "어르신 중에는 구직을 위해 다양한 직무 교육을 전전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경비원 교육을 받았다가 바리스타 교육을 받거나, 배달원 교육과 환경 관리원 교육을 동시에 받는 식이다. 그는 "고령자 구인·구직률이 높은 직종에 무차별적으로 교육 신청을 하고 수료증을 쌓아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일자리 공급이 수요보다 모자라 취업 시장이 바늘구멍이 된 탓"이라고 했다.


직무 교육은 생계가 절박한 어르신들을 배려해 단기간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경비원 신입 교육은 하루 8시간씩 사흘간 진행하고 1시간 평가 후 수료증을 준다. 취업 준비 교육 등 '소양 교육'은 하루 만에 끝나기도 한다. 김 과장은 "대개 은퇴자 교육 과정은 이력서 한 줄이 급한 분들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2018 고령자 통계'를 보면 고령층도 생계 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다. 70~74세 노인 중 '실제 생활비를 본인 및 배우자가 부담한다'고 답한 비율은 2017년 61.8%로, 2011년(51.6%)에 비해 10%p 이상 증가했다. 이영수 통계청 사회통계기획과 사무관은 "55세 이상 79세 이하 연령대의 연금(국민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수급률은 45.6%에 불과하고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43.7%에 달한다"며 "고령화가 빨리 진행된 사회의 단면"이라고 했다.


[안영 기자]

2019.06.03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