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완치' 유튜브 돌자… 개 구충제 갑자기 품절사태

[이슈]by 조선일보

"미국인 60代 개 구충제 복용 후 폐암 완치" 영상 폭발적 조회

치료 절실한 환자들은 '솔깃'… 동물병원·약국에 문의 줄이어

전문가들 "간 손상 등 치명적 부작용 우려, 절대 먹어선 안돼"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항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진 개 구충제를 구입하려고 하자 약사는 "말기암 완치 효과가 있다는 뉴스로 유명해져서 다 팔리고 없다"고 했다. 인근 다른 약국에서도 "지금은 반려견에게 구충제 먹이려고 해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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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구충제(왼쪽 사진)를 먹고 말기암이 완치됐다는 주장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면서 해당 약품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관련 유튜브 영상(오른쪽 사진)은 20일도 안 돼 조회수 179만회를 돌파했다. /인터넷·유튜브

'개 구충제를 먹고 폐암을 완치했다'는 한 미국인 남성의 주장이 이달 초 유튜브로 퍼지면서 펜벤다졸(fenbendazole) 성분의 개 구충제를 찾는 말기암 환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펜벤다졸 성분의 개 구충제는 호주산과 국산 1종류씩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품귀 사태가 빚어졌다. 동물 구충제는 동물의약품지정약국에서만 판매한다. 국내업체 관계자는 "원료가 떨어져서 만들지 못하고 있다. 10월 중순에나 원료가 수입된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부근 약국 거리에 늘어선 10여 개의 대형 약국 중에는 동물의약품지정약국이 없지만 "지난주부터 개 구충제를 찾는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동물병원에서 처방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늘었다. 서울 중랑구의 한 수의사는 "동료 수의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스마트폰 메신저 채팅방에서는 '오늘도 펜벤다졸 성분 약을 구하려는 사람이 동물병원을 방문했다'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고 했다.

개 구충제로 말기암 완치 유튜브로 퍼져

논란이 된 동영상은 지난 4일 유튜브 채널 '월드빌리지 매거진 TV'에 올라온 '말기암 환자 구충제로 극적 완치, 암세포 완전 관해, 암환자는 꼭 보세요'라는 제목의 10분 40초짜리 영상이다. 해당 영상에는 미국의 한 남성이 개 구충제를 먹고 폐암을 완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영상에 따르면, 미국 오클라호마에 사는 조 티펜스라는 60대 남성은 2016년 말기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1월엔 암세포가 간·췌장·위 등 전신에 퍼져 3개월만 더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한 수의사가 '개 구충제를 복용하고 6주 만에 뇌암을 완치한 환자가 있다'며 티펜스에게 펜벤다졸을 복용하라고 제안했다. 티펜스는 제안에 따라 펜벤다졸을 복용하며 임상시험에 임했고, 3개월 뒤 검사를 받아보니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영상은 23일 오후 7시 기준 조회 수 179만회를 넘겼고, 댓글도 4000개 가까이 달렸다. '곧 죽을 사람이 부작용 걱정할 필요 없다' 등 영상 내용을 옹호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유튜브에는 관련 내용을 다루거나 '펜벤다졸 복용법을 알려주겠다' 등 추가 정보를 다룬 영상도 10여개 올라왔다. 인터넷에서 '펜벤다졸'을 검색하면,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느냐' '밑져야 본전이니 먹어 보려 한다' 등의 글이 수십 건씩 쏟아진다.

식약처 "항암제 허가 없어 복용 금지"

전문가들은 암 환자들이 개 구충제를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국립암센터 명승권 교수(국제암대학원 가정의학과)는 "펜벤다졸은 현재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나 환자 복용 연구 결과는 단 한 건도 발표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말기암 환자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펜벤다졸 고용량을 사람이 먹어 간독성이 발생한 사례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오래전 개똥쑥 암 치료 열풍이나 천지산 사건처럼 개 구충제도 검증되지 않은 몇몇 사례를 과신한 일시적인 과열 현상이라는 의견이 많다. 암 전문의 최대 학술단체인 대한암학회 정현철(연세대 의대 종양내과 교수) 이사장은 "펜벤다졸은 세포의 마이크로튜블(세포 분열과 활동을 관장하는 기관)을 억제하여 기생충의 성장을 중지시키는 원리인데, 같은 원리의 항암제 탁솔이 1990년대에 개발되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며 "임상시험과 방대한 데이터를 거친 항암제가 있는데 굳이 효과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개 구충제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도 "적혈구·백혈구 등 범혈구감소증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 사례도 있다"며 "펜벤다졸 항암 활성에 대한 연구가 알려져 있지만, 모두 실험실 연구이거나 쥐 등 동물 실험"이라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설명 자료를 통해 "임상시험을 거쳐 항암제로 허가를 받은 제품이 아닌 만큼 암 환자는 절대로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표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19.09.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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